[스압] 내가 들었던 육군부사관학교 괴담들
육군부사관학교에서 행정병으로 일했던 예비군입니다. 부사교에서 기간병으로 근무하셨다면 아실텐데 현재 기간병 막사 근처에 붉은 벽돌로 지은, 매우 음침하게 생긴 3층짜리 건물이 있습니다.

교육생 신분으로 부사교에 계셨던 분들은 구보할 때나 훈련 외의 이유로 이동하실 때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피복 분출, 코로나 감염자 격리 등 기타 목적으로도 가끔 쓰였다고 들었으니 한 번 쯤은 들어가보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건물은 이전에 교육지원대가 사용했던 건물인데 모종의 이유로(귀신 때문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기간병 막사가 신막사 하나로 통합되어 건물을 모두 비웠습니다. 저도 이등병 때는 그 막사를 쓰다가 일병 약장을 달자마자 막사를 이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을씨년스럽고 건물 이곳저곳에 얼룩덜룩한 자국이 묻어, 꽤 시설들이 괜찮은 다른 부사교 건물들에 비해서 상당히 이질적인데, 그래서인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꽤나 잦았습니다. 특히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2층 동쪽과 3층 서쪽이 최고의 고스트 스팟으로 유명했습니다.
1. 2층 동쪽 복도
건물에 비해 소속 인원은 매우 적었기 때문에 구 막사에서는 1개월 동기 생활관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신막사로 이사온 이후로는 방이 부족해 분대 생활관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분대에서 2층 동쪽 복도를 사용한 선임은 4개월 선임이었던 A, 2개월 선임이었던 B 2명이 있었습니다. 이사온 직후 침시간에 침대에 누워 구 막사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를 하던 중, 그 2명이 2층 동쪽 복도에서 겪은 이상한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A의 경험담]
A는 동기가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2층 동쪽 복도쪽 생활관은 거의 A의 동기들 차지였습니다. A의 옆 생활관도 동기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A는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X와 매우 친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심심할 때면 밤중에 갑자기 벽을 치면서 서로 놀래키는 장난을 치고는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A가 곤히 자고 있는데 갑자기 벽을 쾅! 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 시간을 보니 5시 반. 1시간 뒤에 강제기상해야 하는 터라 군인들이 가장 깨어나기 싫어하는 시간에 일어나 버린 겁니다. A가 비몽사몽하고 있자 다시 한 번 쾅! 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렸습니다.
아니 자기가 잠을 깼으면 곱게 다시 쳐 눕던가 왜 나한테 지2랄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A는 몹시 화가 나 벽을 크게 2번 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 1분 정도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겠거니 생각한 A가 다시 모포를 머리까지 끌어올렸을 때,
쾅! 쾅! 쾅! 쾅!
벽을 크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고, 그 바람에 A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동기 Y도 깨어버렸습니다. 근데 이 벽을 치는 소리가 X가 있을 법한 곳이 아니라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 들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도구까지 사용해서 나를 엿 먹이는구나 생각한 A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Y와 함께 미리 군복으로 환복하고 기상 방송이 켜지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툭툭… 기상. 기상. 교육지원대 전 병력 현 시간부로 기상해주시기 바랍니다. 금일 점호는 야외점호입니다.
미리 군복을 입고 준비하고 있던 A와 Y는 금방이라도 군홧발로 X를 걷어찰 것 같은 기세로 옆 생활관의 문을 열어제꼈습니다. 그리고 X의 침대를 바라본 순간… X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와 Y는 침대 밑과 관물대 안까지 샅샅이 뒤져봤지만 X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 부대에는 조기출타제도가 있었습니다. 다른 부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지휘관 분들이 기간병의 편의를 봐주신 덕분에 4시 반 쯤에 기상해서 5시에 출타를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X가 휴가를 나가는 날이었고, 5시 반에는 이미 영내 밖으로 나가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B의 경험담]
구 막사에서는 중앙복도를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을 나누어 각각 2층과 3층, 즉 4명이 순찰하며 불침번을 섰습니다. 2층 동쪽과 3층 서쪽은 워낙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에 다들 순찰을 꺼려했는데, 운이 나쁘게도 B가 2층 동쪽 불침번에 걸렸습니다.
당시에 이등병이었던 B는 개쫄아서 열심히 순찰을 돌았다고 합니다. 오며가며 선임들 관등성명도 외우고 하면서 말입니다. 중앙 복도에서 돌아나오면서 동쪽 복도를 마주한 순간,

복도 가장 끝에 있던 콜렉트콜(그린비?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화박스에 누군가가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자정까지 안 자고 있다가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박스로 들어갈 정도의 인물이라면 상꺾(상병 말)이거나 병장 정도의 짬일텐데 그걸 이등병 짬찌에 불과한 그가 통제하기란 고양이 목에 방울다는 소리와 똑같았습니다. 이걸 가서 말해야 하나 당직사령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몇 가지 위화감을 알아챘습니다.
첫째, 그 정도의 짬을 먹은 선임이거나 적어도 B보다 선임이었다면, 자정에 B가 근무를 선다는 것을 근무표로 확인한 뒤 넌지시 B에게 와서 새벽에 내가 몰래 콜렉트콜을 쓸테니 눈 감아줘라 라는 식으로 협박을 했을텐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나름 ‘선진화 부대’라서 터치화면이 쓰는 신식 콜렉트콜이었음에도 전화박스 안에서 거의 빛이 나고 있지 않다는 점,
셋째, 왠지 모르게 가만히 이 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원래도 겁이 많은 편인 B는 이대로 돌아가서 당직사령님께 보고할까 생각했지만 1) 그 사이에 전화박스 안의 사람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버리면 사령님만 허탕을 치는 꼴이 되고, 2) 전화 중인 선임을 사령님과 급습하면 자신은 평생 그 선임의 동기들에게 폐급으로 낙인찍힐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접근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터벅… 터벅…
B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병사 휴게실을 지나 샤워실을 지나고 화장실을 막 지나칠 때였습니다.
까가강!!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화장실 벽에 걸려있던 대걸레가 갑자기 떨어지더라는 겁니다. 대경실색한 B는 놀라 자빠졌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대걸레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콜렉트콜을 바라보았을 때
방금까지 보였던 콜렉트콜 속 실루엣은 이미 없어진 후였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대걸레를 옮겨 놓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콜렉트콜 부스 문을 열고 생활관까지 소리를 안 내고 이동해서 문을 여닫을 수 있었을까요? 그날 B는 2층 서쪽에서 불침번을 섰던 동기와 꼭 붙어서 하루종일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평범한 군대 괴담이라 막상 써보니 좀 김이 새네요. 저희 부대는 군대괴담에서 항상 나오는 소위 ‘무당 출신 기간병’도 없었던지라 다들 괴현상이 일어나면 ‘아 또 그 새끼인가보네’하면서 넘어갔었습니다. A와 B의 이야기 외에도 2층 동쪽에는 정훈교육에 사용하는 강의실이 하나 있었는데 새벽 순찰을 도는 길에 그 곳에서 누군가 속삭이거나 깔깔대며 웃는 소리를 들었다는 진술도 많았습니다. 2층 동쪽 방을 쓰지는 않았지만 임무분담제 청소 때문에 동쪽 샤워장을 자주 청소했는데, 제가 쓰던 서쪽 샤워장에 비해 더 습하고 왠지 모르게 무거운 느낌 때문에 당황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2. 3층 서쪽 복도
2층 동쪽 복도는 괴현상을 보고 들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3층 서쪽에는 서쪽 계단 바로 앞의 생활관을 썼던 말년병장들만 유달리 이상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신막사로 이사한 뒤 당직근무를 서고 있는 저에게, 전역을 하루 남겨둔 (진)민간인 C 외 2명이 말해준 이야기입니다.
[C 등의 이야기]

문제의 생활관은 C 외에 4명이 더 살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임들이 한참 전에 전역한, 소위 ‘풀린 군번’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기간에 고참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그 생활관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던지 창문이 덜컹거린다던지 하는 이상한 현상이 꽤 있었는데, 애초에 건물 자체가 낡아빠졌다보니 쥐가 지나다닌다던지, 바람에 건물이 흔들린다던지 이런 식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사건이 있었던 날은 그들이 불침번을 매수한 다음, 밤 늦게까지 불법연등을 하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무슨 깡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한국 호러 영화계의 전설 아닌 레전드급 영화 <알포인트>를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이라이트인 진 중사가 빙의되는 장면에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시점에,
뚜벅… 뚜벅…뚜벅…
생활관 바깥 복도에서 이 쪽으로 향하는 군화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미 불침번에게 자기네 생활관은 점검할 필요가 없다고 누누이 말했던 터라 그들은 그 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발소리는 이내 이 생활관 앞에 멈춰섰고,
똑
똑
똑
정확히 문을 세 번 두들겼다고 합니다. 화들짝 놀라 TV를 껐지만 생각해보니 짬찌인 불침번이 당직사령이 순찰을 도시는 것을 보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짬바가 있는 고참들은 감시용 창문을 검게 코팅된 종이로 가려 완벽하게 위장을 한 상황. 감히 짬찌 주제에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방해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던 C는 문을 슬쩍 열었습니다. 불침번이라면 사령님의 순찰 소식을 굳이 알릴 필요 없다고 일러두고, 사령님이라면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생활관이 가장 외곽 쪽에 있었기 때문에 중앙 복도 쪽과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제외하면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의아해하던 찰나에 C를 더욱 소름 돋게 만든 사실은 중앙 복도 쪽에서 이 쪽으로 향해 걸어오는 불침번이었습니다.
“OO아! 혹시 사령님 순찰 도셨냐?”
“고생하심다! 사령님 1시간 전에 순찰 한 번 도시고 지통실 내려가셨습니다!”
2층으로 내려가 2층 서쪽 불침번에게 이동한 사람이 있냐고 물었지만, 화장실을 간 사람도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다음 날 3층 서쪽 복도에 있는 생활관을 이용하는 후임들에게 일일이 장난을 친 사람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라고 윽박질렀지만 설령 그런 장난을 쳤다고 해도 내가 했소, 라고 나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날은 고참들에게 조금 찝찝한 날로 남는가 했는데…
며칠 뒤 동기 중 한 명이 휴가를 나가고 난 뒤, 남은 4명이서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가 그 날의 일이 주제에 올랐다고 합니다. 평소 자신들을 싫어하던 상병 아무개의 짓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선명했던 발소리가 갑자기 안 들리지 않았냐, 영화 효과음이었다, 거기에 무슨 노크하는 소리가 나오냐 병12신아 이런저런 말이 오가던 중,
찌지직… 퉁!
벨크로로 벽에 붙여놓았던 C의 국방색 수저주머니가 돌아가더니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못에 걸어두었다면 모를까 벨크로로 붙여놓았던 것이, 그것도 누군가 쥐어뜯듯이 비틀어 떨어지니 다들 소름이 끼쳐 수다를 멈췄습니다.
“야, 빨리 니 수저통 주워와라… 저대로 둘거야?”
“아 시12발 소름돋네. 재수 없으니까 다시 붙이지는 마라. 잠이나 자자.”
C도 바닥에 나뒹구는 숟가락통이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소름 돋아 눈에서 치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침대에서 나서서 문을 향한 상태로(반대로 창문은 등진 상태로) 숟가락통을 주웠다고 합니다. 다시 침대로 향하려고 돌아서는 순간, 암막커튼 사이로 비치던 희미한 빛이 사라지더니,

마치 사람이 목을 매단 것 같은 형상의 그림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걸 본 고참들은 ‘으악’ 소리를 지르며 모포 속에 머리를 숨기고 부들부들 떨었다고 합니다. C도 그 자리에서 자기 침상까지 거의 날듯이 뛰어가서 원래 발을 두던 곳에 머리를 두고 모포를 둘둘 말아 머리를 감쌌다고 합니다.
그것 이후로는 별다른 일도 벌이지 않았고, 별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참들도 구태여 무서운 이야기를 하거나 공포영화를 봐서 섣불리 ‘무언가’를 자극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하고요.
사실 3층 서쪽 복도 이야기는 제일 떠벌떠벌대는 선임들이 해 준 이야기라서 그렇게 신빙성은 크지 않습니다. 2층 동쪽에서 느꼈던 뭔가 음산한 기운도 3층 서쪽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았고(물론 제가 무슨 영적인 능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겪었다고 말한 선임들도 저 생활관을 썼던 선임들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저 생활관 바로 아래에 있는 방을 썼었는데, 그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부소대장과 분대장이 했던 말이 “이야 귀신의 방 바로 아래네?” 였습니다. 그 때는 그냥 이등병을 겁주려고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임들에게 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싱겁지만 쓸 데 없이 길기만 한 부사교 괴담은 여기까지입니다. 솔직히 허병장 같은 레전드 군대괴담 같은 걸 생각해보면 좀 많이 심심하고 평범하네요. 하지만 저 건물이 지금 폐건물이 된 지 4년이 되어가는데, 만약 귀신이 있다면 그 음기가 얼마나 더 심해졌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부사교에는 고양이가 제법 많은데 고양이들도 구 막사 근처에는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보면 ‘정말 뭔가가 있긴 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육군부사관학교 후문에는 강제노동, 임금착취, 신도 감금 및 살해, 암매장 등으로 악명높은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의 비석이 (이유는 모르겠지만)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무언가 연관이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