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당하는 줄 알았던 날 - 반전주의
때는 지난 10월말, 한국에 오랜만에 놀러와, 부모님 아파트에서 몇일 묵고있던 날이었습니다. 밤 열두시쯤, 저희 강아지가 용변을 보고싶어 하는것 같아, 짧게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십층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아파트 주변을 짧게 산책갔다가 다시 들어가려고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네 아파트 현관 입구엔 카드를 데는곳이 있어서, 보안상 카드를 소지한 주민들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 멀리에 트렁크를 연채로 시동이 걸려있던 승용차 한대가 트렁크를 닫지도 않은채로 아파트 입구까지 급하게 운전해 왔습니다. 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빨리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에 카드를 찍고 입구의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서, 엘레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파트 현관 입구의 자동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던 그때, 갑자기 어떤 중년 남성분 한분이 차에서 내리시더니 급하게 뛰어오셔서 자동문이 닫히기전에 뛰어들어오셨습니다. 딱 봐도 너무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밖에 세워진 승용차는 아직도 시동이 켜진 상태로 트렁크가 열려있었고, 밤 열두시에 그렇게 허겁지겁 카드를 찍지 않으려고 따라 들어오신것도 너무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더욱더 이상한건, 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땀을 흘리고 계셨는데, 손에는 일할때 쓰는 목장갑을 끼고있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엘레베이터가 일층에 도착했습니다. 그 남성분이 먼저 엘레베이터에 타셔서 십층을 눌렀습니다. 그 엘레베이터는, 십층을 누르면 “십층” 하고 목소리가 나옵니다. 저는 아직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고 있었는데,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십층엔 두 호수 밖에 없는데, 한호수는 부모님집, 그앞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이서 사시는 집이었기 때문이죠. 그분이 저한테 물으셨습니다. “안타세요?” 그래서 저는 “강아지가 다른 사람하고 엘레베이터를 갔이타면 무서워하니, 먼저 올라가세요” 라고 둘러대고 그분을 먼저 올려보냈습니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안고, 천천히 조용하게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밖으로 도망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밖에는 그 알 수 없는 승용차가 아직도 시동이 켜진채로 세워져 있었고, 부모님께 전화를 하자니, 핸드폰을 잊어버리고 안 들고 나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한 6층쯤 올라가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때에, 엘레베이터가 십층에 멈췄다가 다시 일층으로 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더니, 분명 밖에서 아무도 들어오는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엘레베이터가 갑자기 삼층, 사층에 차례대로 멈추는 겁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계단으로 막 뛰어 올라가 십층에있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집에 허겁지겁 들어가니, 부모님이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으시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상황을 다 듣고나서 막 웃으시더니, “아 그거, 마켓컬리통 수거하러 오신 분일거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현관문을 열고 집앞을 체크해보니, 마켓컬리통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분은 밤 열두시에 마켓컬리통을 수거하러 아파트 동마다 차 트렁크를 연채로 돌아다니고 계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헤프닝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내가 오늘 죽는구나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