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가 인상 깊었던 무장들
태사자(166~206) - 오나라 장수로 북해의 공융이 관해가 이끄는 황건적에게 에워싸였을 때,
직접 목숨을 걸고 성 밖으로 나가 유비에게 구원군을 요청하여 북해를 구원한 것이 첫 등장
이후 강남의 유요에게 몸을 담고 있다가 그 때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소패왕 손책을 만나 대등하게 겨루며 깊은 인상을 남김
결국 손책에게 연전연패하며 유요세력은 없어지고 이 때 태사자는 끝까지 저항하다 항복
이 후 오나라에서 여러 활약을 펼치며 에이스로 활약하던 태사자는 206년에 40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때 병상에서 죽기 전 오서에게 한 말이 바로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7척 칼을 지니고 천자의 계단에 올라야 하거늘, 아직 그 뜻을 실현하지 못했는데 난 어찌하여 죽는단 말인가!」 이다.
이는 무릇 사내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명성을 세상에 떨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을 한탄하는 말로 일생을 호방하게 살다간
태사자의 최후가 기억에 남아 적어봤습니다.
장합( ~231) - 위나라 장수로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 밑으로 들어갔다.
이후 장연의 흑산적을 쓸어버리고 손찬이형을 격파할 때의 공을 인정받아 원소군 내에서 입지를 굳혀가던 도중 조조세력과 관도대전이 발발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던 원소였지만 개전초기부터 수학익힘책, 국어익힘책인 안량,문추가 연달아 전사하며 분위기가 쳐져 있었다.
이 때 조조는 군세로는 이길 수 없다 판단하여 순우경이 지키고 있던 원소의 군량지인 오소를 직접 군을 이끌고 급습한다.
그 당시 장합은 고람과 함께 관도성을 공략하라는 명을 받고 관도성을 공략 중이었는데 예상외로 방비가 심한 관도성을 공략하지 못하던 중
오소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예로부터 그렇듯이 원소군 내부에서 범인찾기가 시작되었는데 관도성 공략에 회의적이던 장합을
기어코 보냈었던 참모, 곽도는 이 모든 책임을 장합에게 물었고 장합은 고민 끝에 고람과 함께 조조군에 투항하게 된다.
이 후 원소가 병사하고 남은 하북세력을 공략할 때 장료와 함께 선봉에 서서 하북을 평정했다.
그렇게 위나라의 에이스가 된 장합은 장료가 합비쪽에서 손권군을 줘패고 다닐 때 동쪽으로 이동, 마초와 한수, 장로를 줘패고
입촉을 한 유비군과 한중을 두고 한중 공방전을 펼치던 어느 날, 드디어 그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때는 유비사후 227년 제갈량이 출사표를 내던지고 호기롭게 북벌을 감행, 군을 일으켜 장안으로 쳐들어 오고 있었던 것
제갈량의 신묘한 계책과 강족의 연계로 가정에 먼저 도착한 촉군, 제갈량은 입구를 틀어막고 본군이 올 때까지 그저 지키라고만 하였거늘
촉군의 선봉인 마속은 제갈량의 명을 따르지 않고 산꼭대기에 진을 치게 되고 뒤늦게 도착한 장합은 산 밑에 진을 치고 수로를 끊고 기다리다가
지친 마속군이 내려오자 일거에 쓸어버린다. 이후 도착한 제갈량의 지원군들도 장합이 모두 대파하며 1차북벌을 위군의 승리로 이끌었다.
이 후 제갈량의 담당일진이 되어 촉군의 북벌을 모두 저지하며 촉군에게 통곡의 벽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장합
시간이 흘러 지긋지긋한 북벌도 벌써 4차, 제갈량이 또 군을 이끌고 쳐들어왔고 마침 대사마이던 조진이 병에 들어
사마의가 지휘관으로 오게 되었다. 이 때 제갈량은 기산을 공격하면서 현장에서 보리를 수확하며 군량을 수급해 장기전으로 버티고 있었고
위군은 새로 온 사마의와 장합의 의견 충돌이 있어 지지부진하던 상태였다.
거기에 장마비까지 내려 군량확보가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촉나라의 군량 담당이던 이엄이 유선에게 상소를 하여 제갈량이 철수하게 된다.
이때 사마의가 장합에게 제갈량군을 추격할 것을 명했는데 장합은 "병법에서는 성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빠져나갈 곳을 열어두고,
퇴각하는 군사는 쫓지 말라 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사마의가 이를 들어주지 않아 결국 출정하게 된다.
제갈랴을 쫓던 중 목문도에 이르러 숨을 고르던 장합의 눈에 한 나무판이 보이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합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
아차차! 역시나 복병이 있었구나 장합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기도 전에 사방에서 수천의 화살이 날아오니 거기서 장합의 추격군은 전멸하고 만다.
대촉방면 에이스로 활약하던 장합의 허무한 최후와 저 나무판 썰이 인상깊어 적어봤습니다.
방덕(~ 219) - 위나라의 장수로 마등 휘하에서 마초와 함께 서량의 손케듀오로 활약했다.
이후 마초, 한수의 반란에 따라나섰다가 조조군에게 궤멸당하고 한중의 장로 휘하에 있다가 마초는 유비, 방덕은 조조의 산하에 들어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적벽대전 후 형주를 차지한 촉군의 관우가 군을 일으켜 번성을 공격해오자 조인과 함께 영격에 나섰다.
이때 조인은 옛 주군인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한 상태라 방덕의 충의를 의심했는데 방덕은 단호하게 이를 부정하며
“나는 나라의 은혜를 입은 몸이니, 죽음으로 의를 다하겠소. 내가 직접 나서서 관우를 치고자 생각하고 있소.
올해 안에 내가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관우의 손에 죽겠소.” 라며 스스로 데드플래그를 꼽아버렸다.
백마장군이라 불리며 적을 압박하던 방덕의 활약에도 관우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우금이 지원군을 이끌고 번성을 구원하러 왔으나
때마침 계속된 비로 강이 범람하며 번성 일대가 물에 잠기고 만다.
물을 피해 제방에 오른 위군을 관우가 배를 타고 와 공격했는데 이때 우금은 군과 함께 항복을 해버리고 휘하 장수들도 항복을 하려 하자 방덕은
“내가 듣기로, 양장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망치 않고, 열사는 절개가 꺾이면서까지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이 내 제삿날이니라.” 라고
말하며 호방하게 적군에 뛰어들었고 접전을 벌인 끝에 관우군에 포로로 잡히고 만다.
관우는 “그대의 형과 옛 주군이 모두 촉을 섬기고 있는데 함께 촉을 섬기지 않겠는가?”라고 말을 하였고
누구와는 다르게 빼신만은 할 수 없었던 방덕은 외쳤다.
「꼬마야, 어찌 항복 따위를 논하느냐! 위왕께는 정병 백만이 있으며, 위의를 천하에 떨치고 계신다. 네 유비 따위는 범재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대적이나 가능할 줄 아느냐! 나는 나라를 위해 귀신이 될 생각이니, 적의 장수 따위가 되지는 않을 셈이다.」
이에 방덕의 기백을 높이 산 관우가 이를 존중하며 목을 베어버리고 방덕은 그렇게 최후를 맞는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방덕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다고 하며 30년을 충성한 우금도 투항을 했는데
오직 방덕만이 끝까지 절의를 굽히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극진히 대접해주어도 형님을 찾아가겠다며 오관육참을 해버린 고나우와 다르게 위나라에 충성을 다하다
마지막을 불태운 방덕을 마지막으로 적어봤습니다.
최후를 적으려고 앞에 내용은 간단하게 인물전 형식으로 요약했는데도 엄청 시간이 많이 들고 힘든 작업이네요
침착맨님이 왜 인물전을 안하는지 공감하게 된 길면서 짧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