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결방 기념 등장인물들의 여담 (2) - 왕후와 재상들
전편 고려거란전쟁 난장판 된 기념 등장인물들의 여담 (1) - 현종, 양규, 강감찬 에서 이어집니다.
I. 원정왕후 & 원화왕후
- 원정왕후라는 시호는 원문대왕 현종과 원(元)자를 같이 쓰는 것으로, 현종의 왕후들은 모두 저 돌림자를 같이 쓴다.(원화왕후, 원성왕후, 원혜왕후….) 고려 초중기 왕후들은 대부분 이렇게 남편의 시호 한 글자와 다른 한 글자를 합쳐 시호가 붙었다. 생전에는 어머니였던 문화왕후의 현덕궁을 물려받았으므로 ‘현덕궁 전하’, ‘현덕왕후 전하’라 불리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설에는 현종과 함께 민족의 전통놀이인 ‘스타크래프트’를 즐겨 했다고 전해진다.
- 원정왕후는 제1왕후에 임산부의 몸으로 몽진하는 고생길을 같이한 공로를 인정해 사후 유일하게 현종이 세운 절인 현화사에 초상화가 걸리고 큰 예우를 받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16화부터의 모습은 전부 왜곡이라 봐도 무방할 수준의 창작이다.
실제 세 왕후(+형부시랑)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당시 개경 홍보 영상
- 원정왕후와 현종은 친가 쪽으로는 숙부-조카 관계, 외가 쪽으로는 사촌 관계가 된다. 또한 원정왕후와 원화왕후는 이복남매 관계로 원정왕후는 적녀, 원화왕후는 서녀였다.
- 원화왕후는 슬하에 두 딸을 낳았고, 고려사에 따르면 왕수라는 아들도 낳았으나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II. 원성왕후
- 원성왕후는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딸로, 몽진 때 만난 것을 계기로 궁에 들어왔다. 원성왕후는 두 여동생과 함께 궁에 들어와 원주(院主)가 되었으며, 두 아들 덕종과 정종을 낳은 후 궁주로 승격되었다. 이후 1028년 사망 후 원성왕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즉, 원성왕후는 생전에는 왕후로 불린 적이 없다.
- 원성왕후가 받은 연경원, 나중의 연경궁은 인종 때 만월대가 척준경의 불쇼로 타버리자 인종의 본궐로 쓰였고, 공사를 거쳐 본궐을 흡수해 홍건적의 난으로 연경궁이 파괴되기 전까지 본궐로 쓰였다.
- 원성왕후의 어머니는 안산군대부인 이씨로, 훗날 문종 대의 재상이자 인천 이씨를 대표적인 문벌 귀족 가문으로 만드는 이자연의 고모다. 그리고 그 이자연은 훗날 고려를 뒤흔드는 난의 주인공들인 이자의와 이자겸의 할아버지다.
III. 유진 & 최사위 & 유방
- 유진은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가문인 충주 유씨 출신으로, 광종 말에 처음 관리가 되어 승진을 거듭해 현종 대에 문하시중이 되었다. 열전에 따르면 항상 왕을 가까이 모시고 외직을 맡은 일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가문빨이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왕에게 간언하지는 못했으나 재상으로서의 명망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드라마처럼 강감찬과는 다른 결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최사위는 목종 때 형부상서를 지낸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통주 전투에도 통군사로 참전했으나 대차게 깨졌다. 이후 참지정사 겸 이부상서가 되었으며, 강조의 후임 서북면도통사가 되기도 하고 현종의 지방행정 개혁을 주도하기도 하여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현종의 배향공신 4명 중 한 명이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김은부가 지방행정 개혁(사실상 호족 죽이기)을 주도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최사위의 주도로 안무사 파견 등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 상술한 것처럼, 최사위는 목종 때 형부상서를 지냈는데, 양규 또한 목종 때 형부낭중을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시기가 나와있지 않지만, 어쩌면 최사위가 양규의 직속상관으로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 최사위는 궁에서 열린 잔치에서 ‘술에 취해 춤을 추며 불경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탄핵을 당했으나, 현종의 비호로 파직을 면한 흑역사가 있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의외로 흥이 넘쳤던 모양이다.
- 유방의 개인사에 대한 기록은 최사위와 마찬가지로 남아있지 않으나,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서희의 협상을 가능케 한 계기가 되는 안융진 전투에서 중랑장 대도수와 함께 낭장으로서 활약한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 이후 목종의 친종장군으로 다시 등장하며, 거란의 2차 침입 이후 상장군 겸 병부상서, 참지정사, 서경유수 겸 서북면행영도병마사가 되는 등 승진을 거듭한다. 고려가 수 차례에 걸친 거란의 침입을 막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세 차례 침입과 그 사이 수많은 국지전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진짜 곰과도 싸우고 곰의 힘을 가진 벡터맨 베어와도 싸워야 했던 유방…
- 유방은 흔히 유금필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기록이 없어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한국의 유씨가 거의 99% 유금필의 후손이라는 점, 공을 세운 후 계속 승진을 거듭해 무관 출신으로 문하시중까지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금필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IV. 최항 & 채충순
- 최항은 신라삼최 중 한 사람으로 불린 최언위의 친손자로, 신라 때부터 내려온 문벌귀족인 경주 최씨 출신이다. 가문과 실력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엄친아였는지 성종 때부터 능력을 인정받았고, 목종 때는 이부시랑과 중추원사라는 요직을 겸하고 있었다. 채충순과 함께 현종의 즉위에 큰 공을 세웠지만, 강조의 정변 때 강조에게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었느냐’며 일갈하는 등 강직한 면모를 보여줬다.

<천추태후>에서는 개비스콘 아저씨가 최항으로 나왔다.
- 최항은 목종 때는 과거시험 감독관인 지공거를 맡았으며, 현종 때는 감수국사가 되어 거란의 침입으로 소실된 실록을 재정비하는 등 학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학자임과 동시에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최항은 성종 때 폐지된 팔관회를 부활시키자 건의하고, 말년에는 황룡사 9층 목탑 보수를 감독하며 집을 절처럼 만들고 불상을 모셔놓는 등 거의 승려의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 고려사 채충순 열전에 따르면 채충순의 족보가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다고 되어있으나, 채인범이라는 관리의 묘지명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채인범 묘지명에 ‘고위직을 지낸 신원 미상의 장남'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고려사 기록 대조했을 때 당시에 고위직을 지낸 채씨 인물은 채충순 뿐이다. 따라서 채인범의 아들이 채충순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 채충순이 채인범의 아들이라고 가정한다면, 채충순은 중국 출신 이민 2세대로서 당시 재상들 중 거의 유일하게 호족 출신이 아닌 인물이다. 채충순은 나중에 북송에서 상인들을 따라 온 주저를 목종에게 천거하기도 하는데, 그의 출생 배경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도 이 설을 차용하여 채충순이 자신이 호족 출신이 아닌 이민자 출신이라는 언급을 한다.
- 채충순은 목종~ 현종 초기에 중추원부사, 직중대, 중추원사 등 왕의 비서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목종의 명으로 신혈사에 있던 현종(당시 대량원군)을 데려오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으며, 현종의 몽진길에도 함께하는 등 현종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이외에도 여러 공을 세워 호족이나 공신 가문이 아님에도 재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몽진스… 역시 아이돌 출신 황제의 최측근 답게 춤을 잘 추시는 채 공
그냥 이왕 시작한 거 고려거란전쟁 끝날 때까지 써보겠습니다. 언젠가는 침하하 갈 수 있겠죠?
내용의 대다수는 나무위키에 기재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확인이 필요한 내용은 고려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그래도 비전공자인 필자의 특성 상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니 참고해주십시오.(참아달라는 뜻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