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중립외교
지구의 어느 곳이든 국가의 흥망성쇠와 지정학은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비단 베스트셀러인 지리의 힘이라는 책을 참고하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특히 그 지정학이라는 특징을 몸으로 깨닫는 위치에 있죠.

극악의 난이도라고 할만한 통일된 대륙인 중국과 바다 건너에 일본,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근대까지 꾸준하게 북방을 위협한 기마 유목민족까지.. 단순하게 위치가 사이일 뿐 아니라 반도라는 특성, 그리고 원나라 이후 중국의 수도인 북경과 가깝다는건 더더욱 신경쓰이는 점이기도 하죠. 이런 지정학적 위치기 때문에 비단 중립외교라고 하는 것은 광해군 뿐만 아니라 고려의 역사라던지 위진 남북조의 고구려 또한 그 궤를 같이하며 때로는 빈 땅을 노리기도, 때로는 양쪽에 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보기도 했죠. 그러나 이런 중립외교는 그 아름다움에 가려져 있는 고통이 함께 있습니다.

너무 오래된 역사인데다가 고구려의 팽창정책으로 유명한 시기이기 때문에 관심을 덜 받는 장수왕때의 동아시아 입니다. 당시의 지도엔 북조와 남조로 단순화 되어 있지만 5호 16국이라 불리는 중국 역사상 춘추 이후 최대 혼란기라고 할만한 이 시기에는 여러 이민족들이 북방에 자신들의 왕조를 세우면서 난립하던 시대입니다. 이 당시의 장수왕은 북조와 남조, 그리고 유목의 유연과 함께 4강을 위시하며, 특히 북조와 남조의 두 세력에게 구애를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치에서 고구려는 안전하게 남진을 도모하기도 했고, 실제로 그 두 왕조에 사신들은 최고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중립외교의 반면에는 선대였던 광개토대왕의 업적에 있습니다. 5호16국으로 나뉘어 아직 합쳐지지 않은 중원 동북방을 고구려가 평정하면서 누구도 얕보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토대 위에서 존재했던 업적입니다. 만약 고구려가 광개토 대왕이 아닌 고국원왕 직후의 팽창전의 국가였다면 과연 이런 중립외교는 힘든 일이 될 수 있었겠죠?

그 다음은 유명한 서희의 외교 담판입니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는 송나라와 일진일퇴하며 동쪽의 고려를 일단 종용시키기 위해 1차 침입을 강행합니다. 여기서 서희는 외교 담판을 통해 오히려 여진이 점령하고 있는 사실상의 빈땅이라 할만한 압록강 동쪽의 6성을 얻어냈습니다. 물론 명분으로는 고구려의 후손이다, 뭐다라는게 있지만 중요한 것은 송나라와의 외교 단절, 요나라의 조공을 보내기 위한 강동6주 고려땅으로 확정이라는 조건과 거란이 침입해왔어도 정작 대군을 보급할 능력도 성을 함락시키지도 못했다는것을 아는 서희에 외교력 덕분이었죠.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지켜야 할 조건을 조율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지나지 않아 다시 거란의 침입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방영중인 고려거란전쟁의 시기에서 현종은 개경에서 나주까지 몽진하면서 버텨내서 거란의 침입을 끝내 막아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3차침입에서는 귀주대첩을 통해 거란을 단단히 물리쳐서 이후 200여년 동안 고려는 송과 요나라 사이에서 평화를 누리는 국가가 됐습니다. 모범적인 중립외교의 사례라고도 불리는 시대죠.
그러나 보시면 아시지만 이러한 평화는 공짜로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서희의 정확한 외교로 얻어낸 6성과 그로부터 지켜낸 흥화진등의 성들, 그리고 전투를 통해 육성한 병력을 통해 귀주에서의 대승리까지 고려는 공짜가 아닌 전쟁을 통해서 우리를 건들이지 말라는 신호를 확실히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중립외교인 광해군의 시대. 성장하는 청과 지고 있는 명 사이에서 우리는 광해군이 등거리 외교를 통해서 피해를 막았다고 배우고 있죠. 그러나 저는 이 점이 잘 못 됐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의 두사례의 중립외교는 “우리 건들지마”가 기본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과 고려의 요나라 격퇴에서 얻어낸 자신감이죠. 그러나 광해군 시기의 중립외교라 부르는 것은 다릅니다. “우린 가만히 있을게” 이 말이죠. 그러나 이건 약자의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누르하치대를 넘어 홍타이지의 시대가 되면 청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 쪽에서 조선에게 “너희 꼼짝말고 있어”라고 하고 우리가 그에 그러겠다고 응답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청나라는 그걸 믿기 위해 인질을 보내라는 수를 쓸 것이고 이미 이시점에서 이건 중립외교가 아닌 친청외교라 해야겠죠.
더구나 그 증거라고 말하는 강홍립의 밀지는 왕이 세울 목표라고 할수도 없고, 사르후 전투에서 조선은 크나큰 피해를 입었죠. 이러한 역사는 힘 없는 중립외교는 단순한 말뿐이며,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 직전의 대한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은 중립국화 되겠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힘없는 나라의 공허한 외침일 뿐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죠. 중립외교라는 것은 혼자서 경제던 군사적이던 침략을 완전히 격퇴할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증거가 되는겁니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더구나 양쪽으론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있구요. 정치떡밥을 제외하고 우리는 말뿐인 중립외교를 선택해선 안됩니다.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런 지정학적 위치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버텨내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임용한 박사님의 영상을 가지고 주저리 주저리 써봤습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