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업) 제 1차 세계대전 중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휴전
브금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수백 명이 넘는 그런 사람들이, 서로 웃어주고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어!
- 크리스마스 정전을 직접 겪은 영국군 육군 병사, 톰의 편지에서

제 1차 세계대전발발 당시만 하더라도 전쟁이 길어야 2~3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전혀 예기치 못한 형태의 전투 현상이 벌어졌다.
구시대적인 생각인 낙관론과는 다르게 고도로 발달된 신무기들에 가로 막혀 진격은 끊임없이 좌절되고 전선은 고착되어 무의미한 희생만 늘어 갔다.
그렇게 참호전이라는 새롭고 끔찍한 양상에 갇혔어야 했던 군인들은 갈수록 지쳐갔다.
하지만 치열했던 1914년에도 겨울은 찾아왔고 어느덧 성탄절이 되었다.
양측의 군인들은 불과 몇십~몇백 미터의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서 서로 대치하던 와중에도 참호 속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조촐하게 행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일부 국가를 제외한 모든 유럽 대륙은 기독교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탄절은 국가를 불문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념일이었다. 그래서 전쟁 중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심각한 상황이 아닌 이상 부대 내에서 자그마한 행사라도 가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 가운데 캐럴 소리는 아군의 참호를 넘어 상대측의 참호에까지 전달되었고 참호 속의 장병들은 비록 서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상대방도 자신들처럼 캐럴을 부르며 성탄절을 기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독일 측에서 참호 위로 촛불이나 전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올려놓기 시작했고 어떤 독일 병사가 용기를 내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참호 밖으로 올라왔다.
평소라면 이렇게 아무런 엄폐물도 없이 당당하게 나타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고 적군의 돌발 행위에 놀란 영국군 측도 당연히 전투 태세를 취했지만...
그런 그를 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을 발단으로 양측의 수많은 장병들이 비무장 상태로 참호 밖으로 올라왔다. 이윽고 대치선의 한가운데서 서로를 마주본 그들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담소를 나누었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서로의 부대 휘장이나 계급장, 군모 등의 소소한 기념품(?)이나 식량, 술, 담배 등 간단한 기호품을 교환하며 우정을 나눴다.
병사들의 이러한 매우 파격적인 일탈 행위를 코앞에서 지켜보던 부사관, 장교들도 대부분 분위기에 동참하여 상대측 지휘관과 만나 신사적으로 조약을 맺고 당분간 교전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때 양 진영 참호 사이의 무인지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어 대치 중 수습이 어려웠던 시체들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었다.
어느 부대는 그 시체들을 치운 빈 땅에 축구장을 급조하여 팀을 나눠서 같이 축구를 즐겼다. 경기 결과는 3-2로 영국이 독일에게 역전패했는데 영국 측은 이를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고 하지만 독일 측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는 양자의 기록이 있다.
이 사건이 벌어졌던 이프르 전투에서 바이에른군 상병 계급으로 전령 임무를 맡고 있었던 아돌프 히틀러는 이 일화를 두고 독일의 치욕이니 위대한 프로이센 군인정신은 어디갔느니 하면서 불평하는 일기를 남겼다.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 정전은 1914년 성탄절 한 번으로 그쳤으며 이듬해에도 일부 전선에서 크리스마스 정전이 재차 시도되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양군 수뇌부는 상대방 진영에서 캐럴 소리가 들린다는 보고를 받으면 즉시 집중 포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1918년까지도 기나긴 참호전 와중에 비교적 격전이 적었던 곳에서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기념일 같은 때에는 암묵적으로 무기를 내린 곳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