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관우, 장비의 죽음
유비, 관우, 장비는 의형제를 맺어, 태어난 것은 다르지만 죽는 것은 같이하자고 하였습니다.
관우의 죽음(160-219)
유비가 촉나라를 세운 후, 군사적 요지였던 형주를 지키다 오나라의 침입으로 죽었습니다.
장비의 죽음(167~221)
관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장비는 오나라를 공격하는 동시에 자신의 휘하에 있는 10만 병졸에게 관우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흰 상복과 흰 깃발을 사흘 안에 준비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보급품을 조달하던 범강과 장달은 10만명의 상복을 그렇게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 없다는 어려움을 장비에게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장비는 오히려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그 둘을 나무에 매달아 50대씩 매를 때리고 다음날까지 준비하지 못하면 목을 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억울하게 매를 맞았다고 생각한 그들은 장비에게 불만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비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할 것 같아 죽음을 각오하여만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범강과 장달은 장비를 죽이고 나서 벤 목을 들고 오나라에 투항하기로 하였습니다.
장비는 관우의 죽음에 슬퍼하여 술을 많이 마시고 잠에 들었습니다. 이를 틈타 범감과 장달은 장비를 죽이기 위해 군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술에 취해 자고 있어야 할 장비는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른 뒷걸음을 쳐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을 때 “더러렁” 하면서 크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서야, 장비는 깊은 잠에 들면 눈을 뜨고 잔다는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은 살금살금 다가가 장비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을 가지고 오나라로 도망을 쳤습니다.
유비의 죽음(161-223)
관우와 장비의 죽음을 들은 유비는 두 명의 동생 모두 오나라 때문에 죽은 것이라 여기고 전쟁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비록 오나라가 관우와 장비를 죽였지만 삼국 중에 강한 나라는 화북지방을 차지한 위나라이기 때문에 사천지방의 촉나라와 강남지방의 오나라는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제갈공명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오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유비가 직접 오나라를 공격하고 촉나라의 근거지 사천지방은 제갈공명이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오나라는 장비를 죽여 투항한 범강과 장달을 유비에게 보냈지만 분노한 유비를 달랠 수는 없었습니다.
오나라의 군사를 이끄는 젋은 장수 육손은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유비를 유인하였습니다. 더운 날씨에 군사들이 지치자 유비는 강 주변의 숲에 진을 치도록 하였습니다. 오나라의 육손은 화공을 통해 유비의 군대를 공격하였고 대패한 유비는 백제성으로 후퇴한 뒤 병이 들었습니다.
오나라에게 패한 소식을 들은 제갈공명은 유비의 아들 유선을 데리고 유비가 있는 백제성으로 갔습니다. 유비는 곧 죽을 것을 직감하고 신하들에게 아들 유선을 중심으로 촉나라를 잘 이끌어 갈 것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제갈공명을 홀로 불러 유선이 총명하지 못하면 제갈공명이 왕위를 찬탈하라고 하였지만 제갈공명은 극구 부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유언을 남기고 유비는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