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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님이 좋아하실 삼국지 인물이 있다!? (上)

뚜자서
23.08.19
·
조회 866
출처 : 본인

이전편 :

침국지 마이너 인물열전 - 장범과 장승 (上)

침국지 마이너 인물열전 - 장범과 장승 (下)

 

 

 

 

 

 

 

 

 

 

 

 

 

 

 

1. 정원사와 과학자

 

 

 

 

 

 

1942년 무렵. 윈난.

 

윈난이라는 중국어 지명보다 운남이라는 한문 독음이 훨씬 친숙한 곳.

 

기골 장대한 호걸들을 우습게 할, 키 큰 나무들이 싱그러이 우거진 땅.

 

남만왕 맹획과 김종수의 육중한 발자욱이 아련한 고장.

 

독천과 만두와 코끼리와 칠종칠금,

 

낭만적인 옛 전설들이 까부는 고향.

 

가끔 남만대왕이 이벤트로 3천 명의 대군을 지원해주면, 그 은혜에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게 되는 장소입니다.

 

 

 

 

 

 

지구 반대편 로스 앨러모스에선 맨해튼 계획이 한창일 무렵,

 

승상 제갈량이 아닌 총통 장제스가 통치하던 시대에

 

어느 나이든 정원사가 나무를 접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영국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그것을 지나치지 않았지요.

 

 

 

 

 

 

운남의 따끔한 더위에 땀을 뻘뻘 흘렸을 노정원사의 모습은

 

영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이 시대에 유럽인들은 공공연하게 인종의 우열을 나누었고

 

동방의 흙 묻은 정원사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국적인 구경거리였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신비로운 이교도의 재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한 농사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미개하고 저열한 우둔함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영국인의 눈길은 달랐습니다.

 

그가 누군고 하니, 영국이 자랑하는 생화학자.

 

24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만도 대단한데

 

지도교수는 비타민의 개념을 기초하는 등의 공로로 얼마 뒤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1929)하는 위대한 생화학자 프레데릭 홉킨스.

 

29세에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가 되고

 

31세에는 《화학적 발생학》, 34세에는 《발생학의 역사》 등 훌륭한 책도 남깁니다.

 

41세에 왕립학회 회원에 임명되었으니, 그의 학문적 명성은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고 해도 되겠지요.

 

 

 

 

앞으로 명성을 떨칠 일만 남아 있을 이 영국인 과학자가 운남까지 온 계기는

 

중일전쟁의 비극이 시작된 1937년이었는데요.

 

케임브리지에 유학 온 세 사람의 중국인 과학자와 교류하며 중국 역사와 문화에 매료된 그는,

 

영국 정부에서 장제스를 지원하려 발족한 중영과학합작관의 책임자가 되어 먼 길을 온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기차나 버스 차창에서

 

먼 풍경을 바라보며 의외의 발상을 하거나,

 

혹은 샤워를 하다가 독특한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가 있죠?

 

저는 주로 오늘 저녁 메뉴 같은 것이나 불현듯 떠올리고 자빠졌지만

 

이 교수님은 과연 괜히 수재가 아니었는지, 정원사를 지켜보다가 문득 훨씬 더 유익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 영국에서 아버지가 정원 손질하던 모습이랑 많이 다르네?

 

같은 접붙이기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발생하지?

 

혹시 저것 또한 중국의 과학기술에 수천 년 동안 누적된 고유의 역사 때문일까?'

 

 

 

 

 

 

그 어느 역사책에도 이름이 남지 않은 평범한 정원사 노인이 준 영감은

 

훗날 20세기의 과학사에 이름을 올리는 명저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 생화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이자 중국학자의 이름은 조지프 니덤(1900~1995).

 

그가 중국 여행을 계기로 기획해 출판한 책이 바로 유명한

 

 

 

 

 

《중국의 과학과 문명》입니다.

 

표지부터 꼭 관운장 귀신이 들려서 생화학적 문제를 유발할 것만 같아 중원의 느낌이 낭낭하네요.

 

중국 전통사회의 과학기술을 한 자리에 집대성한다는 거대한 포부를 지니고 쓰인 책은

 

출판 당시에는 상당한 오해와 비판을 받았지만,

 

점차 많은 과학자들이 이 방대한 저술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흔히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이 중국의 4대 발명으로 꼽히는데,

 

그 4가지 발명품이 ‘4대 발명’으로 묶여서 불리는 것 또한 니덤 교수가 이 책에서 대중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 책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지요.

 

 

 

 

 

 

니덤은 정통 커리어를 밟은 생화학자로서 과학의 보편성을 강조했고,

 

그렇기에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국경이 없다고 믿었으며

 

유럽인이건 아프리카인이건 아시아인이건 모두 공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훗날 니덤은 조선 시대의 천문학에 대해서도 책을 썼습니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 서문에서 니덤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과학의 발전에 특정 민족이나 집단만이 독점적으로 기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업적은 모두 서로 존중되어야 하고, 보편적인 형제애의 관점에서 함께 축하해야 마땅합니다.

 

 

 

 

반세기 뒤인 오늘날, 

 

한국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방장 방송에서 오펜하이머 영화를 소개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시대가 왔으니,

 

과학은 비단 국경뿐 아니라 평소의 관심사조차도 초월하는 것이겠지요.

 

니덤의 말은 실로 옳았습니다.

 

 

 

 

 

 

니덤과 오펜하이머의 삶을 같이 보면 재미있는데,

 

두 과학자의 삶에 비슷한 측면이 있으면서도 달랐기 때문이죠.

 

이들은 모두 각자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뛰어난 과학자였으면서도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으며,

 

매카시즘으로 곤욕을 치렀다는 점은 물론

 

(가족들끼리 보러 온 관객들을 적잖이 당황시키는) 불륜이 개인사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단 점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그 무엇보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그건 당연하게도 국적이었습니다.

 

니덤은 CIA의 경계를 사거나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미국 정부에서 영국인이었던 그에게 청문회를 열 일은 없었으니

 

고국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과학계의 중국민수로 칭송을 받는 등 매우 성공적인 삶을 누렸지요.

 

반대로 오펜하이머의 경우 영화에서 잘 드러나듯

 

그토록 큰 애국심과 재능으로 국가적 프로젝트에 헌신했음에도 불우한 말년을 맞고 말았으니,

 

거대한 역사와 국가의 파도 앞에서는 세상을 바꾼 천재 과학자조차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의 삶은 이렇게 흥미진진하여 영화 소재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2시간 동안 광고방송을 하기에도 충분하지요.

 

당연히 그 이상 오랫동안 지속되며 방장을 피로로 몰아넣는 특강 방송을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3세기 위나라 과학자의 삶은 어땠을까요?

 

 

 

 

 

 

 

 

이것은 중국의 과학사에 나름의 영향을 미친, 어느 삼국지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2. 침국지 속의 한기

 

 

 

저는 아직도 왼쪽 얼굴만 보면 오금이 저립니다.

 

이목구비가 기분 나쁜 정도로 방장을 닮았다는 평과 함께

 

극찬 중의 극찬인 “너무 싫어”까지 들은 저 신무장 얼굴 좀 보십시오.

 

사실상 철면수심님의 증명사진과도 같은 하후무 얼굴이 있을 정도로 삼국지 일러스트의 양과 질이 방대하다지만

 

괜히 주펄님이 너무 닮아서 징그러울 정도라고 힐난할 것이 아닙니다.

 

 

 

 

 

너무 당황해서인지 오른쪽에 계신 한기 할아버지도 면전에서 등용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허창 일대를 지배한 주펄(字 싹스)의 초빙을 거절하고 한 차례 튕기는 장면.

 

웬 공구를 들고 계신 것도 급히 호신용품을 마련할 길이 없었기 때문일런지요?

 

솔직히 이 상황에서 등용을 거절당한 것은, 세력에 비전이 없거나 유망하지 못하거나 따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번 여러분에게 저렇게 생긴 사람이 현인을 구한다고 광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너무 수상하지 않나요?

 

누가 봐도 방장의 복제인간 내지 메타몽이 분명한 존재가 날 천거하고 있다면

 

미치광이가 아닌 이상 의심을 해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어느 한국인이라고 해도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삼국지 시리즈 내내 존재감이 없다가 14에서 추가된 이 한기라는 문관은

 

침국지에 이렇게 데뷔했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때 방장이 난이도를 최고 난이도인 궁극으로 설정해버리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패배한 나머지 별달리 활약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삼국지 게임에서 문관이 원래 대접이 박한 편이지만

 

누가 왔어도 대충 잊힐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밖에 간접적으로나마 침국지에서 한기가 나온 적은, 제가 기억하기로는 요 노인 패키지 설명인데요.

 

삼국지 14의 영웅난무 시나리오는 뚜렷한 컨셉에 맞춰 무장을 배치한 올스타 시나리오로,

 

초선과 여포만으로 이루어진 세력이 있달지, 능력치가 구린 인물뿐이라던지, 허약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나 관우 매니아로 구성된 세력이 있는 등

 

유비 조조 손권의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하고도 참신한 구도가 돋보입니다.

 

그 중 강하에 자리잡은 황충 세력의 면면을 좀 보십시오.

 

황충 황개 엄안 하면 삼국지 속 알아주는 노익장들이고,

 

나머지 인물들도 전부 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장소 장굉은 말할 것도 없고, 왕윤이나 진규 같은 사람들도 노인 이미지가 깊게 박힌 인물들이죠.

 

“애송이들의 연륜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음”

 

세력 모토에서도 이렇게나 노장의 자부심이 흘러넘칩니다.

 

 

 

 

 

 

 

그 중 하나가 저 한기로, 척 보기에도 관직 경력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흰 머리와 수염을 통해

 

노인들의 세력에서 정정히 문관 역할을 해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청년회에 가입해야 합니다.

 

 

 

 

 

 

 

 

능력치를 한 번 봅시다.

 

지난번에 다루었던 장범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 속에서 “9, 6, 그래도 필요해!” 하고 절실히 인재를 찾아 헤매던 방장의 말이 남 얘기 같지 않네요.

 

하필 그때 같이 발견된 인재 중에 이엄이 끼어있어 가지고

 

둘 사이의 능력치 차이가 너무 뚜렷했기에 초라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통솔 9에 무력 6이면 저 오각형 능력치 그래프를 사각형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지만,

 

그나마 정치 75니까 농업 발전에는 제 역할을 하기 좋아 기용해볼 만은 합니다.

 

 

 

 

 

다만 질나쁜 것은 개성이랍시고 있는 것 딱 하나가 ‘발명’이란 것입니다.

 

발명 개성의 효과는 ‘자신 부대 진형이 병기인 경우, 공성과 파성이 1.2배 증가’입니다.

 

이 효과만 놓고 본다면 제법 좋은 개성에 속합니다.

 

공성병기는 어차피 야전에서 공방에 쓰기 위해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니까

 

딱 공성과 파성만 올려줘도 필요한 능력치는 다 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통솔 9에 무력 6인 책상물림을 전선에 내보내겠어요?

 

아무리 1.2배 증가 버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통솔 70, 아니 70도 아니고 하다못해 50대 중반인 무관한테 병기를 쥐어주는 것만 못합니다.

 

이래서는 사실상 아무 개성이 없는 무장이나 진배없죠.

 

일부러 사람 놀리려고 악질적인 개성을 배치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괴상한 개성을 받은 무장이 가끔 있지만,

 

통솔 9 줘놓고 전투 개성을 쥐어준 한기가 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나 싶습니다.

 

 

 

 

 

 

그에 비해 일러스트는 아주 인상적인데,

 

아마 목공예에 쓰일 끌을 들고 있고, 웬 수레바퀴 같은 모형도 품에 안고 있으니 잊기가 더 힘들지요.

 

저 끌도 엄연히 흉기이니만큼 저것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력 +10 정도는 보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한기의 본 무력은 -4쯤 되는 것일 텐데,

 

만일 한기 할아버지가 음의 질량을 가지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가 주먹질을 하는 즉시 중원이 멸망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납니다.

 

이런 가정을 해봄직할 만큼, 끌을 든 한기의 무력 6은 몹시 낮은 것이지요.

 

하다 못해 유희왕 카드게임에 나오는 블랙 매지션도

 

제가 듣기론 들고 있는 지팡이랑 방어구가 따로 몬스터로 출시되었지만,

 

지팡이 능력치랑 방어구 능력치를 원본에서 빼면 사실 개줫밥이었다는 밈을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템이 중요해도 이런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해요.

 

일신의 무력이 마치 마법 무구에 의존하는 블랙 매지션처럼 추잡하거나, 아니면 반물질 펀치를 날릴 수 있다니 너무 극단적인 무력입니다.

 

무력 6에 흉기를 들고 있다는 건 그만큼 구제의 여지가 없단 거죠.

 

 

 

 

 

 

그렇다면 왜 이 사람은 유일한 개성으로 하필 발명을 받았는가?

 

능력치는 제대로 주어진 것일까?

 

한번 한기의 생애를 향해 출발해 봅시다.

 

 

 

 

 

 

 

 

 

 

 

 

3. 300마력의 사나이

 

 

 

초한지 속 명장 한신.

 

배수진으로 유명하며, 대단한 명장이었지만 그에 반비례하는 눈치를 가졌기에 유방에게 숙청당한 토사구팽의 원조죠.

 

그런데 초한지에는 또 한 명의 한신이 등장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일명 ‘한왕 신’으로 불리는 동명이인으로,

 

전국시대에 진나라에게 멸망당한 한나라(韓)의 후예였다가 복잡한 커리어를 겪고 유방 밑에서 다시 제후왕이 된 사람입니다.

 

유방의 개국공신들 중 많은 이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듯 이 사람 역시 흉노에 투항했지만,

 

자손들은 죄에 연좌되지 않고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리하여 후한 때로 오게 되어도 그의 후손들은 나름 일가를 이룬 것으로 보이는데,

 

한기의 조부와 아버지 모두 태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유복한 집안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기의 젊은 시절 삶은 상당히 불우했던 모양인데요.

 

고향 땅의 유력한 지역 호족이었던 진무라는 사람이 아버지와 형을 헐뜯어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아버지가 죽었다면 효도(물리)를 하는 사례가 멀리 있지 않지요?

 

한기는 이렇게 집안이 몰락해 가난한 서민으로 전락하는 듯했으나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에 풀칠해가며 돈을 모아 킬러를 고용합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법망 밖에서 복수를 한다는 것이

 

그 동기를 막론하고 허용되지 않는 폭력이기 때문에 골때리는 일처럼 들리지만,

 

한기는 이렇게 가족의 원수였던 진무를 사로잡아 죽인 후

 

그 머리를 몸에서 분리해 아버지 묘소에 바치고 제사를 지낸 것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해냈구나 한기.

 

 

 

 

 

이 시대의 유교 윤리상 사회 규범을 벗어나더라도 효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감이 있어서

 

하후돈도 스승을 모욕한 사람을 살해한 걸 계기로 유명해지기도 했지요.

 

조조전의 포차 아저씨 유엽도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집안의 못된 계집종을 죽였는데, 그때 나이가 고작 13세였으니 우리 시대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도덕관념이라 하겠습니다.

 

이 칙칙한 중원에서 효를 실천하기만 한다면 선비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기에

 

원소도 육년상을 치르면서 명성을 거머쥔 것이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사람 한둘 죽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아서 가끔 후한 사회가 참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 경우 진무는 참언을 해서 한기의 가족 둘을 죽여버렸으니 그나마 죽을 짓을 했다는 느낌은 강하게 옵니다.

 

현대의 복수극에서도 이해할 만한 동기지요.

 

 

 

 

복수는 복수만을 낳고 허무해질 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신 건강을 위해서 복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후한 시대엔 혈연의 원수를 잘 갚으면 효자 열녀로 이름을 떨치며 경우에 따라 관직도 얻을 수 있지요.

 

한기는 효렴으로 천거되어 사공 밑에서 일할 기회를 얻지만, 모두 응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이름을 바꿔버리고 산 속에 은거하기까지 하는데요.

 

결국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현타가 온 것인지, 아니면 혼란스런 세상에 염증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한기는 두문불출하게 됩니다.

 

 

 

 

 

(산 속에 터잡은 거친 지역 주민들의 상상도)

 

 

 

 

난세의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한기처럼 사대부 출신이면서 잠시 환란을 피하려 산을 택한 이들도 있는가 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한때 평범하고 성실한 농부였다가

 

황건적이다 조정의 부역이다 해서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생활에

 

결국 못 버티고 숨어든 유랑민들이지요.

 

당연히 이들이 한나라에 불만을 안 갖고 백성 노릇하면 그게 보살이고 부처입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을 갖고 있는 거친 사람들이다 이겁니다.

 

이 사람들이 아무리 착하게 살자고 마음을 먹는다 한들

 

농토를 버리고 도망간 이들로서는 다른 생계수단이 없습니다. 그 많은 도망자들이 다 버섯이나 산나물을 캐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돼지는 잡아도 사람을 쑤셔본 적이 없다고 한들

 

결국 강도질을 감행해야 하는 딱한 운명.

 

한기가 숨어든 노양산에서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도적질을 하려 듭니다.

 

산사람들이 산적 되는 것이 순식간인 상황.

 

 

 

 

 

 

 

 

 

그때 한기가 나타나 일촉즉발의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합니다.

 

자기 가산을 털어서 소를 잡고 술판을 벌이더니

 

자기를 두목으로 임명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무엇을 하면 안전하고, 무엇을 하면 위험에 빠지는지 일장 연설을 합니다.

 

 

 

 

여러분. 고기를 사주는 사람에게 어찌 감히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옛말이 괜히 있지 않죠.

 

이미 선뜻 술과 고기를 대령한 이상 한기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만일 여기서 “니가 왜 우리 두목이야?” 하고 눈치없이 욕하는 이가 나오면

 

더 이상 고기를 먹지 못할 수 있단 거대한 불안감만이 엄습해 오지 않았을까요?

 

오늘날에도 비즈니스부터 상견례까지 맛있는 식당에서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한기는 그런 진리를 알고 있었기에 한 상 차림을 미끼로 내걸어서 최적의 협상 타이밍을 맞춰보려고 한 게 아닐까요.

 

실제로 사람들이 한기를 우두머리로 따르게 되었는지, 산사람들은 그에게 교화되어 끝까지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제든 봉기할 준비가 되어있는 불만세력이 도적질을 꿈꾸고 있는데

 

그들과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해법을 찾아나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한기는 돈과 눈치, 언변, 카리스마로 그들을 사로잡은 셈이지요.

 

남만인들의 마음을 진정 정복해야 한다던 연의 속 마속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즉 한기의 일러스트 속 노인이 제법 고집이 있게 생긴 것이,

 

성질 죽기 전에는 과단성을 보인 것처럼 그려진 것도 제법 일리가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이런 모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이걸 ‘교화했다’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지운을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올리시는 분들이 있을 만큼 지배력이 강한 인상이잖아요.

 

저 우거진 수풀은 노양산의 자연 풍광을 암시하는 것일까?

 

 

 

 

 

 

 

 

 

 

 

 

아직 내용이 한참 남아서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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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3
< 삼린이를 위한 삼국지 용어 이야기 > - 손제리와 이궁의 변 58
삼국지
병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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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1
침국지 마이너 인물열전 - 순대국밥 아저씨 창자 (上) 5
삼국지
뚜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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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6
"아 근친충 극혐이네 ㅋㅋ" 2
삼국지
뚜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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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3
거듭된 좌절로 인해 늠름해진 조홍.jpg 6
삼국지
좌절하지않는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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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2
삼국지 최악의 상사 11
삼국지
뚜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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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2
궤도님이 좋아하실 삼국지 인물이 있다!? (下) 4
삼국지
뚜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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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