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국지 마이너 인물열전 - 장범과 장승 (下)
이전편 :

상편 요약 :
이세삼공의 명문가에서 자란 내가 백수로 살다 원술에게 초빙되다니 도망은 무리! (※ 무리가 아니었다?!)
3-3. 단신으로 인질을 구출하다
소제목을 저렇게 써놓고 나니 꼭 조자룡처럼 적진을 휘젓고 인질을 구출한 것 같네요.
그러나 장범은 통솔 10에 무력 7의 능력치를 배정받았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10/7이라고만 써두면 이게 사람 능력치인지 날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유약한 10/7 아저씨에게
일신의 무용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요.
당연히 글줄을 배운 문관이면 주먹질 대신 능수능란한 대화와 협상을 기초로 인질을 구출하는 것이 아니겠나요.
지난화에서 보듯,
장범과 장승 형제는 원술에게 극진한 예우로 초빙을 받았지만 스카웃 제의를 거절,
틀어박힌 형 대신 원술을 만난 장승은 대뜸 소신발언으로 원술을 괴롭힙니다.
세상에는 감히 옛 직장에 찾아와 소신발언 끝에 노잼이라는 이유로 30일 정지를 받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원술처럼 독특한 정신세계의 소유자에게 작심발언을 하고도 목숨을 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운명이란 얄궂고 또 기적적인 것이지요.
중간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장승과 장범은 성공적으로 원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원술은 비록 이들 형제의 진가를 알아주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가문과 명망이 중요한 시대.
인재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군웅들은 마치 침국지 영상에서 항상 자동탐색을 돌리는 방장과도 같이 탐욕스럽습니다.
장씨 형제 같은 유력자가 언제까지고 방랑을 하게끔 시대가 놔두지 않는 것이지요.
원술에 뒤이어 두 사람에게 눈독을 들인 인물은,
다름아닌 인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조조였습니다.
조조는 기주를 평정하고 난 다음 사신을 파견해 장범을 영접합니다.
역시 허약체질 혹은 갓수 꾀병 탓인지
장범은 이번에도 병 때문에 팽성에 남고 동생 장승을 대신 보냅니다.
팽성은 서주에 소속된 지역으로 조조의 핵심 근거지인 예주와 가까웠는데,
아마 장범과 장승은 원술을 피해 북쪽으로 달아나다가 팽성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ㅈ소 면접에 이어 대기업 면접 자리까지 본인이 못 가겠다고 동생한테 땜빵을 부탁하다니…
라면 하나 끓여달라고 톡 보내도 킹받는 것이 형제지간의 정이건만 군말없이 잘 참아주고 있네요.
장승은 속으로 얼마나 화났을까?
아니면 본인만이라도 조조에게 가서 중앙조정에서 다시 관리가 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좋았을지도?
조조는 표문을 올려 장승을 간의대부로 삼습니다.
동탁 집권 시절에도 그렇고 장승은 항상 형을 제치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셈이지요.
장범은 동생을 제물로 삼아 팽성에서 딩가딩가 요양을 할 수 있던 것처럼 보였지만,
과연 난세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지요.
장범의 아들 장릉, 장승의 아들 장전이 산동에서 도적에게 붙잡히는 불운이 닥친 것입니다.
제아무리 일하기 싫은 장범이라도 해도 결코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
장범은 곧바로 도적들을 만나 두 사람을 풀어달라고 간청합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이 도적들이 태생부터 극악한 인물들은 아니었는지
“헤헤헤 인질의 아버지가 와서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죽여서 금품을 빼앗아라!”
같은 파렴치한 생각을 할 만도 할 텐데
오히려 장범의 말대로 아들 장릉을 돌려주는 선의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일은 다음에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내 아들을 돌려보내주다니 인심이 후하시오.
그러나, 비록 사람의 정이란 게 그 자식을 사랑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조카 장전의 나이가 어린 것이 딱하오.
우리 아들 장릉을 돌려드릴 테니 장전을 그 대신 풀어주시길 부탁드리오."

!!!!
도적들은 이 말을 의롭다고 여겨 둘을 모두 풀어줍니다.
이 일화는 장범의 성품을 직접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포기하면서까지 어린 조카를 구하려는 심리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자기 가족들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인 난세에서
어린 조카를 걱정해 아들의 목숨과 저울질을 하게 된 장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비록 고대 중국에서는 오늘날보다 친족들끼리 훨씬 가까웠기에
조카라고 해도 결코 데먼데먼한 사이가 아니었을 테지만,
사람이 정말 작정하고 자기 자식만 구하려고 하면 그 또한 얼마든지 가능했겠지요.
이미 아픈 서생의 몸을 끌고 도적들을 대면한 시점에서
친척으로서의 도리는 충분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게다가 도적들이 명문가 눈치를 보면서 사람을 납치하는 것도 아닌데
씨알도 안 먹힐 상황에서 인질 둘 중 하나를 풀어주도록 설득에 성공하다니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단하지 않나요?
그런데도 한 인간으로서의, 부모로서의 사심을 극한까지 억제하고
조카를 풀어주도록 결단을 내린 장범.
한편으로는 거의 종교에서 믿는 성인처럼 숭고하고 위대해 보이기도 하면서
너무 대단한 겸애를 발휘한 나머지 ‘아들인 장릉 입장에서는 가혹한 아버지였겠구나!’ 같은 생각도 듭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자기 아들을 초개처럼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장범이
솔직히 좀 과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고 싶진 않았던 영웅들이 무수히 많았던 저 난세에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한 쪽을 살리겠다고 얼음장같이 냉정히 결정한 모습은
실로 보기 드문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아마 유비 조조 손권 중 상사로 섬길 사람을 고르라면 즉시 도망간 다음 좀 답답할지언정 장범을 택하겠습니다.
또, 장성한 아들과 어린 조카 중 누굴 살리느냐 하는 문제는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어찌되었건 설득에 성공해서 두 사람 다 구출하는 해피엔딩을 맞았으니
결국 장범이 협상의 달인이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겠지요.
도적들의 기저심리를 정확히 파고든 기지와 수사법을 높이 평가받을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장릉과 장전은 갓수지만 착한 아빠 혹은 삼촌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뱀~ 다행이잖슴~
3-4. 도네로 명성을 떨치는 갓수의 왕 장범
유표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조조는 형주를 접수했지만,
적벽이 대충 망한 뒤 천하통일의 패업을 완성하진 못한 채 업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주에서 돌아온 조조는 진군(예주. 삼국지 시리즈로 치면 허창과 여남과 코 닿을 곳입니다)에서 장범을 만났고,
이제껏 공식적인 직함 하나 없었던 장범은 의랑이 되어 승상부의 업무에 참여하게 됩니다.
조조가 장범을 어찌나 중히 여겼는지,
조조가 외부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정벌을 시도할 때만 되면 조비가 항상 수도를 지켰는데
그때 꼭 함께 남겨 머무르게 한 사람이 두 명 있었지요.

한 명이 장범과 같은 권에 열전이 실린 병원(邴原)이라는 신하.
그리고 장범 본인이었습니다.
조조는 조비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거동 하나하나에 반드시 이 두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도록 하거라.”
이 말을 실천에 옮긴 조비는, 가끔씩 개더러워지는 성질을 잘 죽였는지
장범과 병원에게 아들과 손자처럼 예를 깍듯이 갖추어 대접합니다.
조비로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평판을 가진 명사였다고 할까요.
게다가 장범은 이렇게 높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아직 갓수의 미덕을 잃지 않았는데요.
갓수의 미덕 하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바로 도네입니다.
저는 철면수심님 투기장 방송을 가끔 풀면수심 유튜브에서 다시 보는데요.
아니 글쎄, 철면수심님이 화장실에 가실 때마다 어떤 지독한 분이 변기 내리는 소리를 음성도네로 쏴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돈이란 마땅히 고된 노동을 통해 벌어야 할 것인데,
그저 화장실에 가는 것만으로 가산을 축적하다니!
잠실이 부귀한 비밀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천금이 위장에서 비롯하는 분도 계신 것입니다.
심지어 간혹 저그 무리가 울부짖는 소리를 대신 도네하시기도 하는데, 정말 화장실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그 모든 것이 실로 기이한 일입니다만 더욱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화장실 음성을 보내주시는 분이 다 같은 분인 모양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분은 철면수심님 방송을 항시 주시하시다가
철면수심님이 화장실 가고 싶어하시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한 연후에
그때마다 자산을 천 원씩 흔쾌히 쾌척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남을 돕길 좋아하는 사대부의 행동이고 재산을 아끼지 않는 은혜로운 모습이 틀림없습니다.
스트리머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런 행동을 하기 쉽지 않잖아요.
철면수심님이 화장실을 언제 가고 싶어하실 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그냥 변의가 끓어오르시거나, 혹은 육포를 드시고 싶으실 때 랜덤하게 방문하시겠죠.
그런데 항상 주시 끝에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 도네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어려운 걸 무슨 수로 쉽게 할 수 있겠나요.
사랑을 하려면 알아야 하는 법이라던데, 실로 그를 증명하는 미담이 아닙니까!
저는 그분의 화장실 도네에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장범은 제가 방금 말씀드린 그분처럼 도네를 즐겨했습니다. 열전 속의 그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빈궁한 이들을 구제하여 집안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중외(中外, 안과 바깥)의 고아와 과부들이 모두 그에게 귀의했다.”
청년 시절부터 도를 즐겼다고 했던 것이 마냥 힙스터 기질뿐은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내려놓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의지가 충만하였던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가산을 전부 털어서 자선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태수나 현령이 이런 행동을 하면, 그것은 업무상 지역 주민들에게 애민정신을 발휘해야 하니까 의무감 또한 작용한 결과였을 텐데
장범은 그런 직책에 있지 않았음에도 선뜻 자신의 부를 타인에게 덜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오며가며 걸인이 보이면 적선하는 수준이 아니라
과장이 섞여 있다고 해도 (수도) 안팎의 고아와 과부들이 장범의 기부로 혜택을 볼 정도라면 참으로 위대한 선행일 테지만,
출사를 포기하고 귀신같이 병을 명목으로 틀어박히는 장범의 앞선 모습들을 보면
이 사람은 명성을 쌓거나 롱런하려고 처세를 했다기보단
진짜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딱히 필요 없는 것들을 나눠준다는 마인드로 기부에 임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정 훌륭한 풍월주인한량은 이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재밋는 건 그 다음 부분인데
“선물을 보내오면 돌려보내진 않았지만, 또한 끝까지 쓰지는 않았으니, 나중에 모두 돌려주었다.”
이것도 참 청빈한 삶을 실천한 사람이란 뜻이죠.
근데 하도 동생을 보내서 대신 이야기를 시키다보니
제 머릿속에선 장범이 묘하게 사교성이 부족한 바른생활 히키코모리의 이미지가 각인이 되어 있고,
그래서 그런가
사실 원래 선물을 받아도 안 쓰니까 돌려주곤 싶지만
소심해서 직접 “그… 그냥 도로 가져가세요…” 란 말을 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둔 나머지
세월이 흘러간 뒤에야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아닌가 좀 의심스럽습니다.
여러분은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으면 잘 대해주도록 합시다. 다 착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기부천사 장범은, 그 밖에는 크게 제도나 행정에 공헌한 일화는 없으나
모개와 더불어 조조의 인사 담당자로 활약하며 사람을 잘 뽑았다고 알려진 최염에게 병원과 더불어 극찬을 받습니다.
"징사 병원과 의랑 장범은 모두 덕이 굳세며 순수한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뜻과 행동이 충실합니다.
그들의 청정함은 사나운 풍속을 교화하기에 충분하며, 곧은 성품은 일의 핵심을 맡기기에 충분합니다.
이른바 용환봉익, 곧 용과 봉황의 날개와도 같으니 국가의 중요한 보물이라 하겠습니다.
그들을 받들어 쓰시면 어질지 못한 자가 멀어질 것입니다."
(논어 안연편에 “순임금이 천하를 얻고 사람들 중 고요를 선발하니 어질지 못한 자가 멀어졌다. 탕왕이 천하를 얻고 사람들 중 이윤을 선발하니 어질지 못한 자가 멀어졌다.”는 구절이 있는데요. 아마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국가적으로 존경을 받던 장범은 212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동생 장승은 그 뒤로도 조금 더 살아서, 위나라가 처음 세워지자 승상참군좨주와 조군태수를 겸임하게 되어, 교화를 크게 행합니다.
승상참군좨주는 승상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수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형만큼은 아니어도 존재감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조조가 서쪽을 정벌할 무렵(아마 장로 정벌이나 한중공방전 무렵일 것입니다) 군사에 참여하여 참군으로 임명되었지만,
장안에 도착하고 나서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노령이어서 멀리 원정군과 동행하면서 일을 보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이들은 순욱 같은 모사들처럼 화려한 계책을 내어 역사서에 기록된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위나라에 대단히 크게 공헌했다는 인상이 잘 들진 않습니다.
최소한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려져야 인상이라도 생기는 것인데, 존재감도 너무 없고요.
연의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 사람들이란 점도 한층 듣보잡 같습니다.
그렇게 사람들 많이 나오는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지금껏 나오지 못하다가 14에서야 추가되었다면
아무리 영공조징이 눈에 선한 한국인이라도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나름 인물을 충실히 살려 교화나 소욕 같은 개성도 받았지만 능력치도 별 거 없고요.
솔직히 명성이나 자비 특기 정도는 더 줘도 될 것 같은데
졸지에 침소의 곳간을 털어가는 포상 중독자 신세가 되었으니 크게 안타깝습니다. 배원소가 낫더라고요.
그렇지만 이들 모두 나름의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 사람들이니
재밌고 보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원의 봇치, 기부의 왕, 철면수심 투기장 주시자 장범과 그 뒤치다꺼리를 해준 장승을 기억해주십시오.
그리고 코에이가 정신차리고 다음 작품을 내서 방장이 삼국지 15 방송까지 할 날이 도래한다면
그때는 나름 조비와 수도를 사수하던 장범의 능력치는 좀 더 올려주길 바랍니다.
통솔 10은 좀 너무하지 않나요?
이만 저는 물러갑니다.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