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국지 마이너 인물열전 - 장범과 장승 (上)

마치 풍월량님의 새 스튜디오를 방문한 전무님처럼 갑작스레 들이닥친 침국지 14.
그동안 침국지 14 영상 기근으로 신음하던 삼크리트들에게
비로소 한 줄기 광명이 찾아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침하하 횐님 제현들은 이 풍요의 계절을 잘 즐기고 계신지용 허허헙.
침국지가 수백만뷰를 찍은 것도 이제 옛일처럼 느껴지는 지금,
유관장이나 조조 손권 같은 이름난 호걸들과 모사들은
방장의 수많은 삼국지 월드컵은 물론,
티어메이커 등에도 힘입어 여러 차례 조명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런 유명인사들과는 다른 이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미처 침국지 좌석예매에 실패한 나머지
침국지의 말석에 앉지 못해 조명되지 못한 사람들,
영공조징으로 단련된 한국인들조차
“이건 또 누구야?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하고 넘어갈 만큼 존재감이 없는,
그러나 방장의 침국지 14에서 얼굴 한 번씩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아 누구지 싶은,
그런 무색무취한 인물들에게 바치는 헌사입니다.
그 첫 편은, 장범과 장승에게 돌립니다.
1. 장씨 형제와 삼국지 14

(<삼국지 14 : 원소원술전> 도중.
대충 망한 원소군의 열악한 인재풀에 기겁해 재빨리 등용을 시도하는 방장의 모습이다.)
삼국지 14 가상 시나리오. 하북영웅 공손찬.
실제 역사와 달리, 원소가 공손찬에게 철저히 패배해 하북을 빼앗긴 가상 시나리오입니다.
충성스러운 신하 몇몇만 가까스로 데리고 고향 여남으로 달아난 원소는 원술과 힘을 합쳐
시나리오 소개 문구 그대로 기적의 대역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나리오 속 원소군의 사정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기에
실로 호기롭게 도전한 방장에게 ‘(봉)신야’라는 치욕을 안겨주었지요.
이 영상에서도 출연했듯, 이때 여남의 재야로 처음부터 등장한 재야무장이 바로 장범과 장승이었는데요.
능력치가 그다지 좋지는 못했기에 기억에 남지 않았고,
둘 다 장씨라서 방장은 ‘이름 비슷한 문관들’로 이들을 기억할 뿐이었습니다.



침소군은 사실상 황건적 떨거지들을 규합한 신야 도적 무리나 진배없었으므로,
몇 안되는 문관인 이들은 나름 내정에 기여하기도 하였으나
그 실상은 게임 내내 소중한 100원 포상을 야금야금 쳐먹으면서 원씨의 금고를 거덜내는 웬수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봉기가 자랑스런 침소의 뒤를 잇자
1턴 사이에 둘이 모조리 (봉)신야를 손절해 바람처럼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그렇게까지 포상을 준 것치곤 초라한 인사관리였던 것이지요.
이 사람들의 능력치를 좀 더 살펴봅시다.

장범입니다.
어딘가 딱부러지지 못하고 초췌해 보이는 일러스트가 사못 현대의 직장인을 연상케 합니다.
누가 보아도 이 사람을 전장에 내보내어서는 안된다는 통솔과 무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답니다.
통솔 10 무력 7은 척 보기에도 낮은 수치긴 하지만 과연 얼마나 낮은 것일까요?
한현전에서 147 아저씨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상폐급 한현도 통솔 22, 무력 33입니다.
147 아저씨 한현보다도 못한 10/7 아저씨죠.
반면 지력 64, 정치 72, 매력 78은 빈말로라도 우수한 문관이라고 하긴 어려우나
시설에 배치해 내정을 돌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파란 개성 두 개를 갖고 있다는 점도 나름 쓸만한데,
시설에 배치하면 병사가 빨리 모이는 교화, 월급을 남들의 절반만 받아가는 소욕입니다.
소소하게 유용한 정도일 뿐 그다지 티나는 개성은 아닙니다.
그냥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무색무취하기 이를 데 없는, 삼국지 게임에 넘쳐나는 잡문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승입니다.
일러스트가 여느 얄쌍한 먹물들과 달리 제법 푸짐한 것이 한 번 보고 잊어버리기 어렵게 생겼어요.
장범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여전히 써먹기 힘든 통솔과 무력의 소유자입니다.
흡사 장범의 매력을 지력에 떼어준 것 같은 능력치로,
역시 A급과는 거리가 먼 무난무난한 문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성은 교화 하나입니다.
그래도 장범에 비해 장승이 더 나은 점을 하나 빼놓을 수 없는데요!
삼국지 게임에서 지력이 70 이상인 문관과 70 아래인 문관은 활용도가 천지차이라는 것은
충격적인 ‘감나무 그 사건’을 목격한 한국인이라면 모두 익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지력 90대 후반의 군사 김종수조차, 총명함을 모두 잃고 군사 자리에서 쫓겨난 무시무시한 사건…
이로서 우리는 ‘장범은 군사가 되지 못하지만, 장승은 될 수 있다’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고,
지력 70대 정도면 코웃음칠 만큼 인재가 넘치는 조조군이나 제갈량이 군사 고정인 유비군 정도가 아니면
약소세력에서 이 장승이란 인물의 존재감이 결코 낮지는 않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그도 군사가 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봉기군의 비극이겠지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소중한 군자금을 이 C급 문관들에게 100원씩 떼어줄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침소가 장범과 장승에게 베푼 아량은 과연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이들은 어떤 일을 했길래 별 볼 일 없는 능력치를 받은 것이었을까요?
그 전에 장범이랑 장승이란 사람이 삼국시대에 있었다는 것도 우리에겐 너무 생소하지 않은지요?
한번 그들의 사적을 찾아 발걸음을 되짚어보도록 합시다.
2. 의외로 화려한 열전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방장은 이들의 관계를 정말 우연찮게 관통해내었다는 것이지요.
장범과 장승은 이름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진짜 형제관계였습니다.
헷갈릴 만도 하지요?
장범이 형이고 장승이 동생입니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하지만 동생 쪽이 군사 자격이 있네요. 속담이 다 맞지는 않나봅니다.
이 두 사람은 삼국지 위서의 제11권에 실려 있습니다.
장범은 자기 열전을 별도로 갖고 있고, 장승은 형의 열전에 꼽사리 끼면서 같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잠깐!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열전을 쓰면서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인물을 묶어놨습니다.
예를 들어 위서 10권은 ‘순욱순유가후전’.
조조 진영 제일의 지략가들을 모아놓았지요? 이 사람들 없으면 조조군 팀회의 안 돌아갑니다.
위서 13권은 ‘종요화흠왕랑전’.
위나라를 대표하는 재상들을 세트메뉴로 구성했지요?
<원피스 ‘밀짚모자 일당’ NEW 구조조정안>에서 마치 나미와도 같다 비유되었듯,
전쟁이 메인인 삼국지 게임에서는 있으면 편하고 없어도 상관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만 더 보고 갑시다. 촉서 8권은 ‘허미손간이진전’
요것은 ‘허미’, ‘손간’, ‘이진’이란 사람의 전이 아니라 성씨를 모아놓은 것인뎁쇼.
말인즉슨 ‘허씨, 미씨, 손씨, 간씨, 이씨, 진씨의 열전’이란 뜻입니다.
촉나라 사람들 중 허씨나 이씨는 잘 기억 안 나더라도,
‘미씨, 손씨, 간씨’ 붙여놓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지도?
바로 유비의 영원한 친구 간손미를 비롯한 문관들이 실려 있는 전이 촉서 8권입니다. (나머지 셋은 허정, 이적, 진밀)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장범과 장승이 나오는 11권은?
‘원장양국전왕병관전’입니다. 길고 복잡하지요.
아까 간손미가 그랬듯 ‘원씨, 장씨, 양씨, 국씨, 전씨, 왕씨, 병씨, 관씨의 열전’이란 의미가 됩니다.
이 중 장씨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장범의 열전이에요.
이때, 요 집합에 사이좋게 들어간 총 8명의 신하들 중 장범 말고 누가 있는지를 알면
장범이 어떤 라인에 속한 사람인지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라인업,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순욱 같은 A급 인재들은 아니지만, 조조군에서 내정 좀 한다 싶은 B급 문관들이 대거 포진해 있지요?
장승과 장범은 삼국지 14에서 드디어 데뷔한 신참 무장이지만
이 사람들은 (역시 14 출신인 양무 빼고) 그 이전 시리즈에도 등장해 눈도장을 찍은 바 있는 살림꾼들이지요.
밀짚모자 해적단으로 치면 나미와 우솝을 합쳐놓은 듯한 재주의 소유자들 8명의 모임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순간 그러면 이 신하들이 훨씬 덜떨어져보일까봐 그만두겠습니다.
아무튼 이들을 묶어놓고 보면 그 특징은
- 주로 조조가 살아있을 때 활동했으며
- 모범적인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된 선비들
정도로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장범 장승의 능력치가 그닥인지도 추측하실 수 있습니다.
대개 이런 인물들의 경우 확실한 실무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능력치가 낮기 마련이거든요.
명성이 높다거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거나 하는 장점들은
지력으로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정치로 보자니 애매하죠.
그래서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선 매력에 가산점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나마 점령 칸수에 매력이 영향을 미치는 삼국지 14 정도가 아니면 매력이 그다지 좋은 스탯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타입의 문관은 똥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머지 원환, 국연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일머리를 잘 발휘한 일화가 있던 반면에
장승은 그렇다치고 장범의 경우 정확히 매력 원툴 문관의 루트를 밟아 아쉬운 능력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에 대해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잘 말해줬습니다.
평가해 말하겠다.
원환, 병원, 장범은 몸소 청정한 행동을 하며 살았고, 나아가고 물러남은 도리에 부합하였다. (중략)
양무와 국연 역시 그 다음이다.
장승의 명성과 행동은 장범에 버금가니, 능히 동생이라고 할 만하다.
(뒤부터는 다른 신하들에 대한 평론)
즉 게임 속에선 이 쟁쟁한 대신들 중 장범과 장승이 능력치가 제일 허접한 축에 속하지만,
그거야 게임은 게임이고 진수는 이 두 사람을 꽤 높이 평가했음을 알 수 있지요.
별 재미도 없는 열전 얘기로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군요. 이 두 사람이 뭐하고 살았는지 본격적으로 가봅시다.
3. 난세의 장씨 형제
3-1. 금수저 청년의 삶
갑작스럽지만 여러분은 삼국지 최고의 명문가 하면 누가 떠오르시는지요?

말해 무엇하리.
후한 1티어 금수저였던 원소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4대에 걸쳐 최고위 관직을 배출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3대에 걸쳐 할아버지부터 본인까지 전부 태위를 역임한 태위 양표도 명문가 하면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록 아들 양수는 닭갈비 때문에 죽었지만, 그렇다고 패가망신할 집안이 아니었죠.
이 두 가문이 삼국지 명문가 하면 꼭 나오곤 하는데,
그 바로 아래 티어에 장범네 집안이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장범과 장승의 할아버지인 장흠이 사도, 아버지인 장연이 태위였거든요.
사세삼공의 명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세삼공 정도로도 후한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였음은 틀림없겠지요?
남들은 집안에 삼공 하나 나기도 어려운데 말이에요.
실제로 장범은 원소의 숙부였던 태부 원외가 그를 사위로 삼고 싶어 혼담을 제안할 정도였는데,
그 명문 원씨가 딸을 시집보내려 할 때 상대 가문을 어디 보통 꼼꼼하게 보겠나요.
집안 좋고 훤칠한 청년 아니면 함부로 딸을 내어줄 수 없는 것은
동서고금의 있는 집 아버지들 대부분이 공유하는 정신입니다.
만일 이때 장범이 혼인을 수락했다면 원소와 원술 입장에선 삼촌의 사위가 되었겠지만,
어째서인지 장범은 원씨와 혼맥을 이을 기회를 걷어찹니다.
결혼을 사양하고 없던 일로 한 일이지요.
당대 제일의 권세가가 손을 내밀어와도 거절을 하다니…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옛날이 지금처럼 자유연애가 가능한 시대도 아니었을 텐데, 왜 가문의 입지를 대대손손 공고히 다져 놓을 길을 마다한답니까?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도대체 이 남자 장범에겐 어떤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일까요?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요.
“장범의 성품은 조용하고 고요해 도(道)를 즐겼으며, 영예나 이익에는 소홀하여 (조정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난세가 오기 전 장범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이게 전부예요.
결혼도 안 하고 직장도 얻지 않고,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배때지가 불렀는지 영예와 이익에 아예 관심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게다가 도를 즐겼다는 표현도 흥미롭죠.
유유자적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무위에 따라 살아가는 도가사상을 신봉했다고 생각되는데,
마음의 여유가 넘치는 갓수들에게 이만큼 좋은 명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장범의 젊은 시절은 저렇듯 대단히 멋진 표현으로 장식되어 있고, 솔직히 또 부럽기도 엄청 부럽지만,
사실 삐딱하게 놓고 본다면 이 사람은 2세기 중원의 봇치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집안에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건가 의심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시기 형이 신나게 명문 갓수생활을 즐기는 동안 장승은 천천히 남들처럼 출세코스를 밟기 시작했기 때문에
딱히 장씨 집안에 갑자기 위기가 닥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장범이 단순히 백수의 왕 노릇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하기엔 또 비상식적인지라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면,
이런 경우 의심해볼만한 유력한 상황은 장범에게 중병이 있어서 체력이 안 좋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장범은 시도때도없이 병을 명목으로 뭔가를 고사하기 때문에 건강이 정말 나빴을 수 있고요.
어느 쪽이다 확정은 못하겠으나 둘이 섞여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그럴듯하다 싶습니다.
아버지랑 할아버지가 둘 다 부총리급 공무원이면 아플 때 좀 널널이 쉬고 그럴 수도 있죠.
저도 그렇게 살면서 침대에 누워 침투부만 보고 살아도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던 중 꿈과 희망의 갓수생활에 거대한 위기가 닥쳐오는데…

3-2. 위기의 갓수 장범
서량의 동탁이 정권을 잡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당시
장범은 여느 때와 같이 도를 즐기는 백수생활에 전념하고 있었고,
장승은 낙양을 지키는 이궐관의 수비책임자인 이궐도위를 맡고 있었습니다. (함곡관이나 연의 속 무시무시한 여포와 유관장이 일기토를 뜬 호로관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장승은 이때 놀랍게도 무리를 모아 동탁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지만
좀 과하게 느긋한 형과 달리 장승은 상당히 성격이 급했나봅니다.
장범과 장승의 동생 장소(실버타운 주민 장소 할아버지하곤 동명이인입니다)도 이때 관직에 있었습니다.
장안으로 와 형의 계획을 듣곤 너무 성급하다며 조언을 해줍니다.

(장소는 코삼에 안 나와서 대충 147 아저씨로 대체)
"형님 지금 동탁을 죽이려고 해도 중과부적일 뿐입니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계획을 세워 농사꾼들을 데리고 싸운다니요. 훈련이 전혀 안 되어있으니 성공하기 글렀습니다.
동탁은 병졸들을 험하게 다루는데다 도덕이란 게 없는 놈이니 오래가지 못할 게 뻔한데 때를 기다리세요."
장승은 이 말대로 존버를 위해 관직을 버리고 장범과 양주로 달아납니다.
삼14에서 형제가 둘 다 동탁을 혐오무장으로 두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장소의 말을 듣고 보면 신기한 것이,
동탁이 이끄는 중앙군과 서량군은 정예병 중의 정예병이라 반동탁연합 전체가 다 덤벼도 별 소용이 없었는데
도저히 못 참고 농민들이라도 모아서 암살을 시도하려 한 장승은 깡이 좋은 것을 넘어서 무모해 보인달까요?
형제간에 성격이 달라도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캐릭터가 뚜렷해서 좋네요.
(이 조언을 해준 동생 장소는 확실히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인물인 것 같지만 그 밖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한편 이때 양주의 왕 같은 존재로 군림하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원술.
운이 안 따라주면 유독 조까튼 놈들만 골라서 마주치는 것이 난세답네요.
그런데 원술이 워낙 가짜 황제, 꿀물 이미지가 강해 멍청하게 느껴져서 그렇지
항상 정신이 나간 괴인은 아니었습니다.
이때에도 원술은 명망 높은 장씨 도련님 둘이 왔다는 이야기에
정중히 예의를 갖추어 초청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장범은 병이 있다는 명분을 들어 장승을 대신 보내게 하는 것으로 화답합니다.
나가기 싫다고 동생을 대신 보내지는 말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졸지에 형 대신 원술을 만나게 된 장승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천하가 혼란스러우면 힘 있는 자가 패업을 쟁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춘추시대에도 그랬고 진나라와 한나라도 그랬지.
이몸께서는 광대한 토지와 수많은 백성에 힘입어 패업을 노리려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뭔가 거대한 망상을 하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는 대충 비위를 맞춰주고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일 수 있지만,
장승은 빠꾸가 없었습니다.

"그건 강력함이 아니라 덕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덕을 잘 이용하면 별 볼 일 없는 이의 자만심조차 천하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합니다. 그럼 패업을 이룰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만약 구차하게도 주제를 모르고 나대면 백성들에게 버림받을 뿐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 누가 패업을 흥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원술은 못마땅해하긴 했지만 딱히 장승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고,
다음엔 조조가 기주 원정에 나서려 하자 이렇게 물어봅니다.

“조조가 피폐한 병사 수천 명으로 수만 명을 대적하려 들다니 힘을 헤아리지 못하는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이 얘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원술이 하다니 세상 좋아졌습니다.

"한나라의 덕이 비록 예전같진 않지만 그래도 하늘의 뜻이 갑자기 바뀐 건 아닙니다.
지금 조공은 협천자를 바탕으로 천하에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비록 수백만 명을 상대한다 해도 대적할 만합니다."
이에 원술의 심기가 불편해지자 장승은 그를 떠나버립니다.
정리해 보면 장범은 병이 있다는 치트키를 쓰며 원술을 처음부터 만나주지도 않았고,
대신 인사하고 온 장승은 이게 손님으로 초청받아서 온 것인지 사람 열받게 하려고 온 것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원술을 계속 디스합니다.
특히 한나라가 아직 끝장나지 않았단 식으로 얘기하는 건 칭제까지 한 원술에 대한 모욕이죠.
긁을 수 있는 신경을 아주 다 긁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삼국지 14에서 원술이 이들의 혐오무장으로 지정되어 있는지는 물론,
침소침술전에서 봉기 대신 원술이 형의 자리를 이어받았어도
이 두 사람은 무조건 탈주해서 새살림을 차렸을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지요.
분량조절에 실패해서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