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족 중에서도 유명한 16개의 전투민족
유목민족이라는 것은 가축을 거느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풀밭을 찾아 가축을 기르는 생활활동을 하는 민족을 뜻하며 유목민족들은 양과 말 등의 가축을 기르며 생활을 한다. 따라서 유목민족 중에서도 유명한 16개의 전투 유목민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목민족 중에서도 유명한 16개의 전투민족
스키타이
러시아와 스텝지역에 거주하던 이란계 민족이 스키타이의 기원이라고 하며 스키타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부르던 명칭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원래 그저그런 이란계 민족이었지만 기원전 11세기 경 대규모로 유입된 다른 이민족들과 섞이면서 스키타이라는 정체성이 생긴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4세기 경 서방에서 몰려온 이민족들에게 서방 영토 일부를 빼앗기면서 3세기에는 켈트 왕국의 압박으로 서방의 영토를 영구히 상실하게 되면서 크림반도와 그 근처에 살아가다가 결국 2세기에 다른 이민족과 그 이민족과 연합한 왕국들의 대규모 침공으로 역사에서 완전히 퇴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르마티아
기원전 3세기 경부터 서기 3세기 무렵까지 지금의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란계로 추측되고 있는 유목민족이라고 합니다. 활을 주무기로 사용했던 스키타이와는 달리 기병과 말을 스케일 아머로 무장하고 장창으로 돌격하는 중무장 기병 전술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서기2세기 경 지금의 루마니아에 위치한 다키아 왕국과 동맹을 맺고 로마제국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는데 로마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사르마티아 기병들은 로마군의 보조병으로 의무 복무를 해야했으며 그러던 중 기원후 3세기 무렵 훈족을 피해 남하한 게르만족 계통의 고트족에게 타격을 받아 쇠퇴하다가 결국 4세기 말 훈족에게 초토화 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 유목민족이라고 합니다.
훈족
훈족은 4세기 중반 유라시아 대초원 서부에 나타난 흑해 북안의 게르만족들을 격파하고 복속시킨 것이 훈족의 첫 등장이라고 합니다. 당시 로마측은 국경 저 멀리서 야만족들끼리 치고 받는다는 정도로만 사태를 파악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겨버렸는데 훈족을 피해 서쪽으로 도망친 고트족이 도나우 국경에 나타나면서 로마에서도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훈족은 로마제국과의 전쟁과 내부 게르만족들의 투쟁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족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현대에는 사천성 아바티베트족창족 자치구 또는 간쯔티베트족 자치주 등지에 분산되어 분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고대시대인 은나라 말기부터 주나라 세력에 가담하여 은나라를 공격하였으며 진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자 진시황이 몽염을 통하여 흉노와 함께 강족을 압박하였다고 합니다. 중국 북송시대에 강족들은 서하국을 건국했지만 몽골군에게 멸망하였고 민강 상류 일대에 살던 일부만이 현재까지 남아있다고 합니다.
저족
중국 3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나타난 민족으로 111년에 한나라가 저족이 거주한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면서 한나라의 통치를 받았고 후한 말기에는 마초와 조조가 싸울 당시 마초를 도와 조조에게 대항했다가 패배하여 조조가 부풍, 천수 등으로 이들을 이주시켰다고 합니다. 이들은 중국 당나라 시대 이후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며 풍속통의에 따르면 저족으르 무례하고 탐욕스럽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죽을 때까지 이익을 쫓고 산, 계곡을 즐겨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거란족
중국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유목민족으로 동호-선비에서 갈라져 나와 4세기에 등장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중국, 북방, 요동 3자 사이에서 지리멸렬하다가 요나라를 세워 요동과 하북성 일대, 막북을 장악하여 패자로 군림했으나 요나라 멸망 이후에는 친척인 몽골에 동화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홍콩의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캐세이(Cathay)는 영어의 고대어로 중국을 말하는 또 다른 언어인데 그 어원은 거란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몽골족
모두 아시다시피 칭기즈 칸이 등장하면서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버린 유목민족입니다. 13세기 몽골은 아시아를 점령하고 유럽 일부까지도 영향을 끼쳤던 민족이며 역사상 최강의 기마부대라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몽골의 쿠빌라이 칸 시대 이후 몽골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현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인들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정글의 법칙 몽골편에서 보셨다시피 몽골족은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민족입니다.
튀르크 족
중앙아시아를 기원으로 동쪽으로는 추코트카와 서쪽으로는 터키, 북아프리카, 발칸반도까지 퍼져있는 코카서스 인종 다음으로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전투종족으로 자신들은 스스로를 튀르크라고 칭하는데 이는 고대 터키어로 강한이라는 뜻의 형용사였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튀르크 족을 고대 한국사에 등장하는 돌궐족으로 알고 있으며 현재에 이르러 형제의 나라라고 칭하는 대표적인 민족입니다.
흉노
중국 상고시대부터 오호십육국시대까지 활동한 유목민족으로 끊임없이 중국과 전쟁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첫 등장은 기원전 4세기 말에 전국시대부터 이후 한나라에 이르러 북아시아 최강의 유목민족으로 성장하는데 초기에는 한나라를 군사적으로 압도하면서 수도 장안까지 위협하였으나 점차 화친으로 돌아섰고 한무제의 강공으로 막북으로 밀려나 국력이 약화되었으며 이후 5명의 선우가 난립하는 혼란기를 걸쳐 두 차례 국가가 분열되는 등 패권직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호십육국시대에 서진을 멸망시켜 화북지방에 유목왕조를 세우지만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그러다가 선비족에게 된통 얻어맞고 점점 세력이 약화되면서 끝내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민족이라고 합니다.
여진족
한민족계 국가들과 관계가 아주 깊은 민족으로 고구려, 발해시대에는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피지배층에 복속해 있기도 했었으며 말갈의 한갈래 흑수말갈이 이들과 대립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중국과 한반도 국가들에게 눌려 살다가 여진족의 마지막 전성기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1586년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합하여 만주족으로 개칭하면서 후금을 건국, 이것이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으로 이어지게 된다. 쉽게 풀이하자면 청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국가라고 해석하면 된다.
마자르
마자르 족은 현재 헝가리를 세운 민족이다. 오늘날 헝가리 역사학자들의 정론을 보자면 중세 초입에 아시아에서 흘러들어온 유목민족인 머저르족(Magyar)이 헝가리의 직계조상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베두인
베두인은 아라비아 반도 및 중동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아랍 역사상 최강의 깡패 민족이라고 한다. 유목민족으로써 성격이 맹렬하고 싸움에 있어서는 무자비했기 때문에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에 중추적인 군사적 역활을 수행했으며 중동의 넘버원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조차도 베두인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라고 한다.
부여
부여는 한국 고대사에서 존재했던 국가로 역사속에서는 반농,반목민족이었지만 원래는 유목민으로 시작한 민족이라고 한다.
오이라트 족
현재 몽골 서부 알타이 산맥 인근에서 살던 부족으로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할 무렵에나 겨우 유목화를 시작했던 부족이었지만 칭기즈 칸의 몽골 통일 과정 막바지에 칭기즈 칸에게 항복하였고 알타이 산맥 인근이라는 절묘한 위치 덕에 중요한 변수가 된 유목민족이었다고 한다. 몽골계 유목민족의 최후 불꽃이면서 최대 적이 되었던 민족으로 현재에는 몽골계에 속하는 유목민족이기는 했지만 역사상으로 보면 몽골의 최대 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수우족
수우족은 북미 대평원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중 하나로 백인들의 침략에 완강히 저항하여 인디언 전쟁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족이다. 따라서 유명한 전쟁 지도자와 추장들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디언 부족들끼리 연합하여 리틀 빅혼 전투에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의 제7기병연대를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으나 이후 시작된 미군과의 전투로 인하여 캐나다로 쫓겨났다고 한다.
코만치족
코만치 족은 현재의 뉴 멕시코 주 동부, 콜로라도 남부, 애리조나 북동부, 캔자스 주 남부와 오클라호마 주 전 지역, 텍사스 북서부 지방 대부분에서 거주했으며 2010년 기준코만치 족은 14,700명으로 이 중 절반이 오클라호마 주에 거주한다고 한다. 물론 코만치 족 역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의 부족이다.
8.1. 전투력[편집]
나는 다른 점에서는 스키타이족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인간사에 있어,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헤로도토스 역사 6권 46p
더구나 이 기병이라는 병과는 탄생시점부터 기관총과 전차가 등장하는 1900년대 이전까지 인류 최강의 전투 병과였다. 가령,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유명한 폴란드의 율란 창기병대는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부대가 궤멸되어 해체될 때까지 폴란드군의 최정예 부대로 손꼽혔다. 비록 20세기 이후로는 무늬만 창기병대인 첨단 무기로 무장한 기계화부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기관총 등의 무기나 장비를 말이 가진 뛰어난 기동력을 이용해 적지적소에 전개할 수 있었고, 때로는 전근대시대 기병들마냥 정말로 적의 보병들에게 기습적으로 돌진해서 짓밟아버리는 전술도 가능했다. 나치 독일군도 폴란드 침공 초기에 보병으로 구성된 선발대가 율란 창기병대의 차징에 궤멸되기도 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정예 부대를 양성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다. 예시로 든 폴란드의 경우, 중세 시기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시기부터 립카 타타르라고 불리우는 타타르족의 분파[22]를 자국에 이주시켜서 기병 양성에 필요한 노하우를 얻거나, 이들을 직접 징집하는 식으로 기병을 확충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정주 농경 민족은 이런 수준의 전사를 농사짓던 사람들 무장시킨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직업 군인을 양성해야 했다. 거기에 오늘날 소총수 훈련은 2주에서 4주면 끝인 데 반해, 고대에는 기마병을 훈련하는 데 최소 수년이 걸렸다고 하며 마찬가지로 중세 시대에도 궁병을 기르기 위해 걸리는 훈련 기간이 수년이 걸렸다.[23] 그래서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선술한 폴란드의 경우처럼 유목민을 용병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기병을 충당해야 했다[24].
- 기병 퍼레이드. 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