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이 꿈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다 기억한다.

(어릴 적 우리집 구조)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이
곧 첫 돌이 되는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은 첫째를 보며 옛날 생각이 났다.
지금은 남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저씨 이지만
부모님께서는 나도 아기 때부터 초등학생 때 까지 호기심이 다른 아이들보다 지나치게 많았고
어렸을 적 나는 부모님께 끝 없는 질문들과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장난들로 사고도 많이 쳤다고 하셨으며
일부 큰 사건들은 직접 기억하고 있다.
무작정 호기심만 넘쳤던 건지.. 자랑은 아니지만 그 만큼 상상력도 풍부했던 건지..
초등학생 때 정말 기괴하고 무서운 꿈들을 많이 꿨다.
몇 번 이직하면서 다닌 직장마다 날씨가 우중충한 날 점심시간 때 카페에서 어릴적 꿈 얘길하면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한마디 한다.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런 꿈들을 꿀 수 있냐고, 지어낼래도 지어낼 수 없는 얘기라고 한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이 있다.
보통 꿈은 좋거나 안 좋거나 깨어나면 바로 잊혀지는데 이 꿈은 아직 까지도 뚜렷하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어느 날
아직 심야인 건지 새벽이었던 건지 무서운 꿈을 꾸다가 깼다.
근데 그런 느낌이 있다.
내가 아직 잠에서 안 깼구나.
아직 꿈 속이다 라고 인지할 수 있는 그런 상황.
잠에서 깼지만 그건 단지 꿈속 안에서 잠에서 깬 상황이었고, 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집안은 굉장히 어두웠으나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
꿈이었지만 소변이 마려웠고 화장실을 갔다.
등을 키려고 스위치를 눌렀으나 불은 켜지지 않았다.
조금 무섭긴 했는데 소변기 앞에 서서 들어온 화장실 문 쪽으로 얼굴을 7시 방향으로 살짝 뒤로 돌려보면 전신 거울이 있고
그 거울로 옆 방에 형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소에도 새벽에 깨서 소변을 볼 때 무서워서 자주 사용했던 방법이다.
여튼 그렇게 꿈 속에서 소변을 봤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비워내지 못한 느낌처럼 계속 소변이 마려웠다.
그렇게 볼일을 보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안방 쪽에서 어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다시 한 번 인지 했었다.
이건 꿈이고,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깰 수 있다.
아마도 무엇인가 무서웠기 때문에 탈출구를 찾기 위한 본능이었겠지?
어릴 적 내가 꿈을 깨는 방법 중 하나는 눈이 빠질 정도로 질끈 감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문만 열고 난간에서 뛰어내리면 쉽게 꿈에서 깰 수 있었다.
- 나는 그 당시 구일섬이라 불리는 동네의 구로주공 아파트에 살았었고
우리 집은 복도형 아파트의 11층에 있었다. -
각설하고
꿈이어도 무서웠기 때문에 형 방에 들어가 깨우려 했는데
형은 화내면서 나를 밀어 방에서 내쫒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순간 바로 옆에 있는 현관문으로 뛰어 나갈까 생각도 했다.
근데 어머니가 울고 계신데 아무리 꿈이라도 당연히 걱정되는게 아닌가?
그래서 안방으로 걸어갔고, 걸어갈 수록 어머니의 우는 소리와 고통스러움,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문이 닫혀 있었기에 손잡이를 잡아서 열려는 순간 어머니가 외쳤다.
열지마!, 도망가 xx(내이름)야!'
어머니의 목소리에 무서움도 커졌지만, 반면에 다른 분노 같은 무언가도 같이 차올랐다.
오히려 방문을 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랄까.
결국 방문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근데 방문이 반대편에서 내 쪽으로 계속 힘주며 밀고 있는 것처럼 잘 열리지 않았다.
나는 다리 한 쪽과 몸을 조금 비집어 넣고 문이 닫히지 않도록 막았다.
문을 1/3 정도만 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 순간.
어머니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바로 앞에는 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 어머니가 큰대자로 누워 계셨는데
사지가 머리카락으로 묶여 있었고 어머니의 허리와 발쪽에는 팔목이 없는 무수한 손들이
어머니를 마구 괴롭히고 있었다.
손가락들이 긁거나 꼬집는게 아니라 검지 손가락으로 허리를 찌르거나
주먹을 쥐고 튀어나온 손가락 마디로 허리에 대고 힘주며 문지르고 있었다.
디테일하게 표현하자면 엄청 기분 나쁘게 아플 정도로 간지럽히고 있었다는게 맞는 표현일까?
고통과 극도의 간지러움을 넘나드는 느낌이라고 말해야 할까?
어머니는 웃거나 울부 짖는 소리를 내시며 고통스러워 했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셨으며,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외치셨다.
'도망가라니까!!!!!!!'
너무 무서웠다.
도망..당연히 가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시니
빨리 구해드리고 이 악몽에서 깨고 싶었다.
그 때.
아직 문이 다 열리지 않아서 보이지 않던 장롱 오른쪽 끝 부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음성이 없는 사람이 비웃는 목소리?
흔히 말하는 허파에 바람 빠진 소리였던 것 같다.
무섭기도 했지만 역시 분노도 거의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어차피 꿈이기도 했으니 까짓거 깨면 그만이다.
몸에 힘을 더 실어서 문을 열고 그 사이로 몸을 완전히 껴 넣었다.
상반신이 통째로 방 안으로 들어왔고 안방 내부를 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장롱.
거기만 문이 열려 있었다.
그 공간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아이가 앉아있었다.
흰색 반바지에 민소매, 양 팔로 다리를 감싸고 무릎 위로 턱을 댄 자세로.
머리카락은 천장까지 솟아 있었고 피부는 창백했으며 눈동자는 뒤집힐 정도로 윗쪽으로 젖혀져 있었는데
그 눈이 마치 억지로 눈알을 뒤집으려는 느낌으로 경련? 떨림 같은게 크게 있었다.
얼굴 방향은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상한 점은 분명 웃는 목소리지만 입꼬리가 잔뜩 내려와 있는 울상이었다.
그걸 본 순간 분노고 뭐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꿈에서 깨려고 눈을 잔뜩 힘을 주며 질끈 감았다.
꿈이 안 깨진다.
몇 번 더 시도 해도 꿈이 깨지지 않는다.
꿈을 깨려고 눈을 질끈 감을수록
비웃는 소리는 점점 음성이 입혀지면서 우는 목소리로 바뀌는 것 같았다.
마치 중후한 아저씨 목소리를 늘어진 테이프로 재생하는 듯한.
그 소리에 놀라서 그 꼬마를 쳐다 본 순간
어느 새 얼굴 방향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분명 우는 목소리인데 입꼬리는 찢어지도록 웃고 있다.
눈 알이 위 아래로 불규칙적으로 크게 요동친다.
나는 당장 문에서 나와 현관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방을 지나고, 화장실과 형 방을 지나서 현관까지.
현관 문을 열었다. 이제 난간에서 떨어지면 이 꿈에서 깨는거다.
그리고 난간에서 뛰어내리던 그 때..
갑자기 나의 시점에서 3인칭으로 바뀌었다.
게임처럼 천장이 뻥 뚤린 윗 쪽에서 바라보는 느낌?
나는 난간에서 뛰어내리고 있는 채로 일시정지 하고 있었다.
아니 0.1배속 정도?
그리고 그 3인칭 화면이 장롱쪽을 비췄다 순간.
그 꼬마가 미친듯이 1초만에 뛰어나와서 난간에서 뛰어내리던 내 발목을 잡고 장롱속으로 끌고가 버렸다.
나 꿈 못깨게 하려고.
그리곤 새벽 2시쯤 잠에서 깼는데, 그 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밤을 새웠던 날이었다.
그래서 꿈의 시작과 끝 모든 걸 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