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선수들은 왜 금수저들일까?

(2022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르끌레르(페라리)와 베르스타펜(레드불))
명실상부한 모터스포츠의 정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 ‘포뮬러 1’입니다.
전 몇 년 전 넷플릭스 ‘본능의 질주’ 시리즈를 계기로 F1에 입문했고,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F1입니다.
그런데 F1이라는 것이 본래 유럽 중심의 스포츠이고, 특히 한국은 자동차 산업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모터스포츠에 있어서는 (비교적) 불모지이기에 주변에 F1 얘기를 할 사람이 없어 항상 아쉬웠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자 침하하에 F1에 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F1 경기를 보고 관련 뉴스를 접하다 보면, F1에 유독 소위 ‘금수저’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어느 분야에서든 우수한 기량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F1 선수들은 대체로 유복한 것을 넘어 상당히 부유한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이 분야 대표주자인 애스턴 마틴 팀의 랜스 스트롤 선수입니다.
아버지인 로렌스 스트롤은 순자산이 29억 달러에 달하는 캐나다의 재벌로, 랄프로렌, 토미힐피거, 마이클코어스 등 유명 패션 브랜드들에 투자하며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그 넘치는 돈으로 F1 팀을 샀습니다)

다른 예로, 2021 시즌 드라이버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니키타 마제핀입니다.
아버지인 드미트리 마제핀은 벨라루스계 러시아인으로, 화학기업 우랄켐의 수장이며,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재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매김한 ‘올리가르히’ 중 하나입니다.
(이분도 넘치는 돈으로 F1 팀에 투자를 해서 아들의 직장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아들과 함께 나가리되셨습니다))
모든 F1 선수들이 스트롤과 마제핀처럼 재벌가 자제들인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단적으로,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7번 거머쥐며 F1의 전설 슈마허의 기록을 위협하고 메르세데스 팀의 8년 왕조를 견인했던 루이스 해밀턴은 평범한 가정 출신입니다. 아버지 앤소니 해밀턴은 아들의 커리어를 위해 3곳의 직장에 동시에 근무하며 돈을 댔습니다. 이런 물심양면의 지원 끝에 루이스 해밀턴은 어린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아 맥라렌 팀의 스폰서십을 받고, 슈마허를 잇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대다수 선수들은 매우 부유한 집안 출신입니다.
세르히오 페레즈(레드불) - 아버지가 부유한 기업가이자 성공한 정치인
랜도 노리스(맥라렌) - 아버지가 백만장자 사업가
니콜라스 라티피(前윌리엄스) - 아버지가 억만장자 사업가
막스 베르스타펜(레드불) - 아버지(요스 베르스타펜)가 성공적인 F1 선수로 많은 돈을 벌어들임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페라리) - 아버지(카를로스 사인츠)가 성공적인 랠리 선수로 많은 돈을 벌어들임
목수의 아들이었던 제바스티안 페텔(前페라리, 애스턴 마틴)이나, 중소기업 사장의 아들인 조지 러셀(메르세데스)처럼 비교적 평범(?)한 배경의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F1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유복한 집안 출신이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집안에서 F1 드라이버가 나온 적은 (적어도 근래에는)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많아야 F1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모터스포츠의 정점, 기술의 첨단에 선 스포츠가 그렇게 세속적인 기준에 지배되는 것일까요??
결론은 맞습니다.
F1 드라이버는 고시에 합격해서 개천에서 용 나듯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F1 드라이버가 되려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커리어를 쌓아가야 합니다. 절대다수의 경우 커리어의 첫 단계는 카트(고카트)입니다.
이런 카트는 보통 한 대에 3~5천 달러, 비싸면 1만 달러 정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열심히 레이싱을 하려면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가겠죠?
타이어가 몇백 달러씩 하는데 7~8 경기를 뛰고 나면 갈아줘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지역 신동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면, 여러 국가, 여러 대륙을 돌아나니며 대회에 참가시켜야 하며, 당연히 카트도 들고 다니고 체재비도 들여야 합니다.
또 귀한 자식이 카트를 타고 위험천만한 레이스를 펼치는만큼, 레이싱수트와 헬멧 등 안전장비에 1천 달러 정도는 들여야 합니다.
종합하면, 자식을 카트에 태우는데 매년 1만~1만5천 달러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나이는 낮게는 5세, 보통은 9세 정도라고 합니다.
다음 커리어 단계인 F4는 15~16세부터 참가하게 되니, 5~6년간 카트에 드는 비용이 5만~9만 달러 정도 되겠네요.
자식 5~6년 교육시키는데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카트가 커리어의 첫 단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공한 F1 선수들의 커리어 경로를 사후적으로 살펴보았을 때의 얘기입니다.
카트는 본래 취미입니다. 매 시즌 F1 드라이버가 20명, F2 드라이버가 22명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카트라는 취미가 레이싱이라는 커리어로 발전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결1) 결국 지금의 F1 선수들은, 자식의 ‘취미’에 10만 달러 가까운 돈을 태울 수 있는 부모를 둔 이들 중 노력과 재능이 중첩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식이 카트가 좋다기에 비싼 돈을 들여 취미로 시켜줬더니 웬걸, 재능이 있네요? 그렇다면 이제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가야 합니다.

지역별 1인승 토너먼트, F4입니다 (구준표 아닙니다)
차 모양만 봐도 위의 카트보단 비싸보이죠?
미국 F4 기준으로 한 시즌에 13만~20만 달러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F4 정도 되면 더 이상 취미활동이 아닌 엄연한 선수입니다. 일반적으로 운동 선수들의 활동 비용은 (종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팀에서 부담하죠.
그런데 F4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F3와 F2도) 에서는 선수와 그 가족이 거의 모든 비용을 부담합니다.


(상: F3 / 하: F2)
클래스가 올라갈수록 차가 크고 멋있어집니다. 그만큼 비싸지는 것도 당연지사겠죠.
F3는 한 시즌에 70만 달러 이상, F2는 1백만 달러 이상 든다고 합니다.
이 단계는 사실상 F1으로 올라가기 위한 각축장입니다 (F3에서 바로 F1으로 발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선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선수의 가족과 스폰서들이 들여야 하는 돈의 금액도 천정부지로 뛰겠지요.
(대학 입시가 치열해질수록 비싸지는 대치동 학원값을 생각해보세요)
돈 많은 선수들은 거금을 주고 구형 F1 차를 빌려 연습에 쓰기도 하고,
돈이 부족한 선수들은 커리어를 반강제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소결2) 결국 F4 이상의 클래스에 진입했다면, 매년 수십만~수백만 달러를 투자하며 20석뿐인 F1 드라이버 명단에 들기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타이밍 좋게 공석이 생겼을 때 재능을 드러내어 하위 클래스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마제핀의 사례처럼 아버지가 팀에 투자하거나, 스트롤의 사례처럼 아예 팀을 사서 공석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결론 = F1 선수들 중에 금수저가 많은 이유는, 매우 제한적인 기회만을 바라보며 긴 시간 많은 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써놓고 보니 그러지 않은 커리어가 어디 있나 싶겠습니다만…
1) 차를 타는 종목인만큼 장비값이 매우 비싸다는 점
2) 모터스포츠의 특성상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레이스에 임해야 한다는 점
3) 재능을 확인할 수조차 없는 어린 나이부터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는 점
등이 결합되어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백만장자 부모를 둔 5세 어린이이거나, 5세 어린이를 자녀로 둔 백만장자 부모라면,
과감히 카트에 투자하시어 한국 최초의 F1 선수를 길러내시길 바란다는 농담 섞인 부탁을 끝으로
부족한 글을 마치겠습니다.
주)보다 많은 분들께서 F1을 좋아해주시길 바라며 쓴 글인데, 그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다음에는 좀 더 밝고 재밌는 내용으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