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에 대한 서양학자들의 평가
고대 중국 정치인이 존경받을 수 있는 모든 특성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현명하고, 충직하고, 공정하고, 웅변적이고, 기발하고, 헌신적이었다. (중략) 그리고 그의 다른 모든 기록된 업적보다도 제갈량을 존경의 대상으로서 완벽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의 평생의 사업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 동시대 사람의 눈에 비친 제갈량 (1992)
/ 에릭 헨리 (노스캐롤라이나대 동아시아어학 교수)
제갈량과 그의 후계자들은 남방에서 그들의 일반적 권위에 만족했다. 그들은 그들이 습득한 인적, 물적 자원을 전혀 발전시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들의 노력을 북방에 집중했고, 헛된 공격 속에서 그들의 제한된 힘을 소진했다. 촉은 지방의 군벌적 사업체일 뿐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 삼국시대와 진: 3세기 중국의 역사 (2003)
/ 라프 데 크리스피그니 (호주국립대 아시아태평양대학 역사학 교수)
228년 봄 제갈량의 1차 북벌 실패는 수 세기 동안 중국의 역사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과 평론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관한 다양한 설명에서 마속의 선발대가 본대에 의해 시기적절하게 지원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언급되지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략) 그의 군사적 행동은 대조적인 평가를 보인다. 전장에서 그는 전술적 능력과 유연성을 보여 주었지만, 전역의 목적과 전략적 목표를 둘러싼 모호성은 당혹스럽다. 그의 대담하고 날카로운 지정학적 분석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소극적인 접근은 실망스럽다. 그는 군사 조직과 행정의 대가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그의 승리를 방해한 눈에띄고 일관된 병참 병목 현상은 이러한 평판을 퇴색시킨다. 그는 자신이 손자의 제자라고 주장하지만, 헛되고 잦은 전쟁으로 나라를 약화시키지 말라던 손자의 훈계를 무시한 것처럼 보인다.
- 제갈량의 228-234 북벌 (2013)
/ 존 킬리그루 (뉴욕주립대 역사학과 교수)
중국어로 쓰인 제갈량에 대한 많은 학술적 글은 현존하는 역사적 증거를 무시한 채 칭찬만 늘어놓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중국사 전공 대학원생들이 책상에 묶인 채 제갈량의 사상과 의식에 관한 에세이를 타이핑하는 성도 외각의 거대한 공장을 연상시킨다.
- 촉의 재능: 초주와 중세 초기 쓰촨의 지식계 (2008)
/ 마이클 파머 (텍사스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