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국지 - 장료전

장료(장요)
▶추천하고 싶은 것: 삼국지 인물전 중 장료전
▶예상 소모시간:
본방 : 2~3시간
유투브 : 50분~1시간
▶추천 이유:
삼국지 (★)
조회수 100만 보장
전에 언급함 (★)
▶참고할 수 있는 링크:
<삼국지> 장료라는 인물 :: 아하스페르츠의 단상 (tistory.com)
https://youtu.be/V1pCqPxkhNo (유튜브인데 굳이 안봐도됌)
글쓴이가 소개하는 장료
장료는 원래 장씨가 아니라 섭씨였는데, 한 무제 시절에 흉노 선우를 마읍현(장료 일족이 살던 고향, 병주)으로 유인하게 했었기 때문에 흉노족이 자주 출몰하는 병주 출신인 장료는 성을 섭씨에서 장씨로 바꾸게 되었다.
병주에서 살던 장료는 어른이 되서 군리(공무원)이 됬고 병주자사인 정원이 장료의 힘이 보통 사람의 견적이 아니라 생각해서 종사(보좌관)로 임명했다. 알다시피 한나라 대장군 하진(하태후 오빠/백정출신이 십상시 견제를 위해 동탁,정원,원소 등 제후들을 낙양(수도)로 불러모았다. 하진은 장료를 하북으로 보내 하북에서 천여명을 모병시켰다.
※이구간은 생략가능 워낙 많이 언급함
((근데 하진이 십상시(구상시)한테 끔살당하게 되는데 하진이라는 인물이 십상시한테 어처구니없이 죽어버렸기도 하고 백정출신이라는 이유로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관직을 사서 동생을 태후로 만든 이후로 주변 관리들이나 병사들에게 잘해줘서 나름 입지가 있던 인물이엇다.
그런 이유로 하진이 십상시(구상시)한테 암살당하고 원소를 필두로 군사를 끌고온 사람들이 십상시 및 내시들을 조져버렷다.
그 이후 동탁이 가후가 알려준대로 병력 분신술 써서 낙양(수도)를 점거하고 원래 황제를 끼고 개 깝죽거리니까 원소가 1빠따로 동탁이랑 싸우고 발해(기주, 남피/삼국지 게임하면 앎)로 돌아가게 됨
그 모습을 보던 정원도 동탁이랑 랩배틀을 한번 함
근데 원소는 가문이 일딴 좋아서 빽이 든든한데 정원임마는 뭔데 까불지 하고 보니까 뒤에 여포가 있었서 호뜰짝 놀람
여포가 무서웠던 동탁은 이후 정원의 양아들 여포(정포)를 포섭하게 된다.))
※이구간은 생략가능 워낙 많이 언급함
여포가 모종의 계약을 통해 정원을 죽인뒤 동탁에게 귀순하게 되고 장료또한 이 시기에 동탁에게 합류하게 됨
장료가 여포를 따라 동탁에게 합류한 이유는 자기 근거지 및 고향이 정원의 영지였는데 정원이 동탁에게 흡수된거나 마찬가지였으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볼수있고
이 대목에서 많은사람들이 여포와 장료가 같이 붙어다녔기 때문에 장료가 여포의 수하또는 부하장수였다고 알고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진궁이나 장막, 장료 장패 이런 사람들은 여포를 기점으로 진궁이 모았던 인물들이었고 사실 여포입장에서의 관동연합군인 셈 (여포가 명성있는 장수였기 때문에, 진궁은 여포를 앞세워서 모병한것)
이전에 이미 여러차례 침국지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 부터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임
이후 여포가 동탁의 시비(시녀)와 사통하고 있었으며, 동탁이 여러차례 여포에게 질타했기에(수극을 던지던가, 모욕적인 발언을 함)사이가 틀어져서 여포가 왕윤의 사주를 받아 동탁을 암살하게 되고, 동탁의 잔병들 중 곽사와 1대1 전투를 하게 된다. 여포가 곽사의 어깨를 모(창)으로 찔러 부상입혔지만, 곽사를 죽이진 못했다. 이후 이각/곽사와의 전투에서 패퇴한뒤 왕윤또한 자살을 하게 된 마당에 여포는 근거지를 잃은셈이 되버리게 됬으니 수백기의 남은 잔병들을 이끌고 장막에게로 투신하게 되고. 장막과 같이 있던 참모 진궁이 여포를 얼굴마담으로 세워 모병한 이후, 반란을 일으키자고 제안하게 된다. 이후 복양에서의 연주 공방전까지 이어지게 된다. 연주 공방전은 메뚜기떼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여포가 패배하게 되고, 서주로 도망치게 된다.
서주로 도망갔던 병주패거리들(여.장.고.진. 등) 유비에게 반 협박해서 서주에서 이웃사촌이 되게 된다. 장료의 배신 DNA를 보자면 여포를 뒤통수치고 유비에게 떠날수 있었지만, 유비는 당시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서주의 유비와 여포가 결탁한 이유는 여포나 유비나 둘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유비는 원술에게 자주 시달리고, 여포 패밀리는 근거지로 삼을만한 장소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받아 들인거로 보인다)
이때 당시 장료의 나이가 28살이라고 기록되어있음
장비랑 여포가 평소에 사이가 안좋았는데 여포가 서주에 눌러붙게 되니까 기분이 나쁜 장비(정사에는 장비라는 확실한 기록은 X)가 말도둑질을 해버렸다.
여포는 누가봐도 장비라는거를 알아채고 고순과 장료를 보내 유비를 공격하게 했다.
조조가 여포에게서부터 유비를 구원하기 위해 하후돈을 보냈는데, 고순이 하후돈을 패퇴시킨다......
이 당시 여포는 원술과 조조 사이에서 매우 혼돈스러운 정치를 시전한다. (조조-원술 갈지자 정치 시전)
이후 유비가 엄청 버티다가 조조가 결국 몸소 대군을 이끌고 여포를 정벌하려 서주를 공격하고, 여포는 패색이 깊어지자 그간의 자기가 했던 모든 행적은 싸그리 잊어버린채 조조에게 항복하려 하지만 진궁 등이 조조를 배반하고 반란을 모의했기 때문에 진궁이 앞장서서 항복하는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여포일당은 조조에게 모두 사로잡히거나 투항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장료가 왜 살수 있었는지에 나오는데
기록에 의하면 (정사) 여포가 조조에게 패하자 장료는 자신의 군을 이끌고 조조에 귀순했다. 라고 적혀있다.
조조의 용인술은 항복한 장수는 왠만하면 다 받아줬다. 장로같은 경우는 항복해서 받아주고, 장로가 가지고 있던 영토를 아예 다스리게 해주었으며 자신의 아들(조앙) 조카(조안민) 전위 등을 죽인 장수조차도 받아줬다.
장료는 군을 온전히 보전한채 항복을 의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수 있었으며 여포는 그간의 행적이 너무 악랄하였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고순은 여포가 고순의 군대(함진영)을 위속에게 위임시켰기 때문에 군대 또한 없는 상태에서 항복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순은 참수 당했으며 진궁은 조조에게 지은 죄가 깊었으며, 또한 조조를 혐오했고 조조에게 투항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장료의 투항에 대해서 여럿 각색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게 조조 및 여포(목숨구걸중)한테 쌍욕박던 장료를 조조가 죽이려고 했다. 근데 유비와 고나우가 장료는 덕을 아는 인물이니까 죽이지 말라고 청해서 조조가 장료를 귀순시킴
-조조에게 귀순
이후 유비가 차주(서주자사)를 죽인다음에 서주를 차지하게 되는데 곧바로 조조군이 들이닥쳐서 관우장비조운 등 누상촌패거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하비성에서 유비 마누라들을 데리고 방어하고 있던 고나우가 고립되있는데 장료가 와서 관우에게 도원결의 맺은거 시너지 깨뜨리면 안된다고 하면서 일단 항복하라고 회유해서 관우가 잠깐 조조한테 몸담게 된다.
관우는 상남자 기믹이 있으며 지꼴리는 말은 무조건 뱉어야 되며, 자기 위에는 천자보다 형님이 우선인 새끼였다.
조조에게 투신했을 무렵에 관우는 같은 항장출신이던 서황, 장료 등과만 친분을 쌓았으며 (1티어들만 만남) 장료와의 대화기록까지 남아있다. 관우가 항상 유비에게 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조가 장료를 시켜 관우의 의중을 물어보라 전하였고 장료가 관우를 마침내 만났다.
관우 曰 나는 조공(조조)께서 후히 대우 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장군(유비)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소. 나는 여기 끝까지 머물 수는 없으나 반드시 공을 세워 조공께 보답한 뒤에 떠날 것이오.
장료는 관우의 뜻을 전하기 전 관우와 친분이 두터웠기에 혹여나 조조가 관우를 죽일까 두려워 했으나, 고하지 않으려나 군주를 따르는 예에 벗어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조조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장료 曰 공(조조)은 군부(君夫)이고 관우는 형제로다!
장료는 관우를 형제와 같이 생각하였으며, 또한 조조를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근심하였다.
조조는 관우의 사람됨에 있어 매우 호방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관우를 더욱 중하게 여겼다. 또한 조조는 장료에게 관우가 언제쯤 떠날것 같은지 물어보았다.
장료 曰 관우가 공의 은혜를 입었으니, 필시 공을 세워 공께 보답한 뒤에 떠날 것입니다.
관우는 이후 장료의 말과 같이 관도대전에서 안량을 밀어버리게 되고, 문추는 연의에서는 같이 죽이지만 정사에서는 안량을 베었다. 그 이후 관우는 원소에게서로부터 도망친 유비와 다시 합류한다.
관도대전에서 여러번 활약을 해서 장료는 비장군으로 관위가 올랐고 예주 노국의 여러 현을 평정했다.
이후 장료는 하후연(황충한테 죽은 하후연)과 함께 서주 동해군에서 창희의 군을 포위했는데, 여러 달동안 진전이 없어서 군량도 아깝고 회군을 하려고 했는데, 장료가 하후연의 부장으로 참여한것 같다. 장료가 하후연에게 진언했다.
며칠 사이 매번 포위된 곳을 지나다녔지만, 창희가 나를 발견해도 화살을 잘 쏘지 않았다. 이는 필시 창희가 마음속에 다른 뜻이 있어 그런것이니 달래볼 수 있을것이다.
그러자 하후연은 창희에게 사자를 보내 장료와 이야기해보라고 전하였다. 창희는 곧 장료와 면대면으로 이야기하게 되었고, 장료가 창희를 마침내 설득시켰다.
장료 曰 조 공께서는 뛰어난 무용이시고 바야흐로 그 덕으로 사방을 품으시니 먼저 귀부한 자가 큰 상을 받았소.
이에 창희는 곧 투항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조조는 장료를 문책하였는데, 장료가 단신으로 적진으로 들어가 회담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위험했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조조의 명령으로 하북을 평정하는데 참여하게 되었다. 원상이 업에서 굳건히 지키자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이에 조조는 허도로 돌아가고, 장료를 보내 악진과 함께 기주 위군 음안현을 함락케 하고 그 백성들을 황하 이남으로 이주시켰다.
마침내 조조가 다시 하북을 평정하기 위해 직접 출병하고, 조조를 도와 업성을 함락시켰다. 장료는 따로 기주 조국, 기주 상산군(조자룡 고향)을 공략하고 여러 산적들과 흑산적 손경을 불러 투항시켰다. 조조를 수행해 원담을 공파했다. 별도로 해안지대를 공략하고 요동도적 유의 등을 격파했다. 업으로 돌아올 때 조조가 기뻐하며 친히 나아가 장료를 맞이했다. 장료를 탕구장군으로 임명했다.
이후 별도로 형주를 공격해서 강하의 여러 현을 평정하고 돌아와 도정후로 임명되었다.
조조가 하북을 완전히 평정하기 위해 후환을 없애려고, 원소 일가와 협력했던 오환의 답돈 등을 정벌하고자 했는데 장료가 이에 간언했다.
장료 曰 천자께서 혀도에 계시는데 공께서 먼 북쪽 땅을 정벌하려 하시니, 유표가 유비를 신임하여 허도를 습격하게 한다면 조 공의 세력이 위험할 것입니다.
허나 조조는 유표가 유비에게 군을 맡기지 않을것이라고 판단하여 오환의 답돈을 정벌하였다.
진란과 매성이 저족의 육현을 들어 반란을 일으켰다. 조조가 우금, 장패 등을 보내 매성을 치도록 하고, 장료와 장합, 우개 등에게 하여금 진란을 공략하도록 하였다. 매성이 우금에게 거짓항복 하여, 우금이 회군하자 다시 매성은 진란에게 합류해 첨산으로 들어갔다.
첨산에는 천주산이 있는데 약 1500m라는 높이를 가지고 있다. 진란 등이 천주산에서 보루를 쌓아 방어했다. 장료는 산 아래에 진을 치고 공격해서 진란과 매성의 머리를 베고 그 무리를 포로로 잡았다. (마속이 떠오르네요)
장료가 진란과 매성의 무리를 포획하고 그 수급을 들고 오자 식읍을 늘려주고 칭찬했다.
합비 공방전
조조는 손권을 정벌하고 돌아온 뒤, 장료를 보내 악진, 이전 등과 함께 7천 여 명을 이끌고 합비에 주둔케 했다. 조조가 장로를 정벌할 때 호군 설제에게 교서를 주었는데 서신의 겉봉에는 적이 도착하면 뜯어보라고 했다. (지혜주머니)
갑작스럽게 손권이 10만 군사를 이끄로 합비에 꼴아박으려고 포위하자, 지혜주머니를 함께 뜯어 보았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조 曰 만약 손권이 오면 장료, 이전 장군은 출전하고 악진 장군은 수비하고 호군(설제)는 싸움에 참여하지 마시오.
이에 제장들이 모두 내용을 의심스러워 하자 장료가 말하기를
장로 曰 조 공께서는 원정하느라 바깥에 계시므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적군이 우리를 깨뜨려 그 수급을 취할 것이오. 이 교서의 뜻은 적이 미처 집결하기 전 그들의 진을 요격해 그들의 예기를 꺾어 군심을 미리 안정시킨다면 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오.
용맹한 장료와 이전은 먼저 선봉을 공격하고 신중한 기질을 가진 악진이 방비를 튼튼히 하는 것에 이전 또한 장료와 의견이 일치했다.
이전 전에 따르면 악진, 이전, 장료는 평소에 서로를 싫어했는데, 장료는 이 상황에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악진, 이전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다.
장료 曰 성패의 기회는 오직 지금뿐이오, 여러분들이 만약 이를 의심하여 출병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라도 군을 거느려 결판을 내고 오겠소.
그러자 이전또한 마음을 굳게 먹고 장료의 의견에 동참했다.
이전 曰 이것은 국가의 큰 일이오. 당신의 계책이 옳은지 틀린지를 볼 뿐이며, 사사로운 원한으로 인해서 공의를 돌아보지 않겠소이다. 청컨대 장료 그대를 따라 전투에 참여할것이외다.
이전이 사사로운 감정을 뒤로 하고 장료의 뜻에 동의하자, 악진 또한 진심으로 동참하기로 선언했다. 이에 장료는 밤중에 용맹히 뒤따른 800군사를 모아 소를 잡아 회식을 진행했다. 병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 장료는 함께 몸소 갑옷을 입고 선두에 서서 800여 명과 손권의 적진을 공격했다. 수 십여명을 죽이고 2명의 장수를 베었는데, 이에 당황한 손권은 달아나 높은 무덤 위로 올라갔고 긴 극을 이용해 스스로를 지켰다. 장료가 손권에게 욕을 뱉으며 싸우자고 했으나 손권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장료의 진영이 여러 겹으로 포위당해 뿔뿔이 흩어지자, 수십 단기만을 이끌어 포위망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에 같이 손권의 진을 공격했던 병사들이 구원의 요청을 하자 몸소 다시 포위망으로 뛰어 들어가 남은 군사들을 구원했다. 이처럼 장료가 미친듯 진을 헤집고 다니자 동오 군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고, 장료와 출진했던 사졸들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장료와 병사들이 여러 깃발을 들고 돌아오자, 합비 내의 사기가 다시 증진되어 수비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장료가 손권을 공격했을 때 동오 군의 대장들이 일반 사졸과 다름이 없이 창과 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할 정도로 당황하게 되었고, 전투 중에 장료는 손권과 마주쳐 사로잡을 번 하였지만 손권의 생김새를 몰랐었기에 손권을 사로잡지는 못하였다.
관우가 219년 번성에서 조인을 포위했고, 장료와 그에게 남겼던 제군을 불러 조인을 구원하게 하였다. 장료가 번성에 도착하기 전 서황이 관우를 이미 격파해 조인에 대한 포위가 풀렸다. 장료는 이에 곧바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대신 조조가 주둔하던 마피에서 회합했다. 장료군이 도착하자 조조가 친히 수레를 타고 나아가 그 노고를 위로했다. 이에 장료는 되돌아가 예주 진군에 주둔했다.
이후 장료가 나이를 먹음과, 그 동안의 고생했던 흔적으로 인해서 몸에 우환이 생겼는데 조조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조비가 이를 애통해 하며 왕족의 병을 치료하던 의원을 시켜 장료의 병증을 살펴보게 하였다. 장료의 병이 낫지 않자 궁성 밖에 임금이 머무는 곳으로 맞아 들이고 임금의 수레를 타고 친림해 장료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고, 임금의 옷을 하사하며 음식을 담당하는 관원은 매일 임금의 음식을 보내도록 했다. 장료의 병세가 차도를 보이자 주둔지로 복귀시키게 하였다.
이후 손권이 다시 출병하자 조비는 손권을 토벌하려고 했다. 장료를 보내 배를 타고 조휴와 함께 해릉에 이르러 장강 부근에 주둔하도록 했다. 이미 장료에게 한번 당해본 전적이 있던 손권이 이를 두려워 하며 제장들에게 신신 당부했다.
손권 曰 장료가 비록 병들고 늙었다고 하나 쉽게 대적할 수 없으니 신중히 대처하시오!
여범 전에 이르기를 조휴, 장료, 장패 등이 합세해 공격해오자 서성, 전종, 손소 등으로 하여금 수군으로 동구에서 조휴 등을 방어했다. 그 당시 태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고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어 손권은 군을 무르게 되었다.
222년, 장료는 병세가 악화되어 마침내 강도에서 명을 달리 했다. 조비는 눈물을 흘렸고 시호를 내려 강후(剛侯)라 했다. 아들 장호가 후사를 이었다.
연의에서는 조비를 위기에서 구하려던 중 정봉이 쏜 화살에 병들어 죽는다고 나와있지만, 224년은 이미 장료가 죽은지 2년뒤의 이야기이다. 무인은 전쟁터에서 전사하는것이 명예롭다고 생각하여 나관중이 각색한듯 하다.
장료전 끝 글자수 8천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