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박상수 - 후르츠 캔디 버스

깨어 있는 발랄함으로 ‘지금 이 시대의 시’를 쓰는 시인 박상수의 첫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가 14년 만에 새 옷을 입는다.
두번째 시집 『숙녀의 기분』(문학동네, 2013)에서 미처 숙녀가 되지 못한 ‘숙녀’의 굴욕 탐사기, 세번째 시집 『오늘 같이 있어』(문학동네, 2018)에선 폭력과 부조리의 세계에 내던져진 사회 초년생의 좌충우돌 적응기로 달려왔던 이 ‘비성년’들에게도, 보다 어리고 더욱 풋내 나는 미성년의 시절이 있었을 터.
이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는 소녀였던, 소년이었을 그들의 성장기다.
작가의 말
초판 시인의 말
괜찮니? 그래, 오늘은 잠깐 너를 보러 온 거야……
달이 있고 여전히 이곳엔 지구인의 폐기된 기억이 떠다닐 테지만.
2006년 2월
박상수
개정판 시인의 말
난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벌써 가슴이 아파오고 있어.
미안,
이젠 정말 네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2020년 10월
박상수
미안, 병에 걸렸어 어제는 외래인 대기실에 앉아 꾸벅 졸다가 돌아왔고 내일은 알 수 없지만 모레도 마찬가지일 거야, 난 그저 19세기식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물었던 것뿐인데, 선생님이 말해주었어, 얘, 그런 병은 없는 거고 그래서 모두 너를 미워하는 거야, 넌 내가 마스크를 한 채 모자를 눌러쓰고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지? 난 그저 너를 좋아하는 것뿐인데, 이제 난 말도 못하고 들을 수도 없어, 냉장고에 넣어둔 시계는 잘 돌아가고 있겠지 뱃속이 바람으로 가득차 멍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너 같은 거, 편의점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난 죽음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사는 소녀처럼 한 번도 대기실을 지나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고, 미안, 이제 마지막 남은 오른쪽 눈마저 퇴화를 시작했어, 난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도 너에게 주지 못했는데, 정말 룩셈부르크병에 걸린 걸까?
─「날 수 있어, 룩셈부르크를 찾아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