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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유선혜 -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취급주의민트초코절임
02.20
·
조회 330

“우리의 언어는 멸종에 관한 것이었는지 사랑에 관한 것이었는지”

끝을 상정하는 사랑의 위기 속에서
오늘도 힘껏 멸종해, 너를 멸종해

 

사랑의 화석을 더듬는 멸종의 고고학
유선혜 첫 시집 출간
 

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유선혜의 첫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08번으로 출간되었다. 

“지금 여기 이곳에 발 딛고 서 있으면서 보고 듣고 만지고자 하는 열정”(심사평)으로 써 내려간 시 43편을 총 4부로 나눠 묶었다.

 

작가의 말
 

그러나 나는 기어이 써버리는 사람

논리도 없이
비약만 있는 미래를 꿈꾸고
망해버린 꿈들을 죄다 옮겨 적는 사람

이걸 토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죠?

2024년 10월
유선혜

 

목차


시인의 말
 

1부
괄호가 사랑하는 구멍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흑백 방의 메리 | 하얀 방 | 혼자 있는 사람 | Nirvana | 마주 보지 않고 | 사이비 리듬 | 물어뜯기 | 영으로 갈 때 | 반납 예정일 | 제2외국어 | 그게 우리의 임무지
 

2부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 뼈의 음악 | 어떤 마음을 가진 공룡이 | 지질시대 | 징그럽게 웃는 연습 | 마녀와 로봇의 사랑 | 원룸에서 추는 춤 | 잡종의 별자리 | 멸종의 댄스 | 아쿠아리움 | 영생의 굴 | 까마귀의 역설
 

3부
빈맥 | 아빠가 빠진 자리 | 일란성 슬픔 쌍둥이 슬픔 | 우리의 아이는 혼자서 낳고 싶다 | 우리는 못 말려 | 왜냐하면 그 상자는 비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청춘 리스트 | 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 | 밤무대 | 어느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심사평 | 줌바 버전 | 집단 상담 | 너는 대숲에 왔다 | 폭탄이 불량이 아니라는 사실은
 

4부
비어 있는 방 | 충돌에 관한 사고실험 | 악의 문제 | 구멍의 존재론
 

해설
‘철학적으로 청소된’ 영혼의 문장들 · 조연정

 

너는 록스타가 될 수 없어

작은 공연장에서 열린 록밴드의 공연을 보며 너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 지나치게 큰 소리는 귀가 아닌 발로 듣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타리스트가 허리를 젖히고 미간을 찡긋거릴 때마다 어쩐지 위장이 뒤집히는 느낌이었고

발끝으로
둥둥거리는
소리가
심장으로 옮겨 와

누군가 네 심장을 주물럭거리는 느낌이었지 씻지 않은 손으로 심장을 주물거리는 그것의 존재를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식은땀이 났고 그들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지 않았어

너에게 어울리는 장소는 차라리 동굴이었다

[……]

너는 어둠을 견뎌야 했지 부드러운 손아귀를 견뎌야 했지 그토록 태워버리고 싶던 이 세상에서 모든 빛이 꺼질 때까지 불 지르고 싶던 네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딱딱하게 굳은 몸으로
아무도 듣지 못하는 파동을 연주하며
견뎌야 했지
석탑에 갇혀 있는 불경의
서러움과
아득함으로
―「Nirvana」 부분

죄를 지은 공룡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물관의 입구에는 오래된 공룡 뼈가 목을 빼고 서 있다
나는 거대한 얼굴 앞에서 잠시 멈추고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얼굴이지만
결국에는 아무도 삶 이전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래, 내가 다시 태어난다는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있다

[……]

도대체
그런 이상한 되풀이가 있다
괴상하고 커다란 얼굴이 있다

공룡의 긴 이름이 적힌 팸플릿으로 종이비행기를 접는다
우리는 쉽게 잘못을 지운다
비행기가 꼬리의 곡선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떤 마음을 가진 공룡이」 부분

쓰러진 전신 거울은 곧바로 뒤집어 봐서는 안 된다
어두운 바닥이 익숙해질 시간을 줘야 하니까

어지러운 거울 밑으로 도마뱀이 숨어 들어간다
다음 날 거울을 일으켜 보면
박살 난 세상을 똑바로 보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조각조각 비친 방의 야경을
다시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광경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기어 나오는 도마뱀

[……]

거울의 꿈은 끊어진 흔적 없이 도마뱀의 꼬리를 비추는 것
흘러내리는 도마뱀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날이 오면 거울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듯이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간다
징그럽게 웃는 얼굴로

도마뱀은
녹아서
피로 다시 태어나겠지

그런 온도를 꿈꿨으니

연습하면 뭐든 가능하다고 믿는다
―「징그럽게 웃는 연습」 부분

밤마다 문을 잠그고 만든 사제 폭탄
재료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날파리의 사체와 머리카락, 자조, 찌그러진 트럭의 가스통을 훔쳐 만든 뇌관. 약간의 멜랑콜리, 증오

혹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들은 목소리의 기억

[……]

터지느냐, 마느냐, 정답은 아무도 모르지
폭탄이 불량이 아니라는 사실은 폭발로만 증명될 수 있으니까
언제 터져버릴지 가늠할 수 없는 파멸과
어디로 날아가 박힐지 모르는 파편의 가능성
초록 박스 테이프로 밀봉한 정체불명의 택배에 왼손으로 적은 익숙한 주소

폭탄이 담긴 박스는 오늘 밤 그들에게 간다
그건 누가 봐도 수상하다
그러니까
열어보지 말라고
절대 꺼내지도 말라고
―「폭탄이 불량이 아니라는 사실은」 부분

영혼에는
불가능한 것들이 머문다
둥근 삼각형, 뜨다 만 곰 인형, 혹은 추리소설 속 괴도 뤼팽

당신이 네모라고 부르면 원이 되고
직선이라고 부르면 점이 되는 방에

당신은 영혼을 임대하고
어느새 침실이 생기고 춥다고 말하면 보일러가 켜지고 샤워를 하면 온수가 나오고 만두를 사 오면 전자레인지가 나타나는
당신이 켠 구석의 스탠드에서 잠시 낮은 채도가 번진다

[……]

임대는 끝의 개념을 내포한다
당신은 온통 짐을 빼고
다시 영혼은 비어 있는 방
그 옆에는 펄럭이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비어 있는 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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