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법정의 무소유가 아니다. 성철과 법정의 무소유다 - 무소유
책을 잘못샀다.
‘무소유’라는 제목을 보고 당연히 법정 스님의 책이려니 하고 샀던 책이 제목만 같고 다른 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현재는 한국 불교계에서는 법륜스님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또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현대 불교계의 뿌리깊은 거목을 말하자면 법정과 성철, 이 두 스님이 빠질 수 없다.
콩 한쪽, 물에 떠 있는 참기름 한 방울도 소중히했던 성철 스님에게는 강렬한 기개와 절제된 무소유가 보였으며
집착을 버리며 종기엔 시간과 공간까지도 버렸던 법정 스님에게는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무소유가 배어나왔다.
김세중 저자가 쓴 ‘무소유’에서는 걸어왔던 길은 달랐으나 목적지는 같았던 두 스님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삶에서 묻어나왔던 고전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다뤄져있다.
필자는 법정과 성철이 걸어온 길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소유는 단어 그대로 '그 무엇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닌 ‘가지되, 가진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마음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말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그 누구도 무소유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현대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은 가능하다. 소유는 하되, 소유한 것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가진것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속세를 떠나는 등 이들처럼 집착을 내려놓는 환경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절제된 음식을 먹고, 절제된 생활을 하며, 절제된 소비를 하는 삶. 아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삶 말이다.
다만 이것을 진정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본질을 이해하고 체화하지 못한다면 도움을 받을 순 있어도
결국 그 곳에선 또 다시 그 곳에서만의 집착이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또한 모든이가 저런 삶을 살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삶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진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한다.
결국 깨달음은 실천의 연속이다. 역사적으로도 수 많은 자들이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것을 진정 ‘깨달음’으로써 실천한 자들은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그것을 온전하게 실천한 자들은 지금까지도 ‘성인’이라 불리지 않는가.
콩 한쪽을 가지고 있다해도 집착한다면 그것은 무소유가 아니며, 거대한 성 같은 집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무소유인 것이다.
'진실로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사람은 행복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 것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 보라.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이 여기저기에 얽매여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지를' - 우다나·이티붓타카
밀리의 서재 -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