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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선우은실 -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취급주의민트초코절임
01.25
·
조회 417

이건 웃긴 건가 웃기지 않은 건가
고민하는 동안 일단 나는 웃었다, 왜?

 

어제와 오늘의 표정을 단호히 되묻는 글쓰기 생활자의 기록

스스로를 “잘 견디기 위해” 타인을 이해해 보기를 선택한 한 사람의 눈이 밝고 영민하게 빛난다. 책의 제목과 달리 나는 그의 글에 연신 웃었고 읽는 온도도 무척 따뜻했다.—김금희(작가)

 

선우은실 평론가의 첫 산문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이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여러 지면에 글을 발표해 온 작가는 작년 그간 써왔던 글을 모아 단단한 물성을 가진 첫 평론집 《시대의 마음》을 펴냈다. 

‘생활비평 산문집’을 표방한 이번 책은 성실한 활동을 이어온 비평가의 일일을 기록한 책이자, 예사로운 생활 속에서 느끼는 ‘화’의 감정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비평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작가는 총 세 개의 부를 거쳐 어린 날 아직 언어로 소화되지 않았던 이름 모를 불편과 기쁨을 내밀하게 되짚고, 오늘날 30대, 비혼, 여성, 비평가로서 마주치는 곤경과 곤란을 해석한다. 

김금희 작가의 말처럼 “발랄하고 매몰찬 듯 너그러우며 도전적인” 글의 면면에는 ‘알고 싶다’와 ‘모르고 싶다’ 사이에서 서성이며, 약속된 마감을 지키기 위해 고투하는 한 글쓰기 생활자의 흔적이 여과 없이 담겨 있다.

 

여전히 나를 화나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아주 메마르고 건조하며 고갈되어 있다. 합본된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어떤 날의 감정이 아직 과거가 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내게 살아간다는 것은 더는 ‘앎’만의 문제는 아니다. ‘느낌’을 피치 못하게 되었다.

서문에서

 

이름 모를 결핍의 출처

 

매번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데려다줄래, 데리러 올래, 뭔가 같이 할래 물어보는 이 결핍은 어디에서 온 걸까?

67쪽

 

‘생활’에 대하여 말하려면 자연히 한집에서 한 시절을 공유한 가족들과의 기억이 소환된다. 

늘 “가장 곤란한 문제는 내가 ‘나’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백지 앞에 오래 앉아 떠올린 어린 날의 장면들은 작가가 공부한 이론들을 통해 비로소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해의 시도”를 거듭하는 ‘나’의 결핍은 자주 논리의 영역에서 비껴간다. 

작가는 딸인 자신과 맺은 크고 작은 약속을 쉽게 저버리는 엄마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고 ‘여성의 선택’이며 나는 이러한 믿음을 삶에서 실현하고 싶어서 페미니즘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가 ‘나의 엄마’여서. 

엄마의 선택은 ‘나’의 결핍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병환이 깊은 와중에도 늘 채신을 갖추고, 어린 나에게 동전과 지폐를 가득 채운 “담뱃갑 용돈”을 건네던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어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장 나다울 수 있었다”. 

훗날 작가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서슬 퍼런 가부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물리고 싶지 않다”는 솔직하고 내밀한 고백을 펼쳐 보인다.

 

고통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을지라도

 

‘앎’이 이토록 고단한 것이라면. 

가족을 이해해 보기로 시도할수록 ‘증’의 기억을 기어코 건드리고, 7년간 쉬지 않고 활동했음에도 성별이나 출신 대학을 이유로 나의 노고를 쉽게 지우는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마주치고, 쓰면 쓸수록 “내가 아껴온 일이, 마음을 써온 일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 하나 도래하리라 약속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렇다고 생계 혹은 생명이 크게 위태로웠던 적도 없는 무사한 나날들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작가는 “못 견딜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모두 함께 하하 웃을 때 혼자만 웃지 않을 이유를 떠올리고 무표정으로 응답하는 데엔 그 자체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웃지 않을 이유를 알게 된 이후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안다. 

“고통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을지라도” 나와 타인의 존재를 뭉뚱그리지 않고 계속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마음. 

‘앎’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애증하는 글쓰기로 보통의 ‘화’를 기록한 그의 문장들 속에서는 정직한 온기와 유머마저 느껴진다. 

홀로 된 공간에서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소도구들을 연장 삼아 그는 계속 쓴다. 

자다가 내일 눈뜨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오늘만큼만 살아 있기 위하여.

 

“오직 너만이 가능한 자비를 지녔다는 자부심으로”. 이 한 문장은 영원히 뇌리에 남는다.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타인의 고통 또한 제대로 볼 수 있다. 자신의 미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타인의 미덕 또한 볼 수 있다. 오직 내가 그것을 지녔기에, 타인의 그것 또한 헤아릴 수 있음에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환희,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으로.

239쪽


추천의 말

 

얼마 전 나는 저자와 만나 텍스트가 좋으면 오히려 그에 대한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는 데 동의했다. 

자기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관계들을 촘촘히 분석해 들어가면서 그들에 대한 자기 내부의 감정적 반향에 골몰하고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나 〈심슨 가족〉 시리즈 등 모두가 열광한 대중매체물에 숨겨진 의미, 더 나아가 그것이 포착하고 있던 미래 세상의 기미까지 절묘하게 설득해 나가는 이 발랄하고 매몰찬 듯 너그러우며 도전적인 산문을 대체 내가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스스로를 “잘 견디기 위해” 타인을 이해해 보기를 선택한 한 사람의 눈이 밝고 영민하게 빛난다. 

책의 제목과 달리 나는 그의 글에 연신 웃었고 읽는 온도도 무척이나 따뜻했다. 

콘도 수영장에서 튜브를 이리저리 끌어주는 그의 할아버지와 돌봄 노동자로 일하며 조카인 저자에게 그 어려움을 나눌 책 선물을 받는 이모, 마지막까지 주위 사람들과 친교를 유지하며 끈끈한 자매애 아래 비혼 여성으로서의 삶을 마친 이모할머니, ‘딸’과 ‘엄마’ 사이에서 갈등하다 원가정에 대한 애착의 유지를 선택함으로써 매번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그의 엄마까지. 

선우은실 평론가는 우리 주위에 늘 존재하지만 미처 간파하지 못한 타인들의 면면을 자기 언어로 그려내고 애정 있는 생기를 불어넣는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자신의 단편소설에서 그린 “다른 이의 슬픔을 헤아릴 줄 아는 성정을” 선물받은 어느 주인공처럼. 

그가 이런 글들을 써서 고맙고 계속 써나갈 것이기에 미덥다.

_김금희(작가)


차례

 

서문

표면에 대한 이야기 5

되묻기

장미이불과 담뱃갑 13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18
가족 시트콤 연대기 24
미래 예언적 블랙코미디 36
덮어쓰기 50
비 오는 날 집에는 아무도 없다 56
그녀에게 바라는, 그녀는 가지지 않은 것 64
오늘만큼 살아 있다 72
과자의 시간 78
먹는 일 83
돌봄의 시야 91
엄마의 가족과 가족 이데올로기 102
콘도 수영장 111

오늘의 표정

흔들리는 나무 121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122
생활에 대하여 132
이모할머니의 장례식 139
아는 게 힘, 모르는 게 약 148
유감의 역사 154
모두가 호신용품을 사지는 않는다 161
‘여자’ 아닌 척하기 167
여자(아이) 기억 175
잊어버려지게 되었다 184
견디다 190
상하다 195

글쓰기 생활자의 작업복

미도리 노트와 일기장 203
만년필 207
핸드크림 212
연필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자기만의 방 216
스탬프 찍는 기분 223
고통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지는 않을지라도 235


 

이면을 보는 것이 비평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읽은 문학 이론서에서는 징후라는 게, 이면이라는 게, 결국은 ‘표면’을 읽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글 또한 나의 착각에 대한 착오로 쓰였다.

서문, 6쪽

 

내가 그를 좋아하고 아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가 보잘것없이 병들어 가고 있었음에도 손녀 앞에서 옷을 갖춰 입고 채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또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가 한 집안의 서슬 퍼런 가부장이었고 그런 사람이 손녀의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을 받아줬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느낀 ‘멋짐’은 그처럼 ‘되고 싶다’는 아니었지만 그를 좋아할 수 있게 했다. 그 시절 담뱃갑을 들고 떼를 쓰는 어린 나는 어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장 나다울 수 있었다.

〈장미이불과 담뱃갑〉, 16-17쪽

 

그는 화를 내야 할 상황에 웃어버리는 자신의 버릇을 보고 당황한다. 하나도 웃기지 않은 상황인데, 그것을 웃어넘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이 그런 말과 태도에 공격받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어쩜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잘도 하다니, 우습기도 하지, 하하하, 하하하하.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20쪽

 

그날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날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뛰어갈 수밖에 없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야, 이렇게 비가 올 수가 있나, 이런 비를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맞아볼 일도 별로 없겠다, 그냥 뛰어가든 뭐로 비를 막고 가든 별 차이도 없겠다 싶어서 마구 뛰어갔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도착해서도 비실비실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비 오는 날 집에는 아무도 없다〉, 62-63쪽

 

매번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데려다줄래, 데리러 올래, 뭔가 같이 할래 물어보는 이 결핍은 어디에서 온 걸까?

〈그녀에게 바라는, 그녀는 가지지 않은 것〉, 67쪽

 

이런 식의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은 내게 얼마간의 신경증과 예민함, ‘조심’에 대한 짜증스러움과 분노를 일으킨다. 나는 왜 조심해야 하지? 왜 예민해야 하지? 그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고, 부담스러운 호의가 짜증 났다고 말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지만, 문제가 ‘생존’과 직결돼 있었다면, ‘그런 사람’이 되는 수준에 머물 수 없다.

〈여자(아이) 기억〉, 180쪽

 

오로지 스스로에 기대어 움직이는 공간 속에서 나는 어떤 것들은 좀 더 빨리 판단해야만 하고 모든 판단에 대해서는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런 책임감 때문에 운전하는 일은 늘 고단했고 여전히 그렇다. 그럼에도 홀로 된 공간에서 지체할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시시때때로의 판단 앞에 놓이면서 혼자의 결단을 마주하는 일. 별수 없이 홀로 된 공간에서 홀로 된 조작을 할 때에야 가능한 일을 한다. 마치 생활하는 일처럼.

〈생활에 대하여〉, 138쪽

 

“오직 너만이 가능한 자비를 지녔다는 자부심으로”. 이 한 문장은 영원히 뇌리에 남는다.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타인의 고통 또한 제대로 볼 수 있다. 자신의 미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타인의 미덕 또한 볼 수 있다. 오직 내가 그것을 지녔기에, 타인의 그것 또한 헤아릴 수 있음에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환희,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으로.

〈고통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지는 않을지라도〉,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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