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대니얼 월리스 - 빅 피쉬 (큰 물고기)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의 원작이자, 2019~2020 한국 초연 뮤지컬 <빅 피쉬>의 원작.
사건 및 인물의 리얼리즘적 묘사와 환상문학의 요소들, 흔히 꿈·신화·동화에서 끌어낸 요소들을 결합한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한 『빅 피쉬』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저자의 거침없는 상상력, 색다른 접근 방식, 신선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아버지들은 무뚝뚝하거나 실없거나, 과연 그 두 가지뿐인가.
어렸을 때부터 잠시 집에 머물다가는 어디론가 사라져 황당무계한 이야깃거리를 잔뜩 가지고 나타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실체를 찾아가는 아들의 여정을 통해 ‘아버지 신화’의 베일을 벗긴다.
황홀한 이야기로 온 동네를 들썩이게 만드는 이야기꾼 ‘에드워드 블룸’.
평생 모험을 즐겼던 허풍쟁이 아버지인 에드워드는 사실인지 믿기 어렵지만 아주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늘어놓는다.
아들 윌리엄은 도통 믿을 수 없는 아버지의 허풍이 진저리가 난다.
젊은 에드워드 블룸은 태어난 날부터 남다른 기운을 받고 태어났고, 남들보다 빨리 컸으며, 만능 스포츠맨이자 해결사였다.
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된 에드워드는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애슐랜드를 떠나 여행을 시작했고, 인어, 마녀, 거인 그리고 운명적 사랑 등 특별한 인연들을 만나며 영웅적인 모험과 로맨스를 경험했다.
하지만 아들 윌리엄에게는, 아버지가 세일즈맨으로 밖으로만 떠돌다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만 여겨진다.
어른이 된 윌리엄은 죽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이제껏 아버지와 한 번도 진정한 대화를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아버지가 누구였고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는가를 발견하려고 한다.
소설 『빅 피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삼았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신선하고 색다른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목차
제1부
아버지가 태어나던 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다
앨라배마에 눈이 오던 해
대단한 징조
아버지의 죽음 1
강에서 만난 소녀
은근한 매력
거인을 길들이다
호수 밑 세상
애슐랜드를 떠나다
새로운 세계로
제2부
노파의 눈
아버지의 죽음 2
그의 위대한 첫사랑
그의 전설적인 다리
드디어 행동으로 옮기다
결투
처갓집에 가다
세 가지 위업
전쟁에 나간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 3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와 나
내 목숨을 구한 아버지
불멸의 아버지
아버지의 힘
아버지의 꿈
제3부
도시를 통째로 산 아버지
어떻게 끝이 나는가
아버지의 죽음 4
큰 물고기
옮긴이의 말: 아버지는 누구인가
첫문장
아버지의 생이 다해갈 무렵, 나는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자동차 여행을 했다.
P.9
나는 이 노인을 바라봤다. 생이 저물어가고 있는 시간에 늙고 하얀 발을 흐르는 맑은 물에 담그고 있는 나의 늙은 아버지. 나는 불현듯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한때 소년이었던, 어린애였던, 그리고 젊은 청년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봤다. 내 청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한때 청년이었던 것을,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아버지의 현재와 과거─은 모두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자 순간, 아버지는 젊으면서도 늙은,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 태어나고 있는 아주 기괴한 존재로 변했다.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P.37-38
“진정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아니?”
나는 한동안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심 아버지가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을 잊기 바라면서. 그의 정신은 오락가락 방황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나를 보는 모습에서 나는 그가 지금 그 질문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질문에 집착하면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무엇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다. 그러나 지금 같은 때에는 ‘모르겠는데요’ 같은 대답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뭔가 떠올려야 할 때다. 나는 무슨 생각이라도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제 생각엔….”
나는 적당한 말이 나와주길 기대하면서 잠시 후 입을 연다.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위대함의 망토를 입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아버지는 그 위대함을 더 넓은 세상에서 추구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내내 바로 여기, 집에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P.58-59
그는 뭔가 살아 있는 것에 끌려가고 있었다. 메기였다. 그는 집채만 한 메기가 물을 박차고 나와 태양 빛을 받으며 기다란 반원을 그리는 것을 본다. 아름다우면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괴물 같은 그것은 아마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메기는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에드워드를 끌고 들어간다. 그를 배 밖으로 끌어내어 물속으로, 아래로, 큰 호수의 수중 무덤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끌고 들어간다.
그는 거기에 있는 집과 농장과 들, 그리고 홍수에 잠겨버린 애슐랜드의 작은 한 귀퉁이의 거리를 본다. 그리고 사람들도 보인다. 호머 키트리지와 그의 아내 말라가 있다. 번 탈보트와 캐럴 스미스도 있다. 호머는 양동이 가득 여물을 말에게 주고 있고, 캐럴은 말라에게 옥수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번은 트랙터를 몰며 일하고 있다. 짙푸른 물 몇 길 아래에서 그들은 마치 영화의 느린 화면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면 입에서 작은 거품 방울들이 퐁퐁퐁 나와 물 표면으로 떠오른다.
P.76-77
그때 갑자기 그를 둘러싼 무리 뒤편에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비명 소리와 동시에 개가 엄청나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기적처럼 삽시간에 흩어졌다. 그것은 개였다. 개는 사납게 으르렁댔다. 그것이 사람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자 모두들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침을 흘리고 있는 괴물에게서 도망쳤다. 아버지는 기회를놓치지 않고 그 틈을 타서 달려 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어둠 속을 달리고 또 달리자 주변은 아주 환하고 푸르고 멋진 곳으로 변했다. 아스팔트길은 자갈길로 변하고 자갈길은 흙길로 변했다. 요술 세계와 같이 아름다운 곳이 그리 멀지 않은 듯 보였다. (…) 그때 갑자기 숲이 트이더니 그들 앞에 끝없이 펼쳐진 넓고 푸른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가장자리에는 나무로 된 작은 나루터가 있었고 그곳에는 바람이 만드는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 이윽고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올랐다. 호수 표면에는 작은 물결들이 찰랑거리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는 하얀 달빛 속에서 그 소녀를 봤다. 물속에 머리를 담글 때 그 머리 사이로 흐르는 호수의 물살,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짓에 아버지도 손을 흔들어 대꾸했다.접기
P.156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른 아침 박스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을 봤어도, 그리고 한밤중에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의 꿈꾸는 얼굴을 마치 수의처럼 덮고 있는 푸른빛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봤어도 우리는 왠지 아버지가 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의 신, 입만 열면 ‘옛날에 이런 사람이 있었단다’로 시작하는 신,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이 좀 더 웃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신과 어떤 인간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웃음소리가 좋아 아버지에게서 물건을 산 사람들의 삶이 더욱 나아지고 그래서 아버지의 삶이 더 나아지고,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을 두루두루 다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신이다. 그는 늘 사람들을 웃기고 돈을 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웃고 있고 내 눈물을 비웃는다. 어머니가 고개를 내저으며 손님방에서 나올 때에도 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정말 못 말리는 양반이야.”
어머니가 말한다.
“정말이지 암만해도 못 말리는 양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