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책은 닫힌 책으로 시작해서 닫힌 책으로 끝난다. -지대넓얕 무한-
때는 2016년, 대한민국 인문학계를 뒤집어 놓은 센세이션 하면서도 이상한 책이 출간됐다.
책의 이름도, 그 축약한 이름조차도 이상했던 그 책.
그러나 인문학 카테고리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100만부 달성을 무려 두 권 연속으로했던 책, 바로 ‘지대넓얕’이다.
이 책이 나온 이후로 대한민국에선 본격적으로 인문학 붐이 일기 시작했다.
아주 유명한 tv시리즈인 ‘알쓸신잡’ ‘알쓸범잡’ 등등도 역시 이 책의 축약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지대넓얕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줄임말인데, 책이 나오기 이전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이 먼저 있었다.
채사장, 이독실, 깡선생, 김도인이라는 네 명의 패널들이 세상의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그런 라디오 방송이었는데,
여기서 채사장이라는 지대넓얕을 기획한 패널이 출시한 책이었다.
지대넓얕은 총 4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대넓얕1 - 현실 편
지대넓얕2 - 현실 너머 편
지대넓얕 제로
지대넓얕 무한(신간)
해당 책은 게임계의 전설 오브 레전드인 페이커 선수의 추천 책 목록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나는 지대넓얕 팟캐스트를 2016년도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해당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한 에피소드를 수십번씩 반복해 듣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팟캐스트 및 책 시리즈를 봤던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작가 채사장은 ‘세계’와 ‘진리’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 역시 세계와 진리, 그리고 신비학과 철학적 사유로 삶을 채워왔던 사람인지라 작가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그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채사장 역시 나중엔 해당 책을 쓴 이유가 사실은 ‘인문학적 넓고 얕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닌, ‘세계와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참 후에 나온 세 번째 시리즈인 ‘지대넓얕 제로’에서는 세계를 우주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훑어가며 여러가지 철학적 사유를 담아놨다.
제로부터 슬슬 그가 이 책들을 쓴 진짜 의도가 베일을 벗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제로’ 시리즈에서부터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철학 과학 예술 종교같은 지극히 인문학적이면서
다양한 카테고리를 다루고 있던 책이, 갑자기 다음 시리즈에서는 계속 역사 속을 탐험하며 ‘세계와 자아, 그리고 진리'를 찾는 여정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매우 만족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아왔던만큼, 이 책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채사장은 해당 ‘제로’ 시리즈를 쓰던 시기 잠시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는가 싶더니, 어느 날 홀연히 잠적해버렸다.
사람들은 다들 그가 사라진 것에 의아해 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마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가 지대넓얕이 아닌 다른 저서에서도 계속 얘기했듯, 그는 ‘사람들과 멀어져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를 실천했을 것이리라.
그렇게 그가 공식적인 활동을 접고 약 3~4년이 지난 2024년 12월, 새로운 시리즈인 ‘지대넓얕 무한’이 출간되었다.
사실 난 이 책의 목차만 보고도 ‘이제는 이 시리즈가 더 이상 스테디셀러로서 팔리긴 힘들 것이다’라는 것을 짐작했다.
책은 더욱 치밀해지고 또 난해해졌다. 다만, 책이름과는 달리 우리가 아는 ‘넓고 얕은 지식’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그에 대비해서 ‘자아와 세계, 그리고 진리’는 책 전반에 걸쳐 다뤄지고 있을 만큼 방대해졌다. 아니 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젠 더 이상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타이틀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채사장이 이걸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사유와 사색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갈무리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들었던 생각은 ‘닫힌 책이다’였다.
그렇다. 이 책은 닫힌 책으로 시작해 닫힌 책으로 끝난다.
특히 대다수가 유물론적이고 물질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굳게 닫힌 책이다.
이 책은 나의 삶에 대해 고찰을 해봤거나, 깨달음이나 진리를 향한 탐구를 해왔던 사람이 아니라면
정말 괴이한 책,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사이비 종교에서 집필한 책처럼 보일 가능성도 높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도’를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 감히 확신할 수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간략히 말하자면,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계의 진실’을 말해주는데 모든 파트를 할애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에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닌, ‘바로 내가 이 세계를 일으킨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수 많은 역사를 거쳐오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인들이 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반야심경이 말하는 핵심인 ‘오온이 공하다’와도 일치한다.
다만, 그것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이 책에선 그러한 깨달음들을 대중들에게 와닿게 적기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책에서 그것들을 이해하긴 커녕, 이 책 자체도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비판하려는 말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살아온 우리에게는 초장에서부터 막히거나 저자의 의도가 왜곡되게 해석될 확률이 굉장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바는 우리가 살면서 여태껏 한 두번은 들어봤을법한 성인들의 말과 다르지 않다.
책에서도 그들 역시 걸어온 길이 달랐을 뿐, 결국 같은 하나의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어필한다.
“하나의 진리를 두고, 여러 현명한 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도다” - 우파니샤드
그런점에서 이 책 역시 하나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여러가지 길 중 하나이다. 다만 다른 길들 보다는 조금 더 직관적인 길이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의 진의를 파악하며 술술 읽었다면, 당신에겐 이 책이 ‘열린 책’이자 지평을 넓혀주는 실천서로 다가올 것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무슨 이상한 소리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써놨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닫힌 책’으로 시작해 ‘닫힌 책’으로 끝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열리는 책이기 때문이다" - 티벳 사자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