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카미유 리키에 - 베르그손 고고학

시간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
그의 모든 철학과 저작을 아우르는 단 한 권의 책!
《베르그손 고고학: 시간과 형이상학》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앙리 베르그손의 철학을 새롭게 해석한 카미유 리키에의 박사학위 논문 〈베르그손 철학에서 시간과 방법〉(2007)을 개정 출간한 책이다.
프랑스 낭테르 대학에서 베르그손 철학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엄태연이 오랜 번역과 검수 끝에 번역해 읻다의 철학 시리즈 ‘착상’의 세 번째 책으로 출간한다.
베르그손의 연구를 발굴하다
《베르그손 고고학: 시간과 형이상학》의 저자 카미유 리키에는 데카르트에서 발원하는 프랑스 철학의 맥락에서 베르그손과 샤를 페기, 장폴 사르트르의 작업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리키에는 박사논문을 통해, 21세기 들어 가장 중요한 베르그손 연구의 한 사례를 선보인다.
리키에는 이 책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베르그손의 편지들, 미간행 원고들, 심지어 베르그손이 소장한 책의 여백들까지 뒤져가며 그의 저작들을 독해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베르그손의 저작들에 순차를 두거나 우위를 주지 않고, 베르그손이 수행한 철학적 작업으로서 모든 저작의 전체 통일성을 부과한다.
이렇게 재발굴된 베르그손 철학의 통일성을 좁게는 현상학, 넓게는 철학사 전체와 대면시켜 그 맥락도 풍부하게 재구성한다.
1부는 베르그손의 방법이 형이상학을 심층적으로 개혁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에서 일관성을 찾으려 한다.
2부는 베르그손 철학이 전하는 여러 복잡한 문제를 통해 이 모든 작업의 통일성을 포착하는 데 전념한다.
리키에는 이 책에서 베르그손 철학은 기원이나 전통과 단절된 새로운 것이 아니고, 데카르트부터 이어지는 프랑스 철학사 속에서 형이상학의 갱신과 복권이라는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베르그손의 ‘시간의 고고학’
베르그손에게 ‘고고학(archélogie)’은 시간적 깊이에 따른 지층들을 연구하는 일이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시간에 대한 질문은 각각의 저작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베르그손의 작품 전체는 ‘시간의 자료체(corpus)’이기도 하다.
그의 모든 저작은 하나의 순간, 시간을 이룬다고 전한다. 과거, 현재, 미래, 영원과 같은 시간의 차원들과 감각, 기억, 의지, 사랑 같은 지속의 층들을 차례로 전개한다.
베르그손의 고고학은 이 시간적 지층들의 유동성 속에 기거하며, 그의 철학적 탐구는 경험의 깊이 속으로 용해된다.
베르그손의 철학은 추상적 원리의 통일성에 갇히지 않고 자아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 잠긴다.
서문 중에서
《베르그손 고고학》의 주도적 이미지는 깊이의 이미지다.
리키에에 따르면, 베르그손은 전통 형이상학이 추구해 온 단단한 토대를 발견, 확립하려는 시도를 비판하고 우리가 딛고 선 지반의 연성(軟性)을 밝히며, 그 지반 아래로 데려가 모호한 시간적 변이들을 목격하게 한다.
1부에서는 베르그손 작품의 근간이 되는 ‘방법’의 세밀하고 뚜렷한 절차를 다룬다.
발표되지 않았던 베르그손의 저작, 서신,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록들은 베르그손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연구 결과를 얻는지 세세히 보여준다.
저자는 베르그손이 지속을 사유하라고 제안하기보다는 형이상학의 고전적 문제들을 “지속 안에서 사유하기”를 제안한다고 말한다.
이는 형이상학의 전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2부에서는 베르그손적 방법이 개혁한 형이상학을 재검토한다.
하나의 저작에서 다른 저작으로 나아가는 작품의 전개를 뒤따르는 독해를 제시한다.
이 저작들은 각기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며 문제의 해결은 다음 문제로 이어진다.
자유의 문제(《의식의 직접소여에 관한 시론》), 심신 결합의 문제(《물질과 기억》), 인과의 문제(《창조적 진화》), 의지의 문제(《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가 베르그손의 작품을 가로지르며 각 저작에서 해답의 요소들을 발견한다.
이를 위해 리키에는 《의식의 직접소여에 관한 시론》(1889)부터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에 이르기까지 베르그손을 이끌었던 경로의 연속성을 뒤따랐다.
이는 대부분 형이상학의 체계를 구축하지 않고도 작동했고, 하나의 작품을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저자는 연구 과정에서 베르그손만의 철학적 건축술을 발견했을 때, 그 아름다운 총체성에 경탄했다고 전한다.
철학적 토대를 차근히 제공한 앞선 저작들을 결국 마지막 저작이 포괄하는 구조이다.
새로운 저작들은 이전 저작들의 결과를 재해석함으로써 더 큰 틀을 도출한다.
이러한 의도적인 재배열은 베르그손 저작 전체에 새로운 논리와 사유 구조를 보여준다.
“우리는 방법(方法)에서 출발해야 한다”
직관만이 자아의 생생한 본질을 꿰뚫는다는 ‘직관적 방법’은 베르그손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베르그손은 직관적 방법을 통해 형이상학 자체를 개혁하려 했다.
그리고 형이상학의 지위를 충분히 변양시켜 학설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베르그손에게 방법이란 과학적 지성을 통해 허약한 직관을 정교화하고, 경직된 지성을 예술적 직관의 깊이로 데려가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었다.
방법은 베르그손의 저작뿐 아니라 이 책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이다.
저자는 베르그손에 대한 ‘몰이해’가 그의 방법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책의 1부에서 질 들뢰즈의 해석을 갱신하여 베르그손적 방법을 복원하는 데 전념하고, 2부에서는 베르그손적 방법이 형이상학을 재검토하고 있음을 알린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베르그손의 방법을 그의 작품 전체와 용해시켜 설명한다.
이를 통해 리키에는 베르그손과 함께 ‘순수지속’의 심원한 층들에 파고든다.
생명체의 의식은 연속이며 흐르는 운동으로서 생성이자 지속이기 때문이다.
베르그손의 방법은 이처럼 지속을 물리적인 시간적 원리에 두지 않고 자아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 둔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경험 일반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시간으로 사유한다.
‘자아의 심화’, 그 사유를 통해 순수지속에 가닿을 수 있다.
베르그손의 방법은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방법과 경험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길을 펼쳐 보인다.
베르그손은 더 이상 고립된 인물이 아니다. 베르그손의 주요 저작과 함께 강의록 등이 번역·출간되고 베르그손이 시도했던 방법과 형이상학을 갱신하고자 했던 시도를 《베르그손 고고학》을 통해 총체적인 이해에 다가갈 수 있다.
만물을 하나의 단일한 원리로 환원시키라는 체계의 광적인 요구는 우리를 실재의 의미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그간 무시되어 온, 혹은 그 엄밀성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주변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엄밀한 철학들을 재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체계의 정신에 반한다는 이유로 외면당했고, 때때로 천재적인 사유들을 남겼음에 도 흩어져 완성되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지닌 철학 전통이 존재하지 않는가? […]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이 책은 베르그손이 정교화하고 그의 학설 속에서 사용했던 방법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킴으로써 이러한 물음들에 새롭게 답할 수 있게 해준다. 베르그손에 대한 수용의 폭은 사람들이 말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다. 그것은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바라도 된다면, 그것의 후속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차례
서문—작품의 통일성을 향하여
한국어판 서문—베르그손적 방법, 혹은 작품을 향한 길
1부 방법의 시간: 방법과 형이상학
1장 정초냐 용해냐: 형이상학의 바탕
데카르트의 암석과 베르그손의 대양
1. 땅, 지성의 이미지: 고체화, 고체성, 고체, 지반
2. 물의 원소와 그 이미지들—은유를 넘어서
3. 깊이의 관념: 주체와 대상, 자아와 전체에 대한 고찰들
제일철학 없는 형이상학을 위하여
4. 이름 없는 절대
5. 체계의 정신, 즉 형이상학의 존재-신-학적 구조
6. 지속의 층과 심화를 통한 형이상학적 사유
2장 직관과 방법
빛에서 어둠으로—그리고 어둠에서 빛으로
7. 개념과 언어: 촉각의 우위와 은유
8. “보기, 그러나 믿지 않기”: 직관과 방법
9. 진리의 성장과 교차의 방법: 베르그손과 제임스
베르그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철학의 침습: 철학에 문제를 제기하는 법
11. 실재의 원뿔: 지속의 상이한 리듬들
3장. 새로운 연합: 과학들의 분산을 마주한 철학
12.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마치”: 형이상학 없는 과학
13. 형이상학사의 중심적 인물, 플로티노스
14. 철학에서 정확성과 그 용도의 발명
2부 형이상학의 시간: 시간과 인격
서문-베르그손의 데카르트주의
4장. 《의식의 직접소여에 관한 시론》과 현재의 우위
15. ‘스펜서주의자’ 베르그손과 《시론》의 출발점: 수학에서 심리학으로
16. 세 가지 시간의 발견: 공간, 시간, 지속
17. 자유의 시간과 현재의 우위
5장. 《물질과 기억》과 과거의 우위
18. 《물질과 기억》으로 가는 길: 심신 결합의 문제
19. 이미지화될 수 없는 《물질과 기억》!
20. 지각의 시간과 과거의 우위
6장. 《창조적 진화》와 미래의 우위
21. 《창조적 진화》로 가는 길: 인과의 문제
22. 인과와 창조: 생의 약동
7장.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과 영원의 우위
23. 《두 원천》으로 가는 길: 의지의 문제
24. 신비를 전파하기 위해 어떤 매개체를 선택할 것인가?: 하나의 혼합물에서 다른 혼합물로
결론. 인격의 모든 상태
역자 후기—방법과 형이상학
베르그손의 철학은 추상적 원리의 통일성에 갇히지 않고 자아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 잠긴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그손의 작품이 지닌 통일성을 드러내는 일은 베르그손의 해석자들이 짊어질 십자가였다. 이 통일성을 도출하려는 시도들은 드물다. 통일성을 고찰하면서—베르그손이 끊임없이 반대했던—체계의 정신에 다시 빠지지 않는 시도는 더더욱 드물다. 따라서 여기서 제기되는 독해는 이미 충분히 새로운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매 장마다 새로운 점을 강조할 필요를, 들뢰즈의 독해까지 포함하여 이전에 제시되었던 다른 독해들로부터 우리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18-19쪽
만물을 하나의 단일한 원리로 환원시키라는 체계의 광적인 요구는 우리를 실재의 의미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그간 무시되어 온, 혹은 그 엄밀성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주변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엄밀한 철학들을 재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체계의 정신에 반한다는 이유로 외면당했고, 때때로 천재적인 사유들을 남겼음에 도 흩어져 완성되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지닌 철학 전통이 존재하지 않는가? […]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이 책은 베르그손이 정교화하고 그의 학설 속에서 사용했던 방법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킴으로써 이러한 물음들에 새롭게 답할 수 있게 해준다. 베르그손에 대한 수용의 폭은 사람들이 말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다. 그것은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바라도 된다면, 그것의 후속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28쪽
베르그손은 땅의 원소를 통해 철학자와 과학자의 정신이 기대고 있는 매개적 이미지를 식별한다. 이 이미지는 거기서 솟아나는 개념들이나 방정식으로 직조되는 관계들의 그늘에 감춰져 있을수록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실재를 “추론만을 자원 삼아 사유를 통해 엄밀히 재구성할 수 있는 거대한 건축물”처럼 이미지화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베르그손은 철학자와 과학자의 공동 작업을 “사막의 모래를 삽으로 퍼내 이집트 유적”을 파내는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과학적 설명을 떠받치고 있는 무의식적 이미지를 재활성화한다.
43쪽
베르그손은 날것의 물질과 고체적 물질을 구분한다. 이 구분은 섬세할 뿐 아니라 결정적이다. 베르그손이 사용하는 이미지화된 언어들은 대부분 이 두 물질의 간격에서 길어낸 것이다. 베르그손은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학에서 우주를 구성하던 네 가지 원소들 가운데 물, 공기, 불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새로운 형이상학이 자리 잡을 변동적 실재를 암시한다. 개념들은 땅이 나타내는 뚜렷한 고체성을 본떠 제작된다. 땅의 정적인 성격에 물, 공기, 불의 이미지가 갖는 역동적 성격을 대립시켜야 할 것이다.
46쪽
철학은 전체 속으로 용해되기 위한 노력이다. 전체는 우리가 기울여야 하는 이 노력 속에 있다. 이 노력만이 우리가 지성을 초월하여 향해 가는 전체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우리는 이 노력 속에서 지성을 상실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성은 지성을 넘어서는 노력을 통해 의지 속에 응축된다. 따라서 지성은 우리의 나머지 능력들처럼 생으로 다시 흡수되고, 이 생이 우리를 존재하도록, 전체를 이해하도록 해준다. 따라서 내부성은 주체성이 아니다. 내부성 속에서 자기 자신은 다시 한번 총체성 속으로 감겨들고, 이를 막고 있던 우리 인식의 ‘지반’은 지워지고 사라진다.
82쪽
베르그손적인 형이상학은 우월성을 포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는 앞서 모든 형이상학이 갈망했던 전체에 다른 방식으로 도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베르그손에게 형이상학은 ‘총괄적 경험’을 자처한다.
119쪽
베르그손 철학의 출발점은 원리가 아니라 실존이다. 실존은 이성으로의 정초를 위해서도, 심지어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성을 위해서도 유보될 수 없다. “우리가 가장 확신하고 가장 잘 알고 있는 실존은 이론의 여지없이 우리 자신의 실존이다.”
141쪽
우리의 시선이 지속을 향할 경우, 지속은 무수한 상태로 파편화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은 베르그손의 어떤 저작에서도 온전히 주제화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간은 베르그손의 모든 저작에서, 시간이 해소해 줄 문제들로부터 되돌아온 빛을 통해 점차적으로, 비스듬히 드러난다. 시간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의 연속성 속에 잠겨 심화를 통해 지속의 서로 다른 차원들(현재, 과거, 미래)을 굴절시킬 때에만, 그리하여 매 저작마다 더 강렬하고 긴장된 리듬 속으로 파고들 때에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245-246쪽
베르그손은 “철학자들의 맞은편에” 대립하여 서지 않는다. 베르그손은 과학자들의 맞은편에 선다. 베르그손의 저작에 달린 주석들을 살펴보기만 해도 이를 알아챌 수 있다. 몇몇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베르그손의 주석이 참조하는 것은 대개 과학 저작이고, 철학자들을 인용할 때조차 그들을 과학자로 다룬다.
262쪽
베르그손이 선택한 방향은 경험 속에서 따라야 할 실마리를 만들었고, 이와 동일한 이유에서 베르그손이 점진적으로 마주치는 문제들도 단지 하나의 동일한 문제에 속하여, 이 문제의 한 계기를 나타내고, 하나의 표지를 구성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인격의 문제다. 이제 관건은 이 다수의 문제를 통일하고 각 저작을 다른 저작으로 연결하여 더 큰 틀 속으로 통합되고 맞물리도록 하는 실마리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미래성의 방향 자체로” 전 저작의 운동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저작을 독해하고, 또 사람들이 행간을 읽는 법을 배우듯 저작 사이를 읽어냄으로써, 저작들 사이에 놓여 있는 이행들, 때로는 너무 길어서 이행이라는 사실조차 잊히고는 했던 이행들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343쪽
베르그손의 형이상학을 과학의 반대편에, 직관을 지성의 반대편에 놓으려는 사람들에 반하여, 리키에는 베르그손의 형이상학이 왜 과학과 긴밀하게 협업해야 하는지, 왜 베르그손의 직관이 지성을 단순히 배제하지 않는지를 해명한다. 지속의 직관은 과학에 반하여, 지성에 반하여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이 정밀하게 포착하는 사실들 속에서 이 사실들이 정교하게 놓쳐버리는 여백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철학자의 과업은 과학이 내버려 두는 이 여백을 주제화하기 위해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의 선을 교차시키고 중첩시키는 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르그손은 직관과 지성, 형이상학과 과학의 단순한 이항 대립을 넘어선다. 베르그손에게 철학의 방법이란 과학적 지성을통해 허약한 직관을 정교화하고, 경직된 지성을 예술적 직관의 깊이로 데려가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다.
6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