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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프랑시스 퐁주 - 사물의 편

취급주의민트초코절임
24.12.24
·
조회 348

‘사물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대표작
비, 양초, 오렌지, 빵, 달팽이…
가장 일상적인 사물들에 바치는 비망록

 

사물의 바깥이나 정신으로 이끌지 않고 나아가는 시, 그 활자 덤불 속에서 어떤 열매들은 잉크 가득 찬 구체 형태로 응집된다.

23쪽, <오디> 중에서

 

사전을 들추며 시를 쓰는 작가

 

나는 사람과 사물들 곁에 누웠다. 손에는 펜을, 무릎에는 책상(하얀 종이)을 놓고서

프랑시스 퐁주

 

1899년 출생한 프랑스 작가 프랑시스 퐁주. 

그는 주로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짧은 글로서 담아낸 ‘사물의 시인’으로 유명하다. 

퐁주가 1921년 등단한 후 20여 년간 써온 작품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사물의 편》(1942)은 프랑시스 퐁주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대표작이다. 

이 한 권의 시집은 이후 그의 모든 작품의 토대가 되었고, 퐁주는 평생 사물에 관한 글을 썼다. 

읻다 시인선의 일곱 번째 책으로 그동안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사물의 편》을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말레르브,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에게 영향을 받은 프랑시스 퐁주는 언제나 사전을 옆에 끼고 글을 썼다고 전해진다. 

지극히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과학적 지식과 사색을 기반으로 사전을 참고 하며 글을 썼던, 그 결과 기존의 틀을 깨뜨리고 장르와 문법을 넘어선 독창적인 텍스트를 선보였던 퐁주의 글쓰기 방식은 기존의 관념적, 서정적 문학과 완전히 달랐고 당시 유행하던 초현실주의와도, 실존주의와도 확연히 구별된다. 

그가 개척한 사물주의 시학은 ‘있는 그대로’의 문학을 선도했던 1960년대 《텔켈Tel quel》그룹의 활동에 초석을 마련하였으며 프랑시스 퐁주는 주요 프랑스 현대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의 문체는 단면적이고 분명한 언어로 자신을 표출하기보다는, 되레 평범하다 못해 몰개성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표면 아래 여러 겹의 놀라움으로 버젓이 자리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물의 편》에는 오렌지나 달팽이, 빵, 조약돌과 같은 흔하디흔한 일상적 사물을 소재로 한 산문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시들은 하나의 사물을 오랜 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관찰한 결과가 겹겹이 쌓여 탄생한 것이다. 

시인은 앞에 놓인 사물을 오랜 시간을 들여 난생처음 바라보는 양 세심하게 관찰하고 또 관찰한 후, 솔직하고 ‘평범한’ 언어로 묘사한다. 

전형적인 관용적 표현과 다르게 퐁주의 시에서 꽃은 “덜 씻긴 찻잔”으로, 나비는 “쓸데없이 덧핀 꽃바람에 가혹하게 휘날리는 소형 돛단배”로 재탄생한다. 

고정관념에 뒤덮이지 않은 새로운 묘사를 통해 독자는 일상적인 사물의 아름다움을 재인식할 수 있다.

 

모든 암석은 거대한 동일 조상의 분열 증식에서 나왔다. 그 가공할 몸뚱어리에 대해서는, 경계를 넘어서면 결코 성치 못하리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단말마의 끈적한 덩어리가 들끓는 가운데 형체가 없이 흐물거리기만 할 뿐인 그곳에 이성이 다다른다. 이성은 이 세계만큼이나 커다란 영웅의 세례를 위해 깨어나, 임종의 침상이 될 끔찍한 반죽통을 하나 발견한다.

183쪽, <조약돌> 중에서

 

나아가 시인은 한 조각의 빵에서 안데스산맥을 발견하고, 하나의 자그마한 조약돌에서 우주의 생성을 짚어낸다. 

그의 작업은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사물의 편’에서 사물의 본래 모습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각각의 사물에 맞추어 쓰인 존재론과도 같다. 

사물을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고정관념은 허물어지고 인간과 사물,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 우리는 매일 대수롭지 않게 보고 지나치던 사물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차례



가을의 끝
불쌍한 어부들
고사리 럼주
오디
과일상자
양초
담배
오렌지

문의 즐거움
나무들이 둥근 안개 속에서 해체된다


계절의 순환
연체동물
달팽이

나비
이끼
해안가

고깃덩어리
체조 선수
젊은 엄마
R. C. Seine n°
쇼세 당탱 거리, 르므뉘에 식당
조개껍질 비망록
상점 셋
동물과 식물
새우
식물
조약돌

옮긴이의 말 |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나무들을 에워싼 안개, 잎이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팔월 무더위의 집착이 줄어든 이래 나뭇잎은 진즉 더딘 산화작용에 당황하고, 꽃과 열매에 필요한 수액이 빠져나가 손상된 상태. 나무껍질에 수직으로 팬 골을 따라 습기가 바닥으로 흘러내려, 줄기의 살아 있는 부분에는 관심이 미치지 않는다. 꽃잎이 흩어지고 열매가 떨어져 나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살아 있는 뭇 특성과 제 몸뚱어리 일부에 대한 포기가 나무들에게는 익숙한 훈련이었던 것이다.

47쪽, <나무들이 둥근 안개 속에서 해체된다>


단번에 그토록 땅에 붙고 그토록 뭉클하면서도 그토록 느리고, 그토록 점진적이면서도 그토록 땅을 벗어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나 죽고 대홍수가 찾아들든 무슨 상관이랴, 한 번의 발길질에도 어디로든 굴러갈 수 있는 나이건만. 분명컨대 나는 다시 바로 서고 다시 땅에 붙으니, 운명에 의해 내가 쫓겨나서 먹이를 찾을 그곳 — 대지다, 가장 보편적 양식이다.

67쪽, <달팽이>


바다는 한계 직전까지 거듭해서 굽이치는 단순한 사물이다. 하지만 자연의 가장 단순한 사물들이란 끝에 가서는 언제나 갖가지 형태를 내보이고 갖가지 수작을 부리기 마련이며, 가장 두터운 사물들은 결코 어떤 식으로든 감퇴를 겪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을 숨 막히게 만드는 광막함에 앙심을 품고, 그 거대한 것의 가장자리나 교차점으로 돌진하여 그것을 정의 내리려 한다. 왜냐하면 이성은 획일성의 품 안에서 위험스레 요동치며 희박해지므로, 개념이 결핍된 정신의 경우 외관이라도 우선 갖추어야 하기에.

85쪽, <해안가>


조개껍질이 작긴 하지만, 그것을 원래 발견했던 모래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런 가늠을 넘어설 수가 있다.

131쪽, 〈조개껍질 비망록〉
동물은 살아 움직이고 식물은 눈앞에 펼쳐진다.

일종의 생물체라는 것은 죄다 직접 땅을 딛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연차에 따라 외관을 장식한다.

149쪽, 〈동물과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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