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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천현우 - 쇳밥일지

취급주의민트초코절임
24.12.15
·
조회 272

지방, 청년, 그리고 용접 노동자. 

여태껏 우리가 아는 척해왔거나 모르는 척해온 세계로부터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작가가 도착했다. 

정상 사회의 바깥, 차라리 무법지대에 가까운 인간소외의 장,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믿어지지 않는 노동의 현장에서 탄생한 작가 천현우. 

그는 우리 사회의 사각에서, 사양하는 산업과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주간경향』에 ‘쇳밥일지’와 ‘쇳밥이웃’을 연재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첫 책 『쇳밥일지』는 연재분에 전사를 더하고 이를 전면 개고하여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2022년 봄까지를 담아낸 『쇳밥일지』는 한 개인의 내밀한 역사가 시대와 세대의 상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아니 에르노를 떠오르게 하고, 노동자 계급에 관한 생생한 밀착 일지라는 점에서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그 궤를 같이한다. 

양승훈 교수의 추천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지방 제조업 도시의 ‘너무한’ 사연을 담은 문화 기술지이자, 부당함과 우여곡절 속에서 ‘쇳밥’을 먹으며 성장한 청년 용접 노동자의 ‘일지’”이다. 

세대론을 논할 때조차 소외되는 ‘4년제 대학 출신-수도권 거주자’가 아닌 한 용접공의 “생각보다는 힘들되 꾸역꾸역 생존은 가능한 나날”을, “고와 낙이 있었고, 땀과 눈물이 있었으며, 희망과 좌절이 공존했고, 꿈이 짓이겨졌다가 다시금 피어”(「프롤로그」에서) 나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담았다.

 

목차


프롤로그 | 회색 미래 _007

1부
갑자기 어른 _013
첫 직장과 첫사랑 _032
산재를 당하다 _050
산업 기능 요원 _067
시련과 마주할 시간 _084

2부
포터 아저씨 _107
용접을 배우다 _123
공장 굴뚝에도 사랑꽃은 피는가 _150
대통령도 바뀌고, 직장도 바뀌고 _170
수도사처럼 지낸 타지생활 _186
일기를 다시 쓴 계기 _203

3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_219
지방 청년들의 이야기 _233
다시 만난 사람들 _247
청색에서 백색으로 _261
쇳물과 먹물 _274

에필로그 | 고향을 떠나며 _285

 

교복을 벗는 순간만 고대했다. 구닥다리 청춘 예찬 늘어놓는 꼰대들이 싫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배배 꼬인 생각은 청춘으로서 누린 혜택이 없기에 나온 억하심정이었다. 계속 집을 옮겨다니는 동안 제대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왜소한 몸집과 입에 밴 서울 말씨 때문에 학교 폭력을 당하기 일쑤였으며, 가난 때문에 소풍이며 수학여행도 제대로 못 가 사진조차 거의 남기지 못했다. 게임에 빠진 이유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모니터 속의 세계에선 가난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다. 타인에게 거절당해도 상처가 남지 않았고, 혐오하는 이와 적대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_19쪽

 

학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면 거짓말. 수능도 안 봤지만 대학 순위표는 머릿속에 줄곧 각인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명문대란 만병통치약 같아서 어딜 가나 약발이 들었다. 당장 효성만 해도 현장 쇳밥 수십 년 먹어온 기술자가 명문대 학식 몇 년 먹은 관리자 눈치를 살폈다. (…) 이제껏 봐온 세상이 그 꼴이었지만, 학벌의 그림자가 우리 사이에까진 드리우지 않길 바랐다. 대체 그놈의 학벌이 뭐라고 사람들을 줄 세우고 급을 나누게 만드는 걸까? 앞으로도 이렇게 전문대 나왔다고 무시당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가슴에 시퍼런 멍이 진 느낌이었다. _92쪽

 

저 너머에서 노동하는 모든 사람. 그들 모두가 그저 살고 싶기에 살아가는 걸까. 죽음에 자꾸 이끌리는 마음을 책임감의 갈고리로 삶까지 끌어당기는 건 아닐까. 내 육신의 죽음만으론 나에게 닥친 불행들까지 죽일 수 없다. 불행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옮겨가겠지. 그럴 바에 살아남아 불행과 싸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_100~101쪽

 

“빠꾸해, 빠꾸! 빵꾸 안으로 밀어넣어! 쫄지 마! 빵꾸! 빠꾸! 빵꾸! 빠꾸! 그렇지!” _132쪽

 

와중에 키가 유달리 컸던 한 형님은 그 긴 구간 용접을 끊지도 않고 단번에 때우곤 했다. 결과물은 잘 나오지만 허리와 팔꿈치가 남아나질 않는 방식이었다. 왜 그리 힘겹게 용접하시느냐 물으니, 형님은 머쓱하게 웃어 보이고선 “이래 때아놓으면 멋지다 아이가!”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목소리엔 용접사의 자부심과 멋스러움, 흡사 조각사나 화가 같은 예술인의 긍지가 느껴졌다. _230쪽

 

일터에서 푼돈에 매몰당한 청춘이 타인에겐 낭만과 자기 성찰의 시기였다. 비교는 일상에서부터 치고 들어왔다. 특히 야간에 잔업 마치고 퇴근길이 고비.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 전공 책 안고 시시덕대는 동갑내기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학생이 아니면 스무 살의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과 만나도 대화가 어긋나는 걸 느낀다. 여가가 거의 없는 삶이라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_240쪽

 

우리가 공장 바닥 전전하며 보낸 이십대는 그저 통장에 찍힌 얄팍한 숫자 따위가 대표할 수 없다. 사회에서 ‘못 배운 놈년들’로 통칭당하며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는, 자존감을 찌그러뜨리려는 온갖 압력에 저항한 결과, 삶의 형태에 고하 따윈 없다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_246쪽

 

“내가 잘할 수 있겠으예?”
“하모, 당연하지!” _284쪽

 

그래, 이제 과거 같은 번영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나의 친구들, 고마운 어른들과 치열하게 살아가는 후배들이 있다. _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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