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권혜림 외 -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전 · 현직 간호사 13명(권혜림 , 권성희 , 문성미 , 김지연 , 신민정 , 김금슬 , 장영은 , 장정길 , 최화숙 , 권명순 , 김경남 , 전선영 , 김영미)이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화자찬이나 자기 비하 없이 스스로가 느끼는 현실의 일, 생활, 애환, 고충, 보람, 등을 생동감 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개인 병원, 중소 병원, 종합 병원의 간호사는 중환자실, 수술실, 응급실, 일반 병동, 정신 병동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낮밤이 바뀌는 3교대 근무는 얼마나 힘든지, 간호사를 함부로 대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최우선으로 해소해 달라는 환자와 분명히 동료 의료인인 간호사를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의사에 대한 애증과 서운함, 등을 말하고 있는 이 책은 3년제 간호대학과 4년제 간호대학이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겪는 간호사들끼리의 사소한 갈등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
또한 남자 간호사, 호스피스 간호사, 미국 간호사, 언더라이터, 의료 소송 매니저, 항공 전문 간호사, 보건 교사, 등 새롭거나 낯선 영역, 앞으로 개척해야 할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환자에게 필요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환자의 고통을 세심하게 어루만지기 위해 노력하는 간호사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과 대학생, 그리고 진로지도에 고심하는 학부모와 교사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목차
1장. 새내기 간호사의 좌충우돌 수련 일기
01. 신규 수련기 - '죄송'은 입에 달고 '눈물'은 눈에 달고 / 권혜림
2장. 간호사 24시
01. 수술실 간호사 - '피'를 보며 일하는 독한 사람들 / 권성희
02. 인공신장실 간호사 - 가족보다 자주 보고 이웃보다 살가운 / 문성미
03. 응급실 간호사 - 생로병사의 정점, 그 한가운데를 달리며 / 김지연
04. 병동 간호사 - 격무와 편견을 이기고 '환자'만 보일 때까지 / 신민정
05. 정신과 간호사 - 마음을 나누는 누이이자 친구로 / 김금슬
06. 개인 병원 간호사 - 작은 병원에서 큰 간호사 되기 / 장영은
07. 남자 간호사 - '남자' 간호사가 아니라 그냥 '간호사'다! / 장정길
08. 호스피스 간호사 -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최상의 대안 / 최화숙
3장. 더 넓은 간호사의 세계
01. 미국 간호사 - 세상은 넓고 우리를 부르는 곳도 많다 / 김지연
02. 언더라이터 - 벌레 먹은 사과, 어디까지 도려낼까? / 권명순
03. 의료 소송 매니저 - 약자를 위해 싸우는 백의의 투사 / 김경남
04. 항공 전문 간호사 -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기쁨 / 전선영
05. 보건 교사 - '교육과 건강' 두 마리 토끼 잡기 / 김명미
4장. 간호사 정보 업그레이드
01. 간호사와 환자, 그 애증의 관계 -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 / 문성미
02. 간호사에 대한 궁금증 20문 20답 - 간호사, 아는 만큼 보인다! / 문성미
부록 1. 간호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영화와 만화 / 임현주
부록 2. 전국 간호대학 일람표
응급실에 배치된 간호사가 ‘신규 티를 좀 벗었다’ 싶게 보이려면 아무리 짧아도 6개월 정도는 필요하다. 어느 병동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응급실에서 신규(신규 간호사의 준말)는 ‘무서운 흉기’ 다루듯 한다. 즉 신규 간호사는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에 올드(old) 간호사는 항시 눈을 위로 치켜뜨고 신규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쌩’[生] 신규는 정식 근무 전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고마운 시간을 갖게 된다. 약 한 달 정도의 이 기간 동안 자신을 가르쳐 주는 프리셉터 간호사의 모든 간호를 외우다시피 눈에 익혀야 한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환자들을 중증도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눠 담당 간호사를 정한다. 보통 신규 간호사는 증상이 가벼운 환자가 속한 관찰 팀을 담당하게 되며, 신규 간호사 1명이 맡는 환자는 적게는 15명 많게는 22~23명 정도이다. 치료와 간호가 많고 주의 깊게 봐야 할 환자들은 준중환 팀에 분류된다. 준중환 팀에는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진, 신규 티는 벗은 간호사들이 배치된다. 중환자실 간호에 준해서 돌봐야 할 환자들은 중환 팀에 배정된다. 보통 중환 팀에 속하는 환자는 3~4명 정도인데, 언제 초응급 상태로 빠져 버릴지 알 수 없으므로 응급실 업무에 능숙한, 적어도 응급실 근무 경력 1~2년 이상의 간호사들이 담당하게 된다. 기본적인 배치는 이렇게 이루어지지만 그날의 상황에 따라 간호사의 팀 배정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즉 신규 간호사도 준중환 팀을, 올드 간호사가 관찰 팀을 맡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간호사의 숙련도와는 상관없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 순서대로 담당 간호사를 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신규 간호사에게 ‘중환’(중증의 응급 환자를 일컫는 말)이라도 떨어지면 그야말로 그것은 살 떨리는 ‘대박’인 것이다. 참고로, 응급실에서는 흔히 ‘대박 환자’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여기서 ‘대박’은 복권 당첨, 횡재와 같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 중한 환자여서 목숨이 경각에 있고, 따라서 할 일도 많은 환자를 가리킨다. 하지만 지금은 간호사 숙련도에 따라 환자를 배치하니, 신규 간호사에게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물론 환자에게도.
신규 간호사들이 가장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을 담당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환자의 증세는 늘 그 자리에 착하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감기 같다며 응급실을 찾아와 의료진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아저씨가 밤새 열이 40도를 육박하며 의식이 왔다 갔다 하더니 급기야 패혈증에 빠져 버린다. 자신이 담당했던 스물댓 명 중 한 명이었던 그 환자, 바로 그 사람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신규 간호사는 그야말로 의자에 앉을 새도 없이 내달리며 밤을 하얗게 보낸다. 그런 날은 오버 타임(시간 외 근무) 한두 시간은 물론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은 다른 환자들까지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라 업무 인수인계를 할 때 인계 받을 동료 간호사의 ‘한 눈치’도 견뎌야 한다.
위에서 얘기한 그 상황이 내가 응급실에서 정식으로 근무한 지 일주일 만에 생긴 일이었다. 다른 간호사는 아침 8시 전에 마치는 나이트 근무를 나는 충혈된 눈으로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마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차려 준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 눈물을 쏟았다.
(p48~50. 응급실 간호사 - 생로병사의 정점, 그 한가운데를 달리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