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히라노 게이치로 - 일식

16세기 초반, 초로의 성직자가 젊은 수도사 시절(1482)에 겪은 비밀스러운 기적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16세기 초반은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전통의 기독교에 있어서, 육과 영이라든가, 신과 세계라든가가 서로를 향해 무한히 접근했던, 20세기 이전에 단 한 번 있었던 예외의 시기였다.
이후 기독교는 플라톤주의를 수용하고 종교개혁을 겪으면서, 다시 신과 세계를 나누고, 육에 대한 영의 우위 확립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그 갈라지기 직전의 긴장된 시기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리하여 『일식』에는, 초기 스콜라 철학이 변질되어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은 점점 밀려나고, 새로이 플라톤주의가 득세하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까지 중세유럽의 사상적 흐름이 고스란히 복원되고 있다.
젊은 수도사인 주인공은 여전히 토마스 이론을 신봉하며 새로운 흐름을 경멸하는, 이른바 시대와 야합하지 않는 인물이다.
여기에 이단의 종교 철학들, 마니교와 이슬람교, 연금술과 같은 비주류 사상이 얽혀든다.
대개 한 시대의 사상적 흐름이란 간단히 몇 줄기로 분할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다양한 본류와 지류들이 교차하며, 그 가운데 각각의 진실과 허위를 공히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도미니코 회 수도사인 주인공은 주류이자 정통 기독교 사상의 범주 안에 존재하면서도 늘 자신이 속한 사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과 육으로 구분된 이원론으로는 궁극적 초월성을 만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단 철학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진실과 접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젊은 수도사는 한 연금술사와 조우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