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요시야 노부코 - 물망초

근대 자본주의에서 군국주의로 접어드는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사춘기 소녀들만의 특별한 연대감을 서정적으로 그려 낸 이 작품은 소녀 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 요시야 노부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고등여학교라는 작고 유쾌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소녀들 간의 로맨틱한 관계, 우정, 질투와 번민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당시 여성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사회적 편견 또한 가감 없이 보여 주어 일종의 사회 소설적인 측면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 마키코는 동급생인 요코, 가즈에와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클레오파트라’라고 불리며 학교에서 여왕으로 군림하는 요코는 마키코에게는 꿈의 세계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반면 로봇이라 불리며 규칙에 순응하고 가정에 충실한 가즈에는 마키코가 마주하는 현실 세계를 대표한다.
따라서 이들이 겪는 삼각관계는 단순한 연애의 한 형태가 아닌, 꿈과 현실이 부딪치며 생기는 갈등과 마찰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자아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성장통을 세 소녀 사이의 관계 변화를 통해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
마키코와 요코, 가즈에는 서로 다른 세 유형의 동급생이면서도 하나의 공동체고 셋은 하나의 소녀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 밀어붙이며 살아가는 것만이 진리는 아니었음을 깨달으며 스스로 자의식을 찾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 냈다.
목차
서문
프롤로그
학급 분류
세 유형
어느 날 그녀들
마키코의 집
요코의 집
블랙 탱고
가즈에의 집
선물
아버지와 아이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선물 교환
가즈에의 생각
여름 계획
수영 합숙
범칙자
벌칙 당번
비 오는 날
전화 목소리
거칠어지는 마음
마약
금단의 열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이
집의 등불
주
해설―여자아이들의 세계가 온다
판본 소개
요시야 노부코 연보
첫문장
여러분,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건 물건 살 때를 위해 예를 들면 잔돈을 받을 때 속지 않고 틀리지 않고 이런저런 대금을 받을 때도 덜 받지 않기 위해
P.40
어둑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흑장미를 닮은 마키코를 가만히 바라보던 요코는 작은 면 레이스 손수건을 꺼내 마키코의 뺨 부근을 닦아 주었다.
“미안해, 아까부터 내 맘대로 끌고 다녀서. 약간 땀이 났지?”
그때-, 마키코는 상냥하게 땀을 닦아 주는 요코의 손수건에서 풍기는 짙은 향수 냄새를 느꼈다.
“물망초 향수야, 마음에 드니? 이 향기…….”
마키코는 말이 없었다. 이럴 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평소에 연습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네가 이 냄새를 좋아한다면, 나는 언제든 이 향수만 쓸 거야.”
P.79
요코가 제멋대로 잉크스탠드를 바꿔치기해 간 바람에 멋진 캔디 상자가 자신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가즈에는, 마키코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때마침 마키코를 맞닥뜨려 심장 박동이 매우 빨라져 있었다. 청순하고 성실한 자세로 단순하게 살던 가즈에였기에, 이런 미묘한 우정 문제에도 금세 진지해져서 고민을 하거나 외곬으로 생각하곤 했다.접기
P.144
그런--, 여학생 신분에 크게 벗어난 행동을 대담하게 하는 요코가 마키코에게는 아름답게 비쳤다. 요코는 자기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세상 경험도 많아서 일본이 아닌 어딘가의, 예를 들면 바그다드의 여왕처럼, 인도의 왕자가 바친 세상 어느 곳이나 꿰뚫어 볼 수 있는 수정 구슬이나,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금사과나, 급할 때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아 도망칠 수 있는 양탄자나, 그런 멋진 보물을 지닌 대단히 신비로운 왕녀처럼 보였다. 요코??. 마키코의 눈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통력을 가진 여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