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정재민이 설명하는 미필적 고의.txt
오늘 침투부 출연하셔서 생활법률 특강을 해주시는 정재민 님이 본인이신지 동명이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호사 정재민 님이 나오신다 하여, 예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정재민 변호사 님(전 판사, 법무부 법무심의관)께서 설명하는 법 개념 ‘미필적 고의’ 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출처: 혼밥 판사, p.128~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행동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예컨대 누가 지나가다가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툭 쳐서 커피가 쏟아져 앉아 있던 사람의 옷을 버렸다고 하자. 이것을 고의로 했을까, 과실로 했을까. 대개 이런 경우 과실이라고 볼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평소 앙숙으로 지내던 사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어떤 행위를 고의로 했는지, 과실로 했는지 판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학자들은 고의와 과실의 차이를 분석하다가 그 사이의 스펙트럼에 몇가지 개념을 더 삽입해놓았다. 가령 '인식 있는 과실'과 '미필적 고의'가 그것이다.

인식 있는 과실은 어떤 행동을 할 경우 그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은 있지만 그러한 결과를 발생시키려는 의지는 없었던 경우다. 반면 미필적 고의는 그러한 의지까지도 있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미필적 고의라 함은 결과의 발생이 불확실한 경우, 즉 행위자에 있어서 그 결과발생에 대한 확실한 예견은 없으나 그 가능성은 인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음을 요한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고시공부를 할 때에는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구분하는 문제를 많이 풀었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실제로 적용해서 판결할 때에는 애매한 경우가 많다.

(사진 출처: 조선일보)
예를 들어 내가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천명했다. 진심이었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한다. 헬스장에도 등록하고 피티도 한다. 술 약속도 웬만하면 잡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날 피할 수 없는 직장 회식자리에서 마지못해 상사가 주는 술을 마셨다. 집에 들어와서 해장도 할 겸 야밤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판검사가 이렇게 따져 묻는다고 해보자.
"라면을 먹으면 살이 찌는 것은 상식이지요?"
"네."
"특히 밤에 먹으면 살이 더 찌겠지요?"
"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 라면을 먹었지요?
그럼 살을 빼기는커녕 일부러 더 찌려고 했던 것이죠?"
"네??? 그건 아닙니다. 저는 정말 살을 빼고 싶었다고요."
"누가 머리에 권총을 대고 라면을 억지로 떠먹였나요?"
"아니요."
"스스로 끓여서 후루룩 냠냠 맛있게 드셨지요?"
"네."
"먹으면서 참 기분 좋았지요?"
"네."
"밤에 라면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네."
"그럼 당신은 라면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살을 찌우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이죠. 당신이 살을 빼겠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고요."
사람 마음은 이렇게 모호한 것이다. 그럼에도 법의 세계에서는 그 마음을 두개로 갈라야 한다. 고의냐, 과실이냐 하고 말이다. 그래야 유죄냐, 무죄냐로 가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