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날카로운 말들 사이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도서 카테고리가 있길래,,
처음 게시글을 써봅니다,,
좋아하는 시집의 뒤표지 산문을 횐님들께 드립니다,, 이유는
제곧내
어떤 이는 말[言]을 부리고 어떤 이는 말과 놀고 어떤 이는 말을 지어 아프고 어떤 이는 말과 더불어 평화스럽다. 말은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고 말은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가곤 했다. 더운 말 차가운 말, 꿈과 불과 어둠과 전쟁의 말. 나는 나를 부리고 간 말들이 이를테면 2003년 가을 어느 날, 경찰이 되어 어린 딸아이와 늙은 어미를 먹이기 위해 검문소 앞에 줄을 서 있다 폭탄 테러를 당해서 죽은 한 이라크인을 위해 있었으면 했다. 말로 평화를 이루지 못한 좌절의 경험이 이 현대사에는 얼마든지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거대정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여, 말이 그대를 불러 평화하기를, 그리고 그 평화 앞에서 사람이라는 인종이 제 종(種)을 얼마든지 언제든지 살해할 수 있는 종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살기/살아남기’의 당위를 자연 앞에서 상실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비관적인 세계 전망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나지막한 희망, 그 희망을 그대에게 보낸다. 한 도시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한 세상을 그곳에서 살고, 그리고 사라진다는 혹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이 롱 뒤레의 인식이 비극적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적인 그리고 자연적인 비극이다. 그러므로 그 비극은 비극적이지 않다.
부기(附記): 어떤 의미에서는 뒤로 가는 실험을 하는 것이 앞으로 가는 실험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을 수도 있다.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허수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출처: https://moonji.com/book/5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