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스포일러)
-도입부의 흑백 시퀀스들 동안,기괴한 동물들로 가득하지만 잘 통제된 갓윈의 에덴 동산에서,벨라는 첫 창조물이고 자신의 짝을 유발한(아담의 갈비뼈를 떼어 하와를 창조했듯,벨라를 관찰하라는 명분으로 짝인 맥스가 들어오게 된다)다는 데서는 아담이지만 호기심으로 유혹에 넘어가고 나간 부분은 하와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왔을 때 "창녀가 돌아왔다"고 비꼬는 프림 부인의 말처럼 결국 끝에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고 그 길을 밟는다는 데서는 돌아온 탕자,아니 탕녀가 된다.
-금기를 규정하다가도 막상 떠나려 하자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부분,애초에 스스로를 '하느님'이라 부르는 데서 갓윈 박사는 신을 모티브로 했으나, 정작 인간을 신의 창조물에서 동물로 개념의 전환을 일으킨 다윈과 합성된 이름을 갖는다. 그는 벨라를 사랑하고 부성애가 앞서면서도,실험체로서 통제해야 한다는 과학자의 차가운 태도를 가졌다.인간과 동물은 뭐가 다르냐고 강의 장면에서 학생들에게 질문했는데,벨라와 키메라 동물 실험체들은 다 다름없다고 여긴다고 스스로를 속인다.하지만 역으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임이 틀림없음에도 온전히 이성적으로만 대하지 못하는 감성적인 면모가 공존한다.벨라에게 사랑을 느낀 것을 실패라 여기고 그 대용품 격인 실험체 펠리시티에게는 매몰차게만 대하고,결국 죽음의 순간에 딸임을 부정햇던 창조물과 무시하던 조수에게 온정을 느끼며 죽는다.
-판도라의 상자에 최후까지 희망만은 신들이 남겨주었듯,벨라의 옷 속에는 최후의 비상금이라는 희망이 있었다.하지만 이 희망을 어처구니 없이 소모하고,대신 육체와 정신,직업활동을 자신의 자유 의지대로 결정하기 시작하며 진정한 성장을 이룩한다.판도라의 상자마저 깨 버린다면 판도라는 무엇을 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갓윈 박사는 시체를 살려낸 데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지만,본인의 외양은 정작 '괴물'을 연상시킨다.그리고 그가 밝힌 아버지와의 이야기에서 아버지가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그를 상대로 실험을 자행했다고 말하며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면모가 공존하는,어쩌면 괴물이 새로운 창조주가 되었을 경우가 이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벨라의 여정은 석가모니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다.석가모니가 궁을 나가고 나서야 생로병사를 보고 충격을 받듯 벨라도 집과 던컨의 방을 나가고 나서야 세상의 추악한 모습들을 배운다.
-어휘 수준은 갓윈 박사의 영향으로 높은데 정작 개념이나 사회화가 덜 되어 그 어휘의 배치 수준은 이질적이고(특히 실증주의 부분)그런데 갈수록 말이 조리 있어지는 게 느껴지도록 벨라의 대사가 (그리고 번역이)잘 짜였다. 몇몇 부분,특히 세 가지 말만 하라는 던컨과의 대화 후 엿을 먹인 부분은 자신의 말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듣는 부분을 자신이 알고 이용해먹는 앙큼한 아이 같은 구석도 느껴진다.
-벨라의 머리가 갈수록 커 갈 때 사귄 두 친구인 마사는 인문학, 헨리는 현실주의를 상징한다.마사는 굉장히 점잖고 침착하게,벨라의 별나고 외설적인 언행마저 수용하는 데서 학문의 범주로 세상을 대할 때를 연상시킨다.헨리가 마사에게 무례하게 구는 장면이나 철학은 헛소리라는 대사는 성장 과정에서 현실의 냉혹함을 느끼자 정신적 가치를 무용지물로 여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하지만 벨라는 이상주의자이다.험한 탄생의 비화와 극한까지 치달은 상황에 비해 구김살 없이 자라고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성장했다.가난한 이들을 난생 처음 보자 슬픔과 동정을 느끼고,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꾸준히 깔려 있다.때문에 헨리에게 "당신은 현실의 냉혹함에 좌절한 어린아이다"라고 따뜻한 타이름을 주고,헨리의 좌절을 따라가지 않으며 여행을 계속한다.마치 청소년기에 속된 말로 "쿨찐"이 되었다가 더 많은 가치를 믿으며 나아가듯 말이다.
-아버지인 갓윈 박사의 집으로 돌아온 후,뇌의 관점에서는 사실 아버지이기도 한 본래의 남편의 집으로 또 돌아가도록 플롯이 배치된 부분도 인상적이다.아버지와 남편이 있는 결혼식장에 아버지이자 남편,그리고 다음 남편이 들어와 파토낸다.
벨라의 원래 몸의 주인이던 모친은 뇌의 주인인 태아를 괴물이라며 싫어했다.마치 나혜석 화백처럼 말이다.그런데 정작 모친의 몸과 태아의 뇌를 가진 벨라가 괴물이라 불린 부분도 역설적이다.
-식사 장면까지는 사실 벨라가 약자들과 연대하려던 그간의 모습과 달리 야만적이고 무례하며 지배적인 남편과 비슷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긴가민가함을 던져주다가(이 남편은 의외로 벨라의 정신적 상태에 그런 병사들을 많이 봤다며 비난하지 않음으로서 약간의 안도감을 주며 관객을 속인다),신체 결정권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엿들으며 왜 임신을 우울해했고 자살을 시도했는지 명명백백해진다.그리고 남편이자 아버지의 신체결정권을 자신과 동일한 수술을 통해 빼앗아 버림으로서,벨라의 동산에 무해한 존재로서 하나가 된다.
-왜곡된 어안렌즈를 쓰는데, 벨라가 낯선 존재를 만났거나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활용된다.어린 시절 어떤 존재나 개념을 처음으로 경험할 때의 이상한 기분을 체감하게 한다. 3인칭으로 벨라를 관찰하지만 정작 벨라의 시선을 보는 역설을 그린다는 느낌이지만,맥스가 갓윈 박사에게 벨라의 진실을 따질 때도 어안 렌즈이다.맥스가 벨라 같은 순수함을 갖고 눈높이를 맞추어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지속적인 이물감을 느끼게 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다.진실이 밝혀지고 벨라가 생존을 위해 두뇌를 풀 가동하는 남편의 저택 장면은 왜곡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인공미의 정점인 미술 또한 영화를 완성시킨다.실제 하늘이 아닌,완벽하게 그려진 하늘을 통해 유화 같은 미장셴을 연출한다.세트의 색감 또한 원색적이다.합성 키메라들 역시 반으로 뚝 잘린 합성 와중에 나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괴기하다. 특히 벨라가 첫 외출을 할 때 타고 간 가짜 말머리가 달린 마차가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발명의 로망도 채우는 소품이다.
-카메라 워크나 클로즈업 ,장면 전환도 다분히 고전적이다.특히 옷장에서 던컨을 만난 뒤 침대에 있는 벨라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디졸브가 굉장히 고전적이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부드럽고 흰 시트의 요철을 통해 벨라의 탄생기를 암시한다.부드러운 침구에서,천의 요철 정도만이 장애물인 유아적인 단계의 벨라를 느끼게 한다면 반면 엔딩 크레딧에서는 저택의 여러 아름답고 괴기한 모습,심지어 때 끼고 낡은 모습까지 담아내며 모든 경험이 성장의 원동력임을 깨닫게 한다.
-장소가 바뀌고 각 막이 전환될 때 묘사되는 벨라의 모습 역시 천진하다가 갈수록 성숙하게 변하고,영화 본편의 내용과 무관한 추상적인 시퀀스로 벨라의 정신적 성장을 표현한다.
-'가장 좋아하는(favorite)'이라는 대사나 <더 페이버릿>에서 아비게일이 괴물 흉내를 내며 애들과 잘 놀아준다고 했던 장면을 그녀는 괴물이라는 대사로 확장했다.
-굉장히 예쁘장하고 톡톡 튄다고 생각했던 엠마 스톤이 물론 분장의 힘도 있지만,특유의 튀어나온 눈이 주는 인상이 자못 괴기하게 느껴진다.성장 중인 생물체가 세상을 학습해 나가는 날것의 야성미를 전달한다.초반부의 연기 역시 일부러 백치처럼 보이려 하지 않고,다분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주체가 성인 여성이라 시각적 부조화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 뿐이도록 잘 설정했다.
-맥스를 비둘기라 지칭하고,중간에 일했던 매음굴 마담은 까마귀같은 실루엣의 옷을 입고 있다.노아의 방주에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렸을 때처럼,다시는 고난이 없을 거라는 약속 같은 존재는 맥스이고,중간에 아직 벨라가 독립하고 결정권을 가진 듯하지만 완성되고 안식을 얻지는 못한 모습을 까마귀 형상의 마담으로 은유한 듯하다.
-프림 부인은 갓윈을 신, 벨라를 인간이라 봤을 때 천사라고 느껴진다. 갓윈 박사의 명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벨라를 비꼬고 차라리 펠리시티가 마음에 든다고 하는 등 자유 의지가 있는 인간을 질투하는 천사의 면모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