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파인애플 명과 (8)
8.
무진은 전단지를 두 번 접어 주머니에 넣고 명과가 일하는 가게로 향했다. 걸어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명과에게 이 많은 법을 알려주고 또 악덕사장에게서 벗어나거나 보상을 받는 법도 고민했다. 상상속에서 무진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불합리를 발견하고 고쳐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그의 눈은 선명하게 세상을 봤다. 명과를 도와주고 나면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힘쓸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무진의 인생에서 가장 활기찬 얼굴이었다. 남을 위한 마음이 본인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첫날이었다. 그러나 거지 같은 행색에 쓸데없이 빛나는 눈,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고 있는 입. 무진의 속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는 무진을 봤다면 변태라고 오해하기 딱 좋았다.
빵!
그의 몰입은 뒤에서 울리는 경적으로 끝났다. 무진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고 뒤에는 높은 SUV가 길 한가운데를 걷는 무진을 답답해하며 두 번 더 경적을 울렸다. 무진은 미안하다는 표시로 가볍게 목례를 하며 길을 비켜줬다. 무진이 차를 피해 서있는 담벼락 밑은 명과와 처음 만났던 그 자리였다.
고개를 들어 명과의 왼팔이 자라났던 창문을 바라봤다. 세상에는 신기한 인연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대수롭지 않게 대했던 친구들에 대해서 떠올렸다. 주변에 한 명도 남지 않은 지금, 그들이 하나같이 그립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멀어진 것을 누굴 탓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명과에게만큼은 더 잘해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받은 호의만큼 베풀 수 있길 바랐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빠른 걸음으로 대명청과로 향했다. 며칠동안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 파랗고 깨끗했다. 무진의 집에서 언덕길을 내려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고 도시계획이 전혀 없었던듯한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걸어 내려가면 다시 큰 길이 나오고 잎이 무성한 플라타너스들이 지키는 4차선 도로를 맞이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대명청과.
명과는 그곳에서 맞고 있었다.
무진은 갑자기 눈앞에 벌어진 폭력에 선뜻 대처하지 못했다. 명과 주변에 과일박스 몇 개가 쏟아져 있었고 사장은 맨손으로 뺨을 후려쳤다. 두껍고 큰 손바닥이 명과의 머리를 강타하면 건너편 상가까지 소리가 울려퍼졌고 명과는 휘청거리며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일어설 때 마다 명과 머리에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명과는 두 손을 모아 배꼽에 가져다 놓기만 할 뿐 맞으면서 어떠한 반항도,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장은 더더욱 길길이 날뛰면서 자신이 평소에 앉던 조그마한 철제의자를 들고 내리쳤다. 명과의 거구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제야 사장의 부인이 나서서 말렸다.
“아이고 여보 애 잡겠네, 이제 그만 해요.”
“너 시발 너 요즘 미쳤어? 존나 빠져가지고 말이야.”
“명과야 너도 어서 죄송하다 그래. 응? 여보는 좀 내려 놔요 그거!”
“뭐? 야 내가 과일가게 사장인데 너가 과일 박스를 다 쏟아버려도 아이고 잘하셨습니다 그래? 이 개새끼가 그거 조금 뭐라 했다고 바로 기어오르네.”
무진은 명과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달려갔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돌아서 길을 건너가야 했지만 늦었다가는 명과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4차선을 무단횡단하는 동안 두 대의 차가 무진에게 욕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고 명과에게 달려갔다. 넘어져 있는 명과와 사장 사이로 뛰어든 무진은 사장을 밀치며 말했다.
“그만!”
“뭐야.”
“아저씨 미쳤어요? 요즘이 어느시댄데 이렇게 사람을 막 패요?”
“거, 이건 남이 관여할 일 아니니까 그냥 가요.”
“왜 관여를 안 해요 지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큰소리쳤지만 무진은 다리가 덜덜 떨렸다. 코앞에서 본 사장은 생각보다 덩치가 훨씬 커서 작은 곰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런 사람 손에 아직도 작은 의자가 들려 있었다. 한 대만 맞아도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무진은 부디 옆에 있는 아줌마도 말려주길 바랬다.
“여보 일단 이거 내려놔요. 그리고 아저씨, 이건 우리 가족 일이니까 우리끼리 알아서 할게요.”
“무진씨 저 괜찮아요.”
어느새 다시 일어난 명과는 무진의 어깨를 당기며 말렸다. 무진은 고개를 돌려 명과를 바라봤고 그의 부서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명과의 오른쪽 쇄골부터 줄기가 찢어져 상반신의 반이 너덜거렸다. 매질 당한 얼굴도 이곳저곳이 터져 향기로운 과즙이 뚝뚝 떨어졌다. 무진은 눈물이 날것만 같은 마음을 참고 사장에게 따졌다.
“아저씨! 진짜 미쳤어요?”
“무진씨이이? 둘이 아는 사이야?”
“당신 폭행 저지르는거 내가 똑똑히 다 봤어. 절대 그냥 안 넘어가.”
“무진씨 저 진짜 괜찮아요.”
사장이 진정하고 쥐고 있던 의자를 아내에게 건넸다. 그리고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살짝 웃었다.
“쟤가 괜찮다는데 왜 그쪽이 나대는데?”
“오늘 본 것뿐만 아니라 평소에 명과씨에 대한 노동법 위반도 다 신고할거거든요?”
“노동법 위반? 참내 명과야 너 요즘 기어오르는게 이 사람 때문이냐? 어? 나 고소해서 콩밥먹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거 아녜요 사장님, 죄송해요. 무진씨 일단 좀 나와봐요.”
“명과씨 제가 다 알아왔어요. 잠시만요, 아저씨 다른거 다 떠나서 요즘 누가 이렇게 일 시키면서 최저시급도 안 줘요? 심지어 휴식시간도 안 지켜, 끝나면 개인적인 업무를 또 시켜 이게 현대판 노예잖아요.”
사장은 어이가 없다는듯 웃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손짓으로 주변을 정리하라고 시킨 뒤 무진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무진은 자신의 말에 대답도 안 하는 뻔뻔한 사장의 태도에 살짝 당황해서 명과를 바라봤고 명과도 한숨을 쉬며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자, 이봐요. 명과가 살고 있는 집은 내 건물이에요. 이 동네 방 두 개짜리 월세가 한 80정도 하니까 사실 실 수령액은 최저시급 한참 넘겠지? 그런데 명과 쟤 글씨도 못 읽어. 초등학교도 안 나왔어. 누가 저런 애를 써 주겠어. 나니까. 나니까! 명과가 먹고 살수 있게 도와주는 거야. 씨발 좆도 모르는 주제. ”
“그,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패면 안되죠”
“하 진짜 말귀 못 알아먹네. 지금 내가 사람을 쳤어?”
“예?”
“나 때문에 다친 사람 있냐고 지금. 나 때문에 피해본 ‘사람’ 있냐고.”
무진은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반박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가 알아온 노동법을 읊어주면 만화 속 악당처럼 도망가지는 않겠지만 마지 못해서라도 명과의 처우 개선 등을 약속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이런 상황은 그의 상상속에 없었다. 무엇보다 사장의 마지막 말을 듣고 무진은 깨달았다. 명과가 사람인가에 대한 답이 무진에게 없었다.
명과는 평소에 착하니까. 사람 말을 쓰니까. 사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팔이 잘려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부모 없이 스스로 태어났다. 무진도 파인애플을 자르는 명과를 보면서 징그러워했다. 무진은 혼란스러웠다.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자신도 사장과 똑같은 사람일지도 몰라서. 왜 나는 명과를 도와주고 싶어할까. 무진은 속에 생긴 질문들, 그중 무엇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대신 심장만 고장난 트랙터처럼 뛰어서 주변에 박동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법 그거 사람한테 지켜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길다가 가로수 발로 차도 폭행죄로 고소할 거야? 좀 생각 좀 하고 살아.”
무진은 주먹을 움켜쥐고 그 자리에 서서 사장을 째려봤다. 사장은 무진이 별 다른 반응이 없자 그의 어깨를 밀어 가게 밖으로 내쫓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하던 행인들도 덤덤하게 자기 가던 길을 갔다. 무진은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자기도 왜 눈물이 날 것 같은 지 알 수 가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분했다. 사장은 무진을 무시한 채 엎드려서 과일을 주워담던 명과에게 5만원을 건넸다.
“야, 오늘은 이만 들어가봐. 이걸로 그 영양제 사 먹고.”
명과는 주춤하다 오만원을 받고 무진을 한번 봤다. 자기가 주워담던 바구니만 마무리 짓고 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서있는 무진의 어깨에 손을 올려 다독였다. 무진은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집이 가까웠던 둘은 자연스레 함께 걸었다. 패잔병처럼 말없이 땅을 보고 걷는데 누군가 멈춰 세웠다. 무진이 뒤를 돌아보니 사장의 아내가 멀리서 명과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가까워지자 무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 우리집 양반이 원래 말을 좀 시원시원하게 해요. 우리가 절대 명과를 미워하거나 그런게 아녜요. 아저씨도 명과를 아끼는 마음에 이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우리도 명과를 엄청 아껴요. 그치 명과야?”
“…네”
“이거 선물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그냥 요즘 오렌지가 달아서 몇 개 가져왔어요. 근데 또 법이니 뭐니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만 말고, 아무래도 명과는 좀 특별하니까, 그쵸?”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으이구, 젊은 사람이 그거 좀 들었다고 꽁해가지고. 언능 기운차려요. 그럼 난 이만 가볼테니까. 명과야 너도 어서 집에 가서 그 영양제 꽂고 자라. 그래야 내일 출근하지.”
“네 들어가세요.”
둘은 다시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무진의 오른손에는 오렌지가 담긴 비닐 봉지가 들렸다. 명과의 과즙과 오렌지의 향에 이끌려 그들의 주변에는 파리와 날벌레 몇 마리가 꼬였다. 지나가던 어린아이들은 명과에게 달콤한 향이 난다고 좋아했다. 명과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었다. 집 방향이 같은 축 처진 어깨와 반쯤 부서진 어깨가 터벅터벅 언덕을 올랐다.
“저는 명과씨를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요?”
“그 누구보다 사람스럽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뭐… 아닌건 아닌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