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이즈 어프레이드 리뷰 (장문, 스포일러 포함)
1.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
많은 리뷰어들이 이 영화가 보라는 인물과 보의 인생을 지배하는 강압적인 어머니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고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보의 어머니는 가짜 장례식을 준비하고 보의 주변을 자신의 고용인들로 채우는 이상할 정도로 집착이 심한 어머니이다. 반대로 보는 우유부단하고 스스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영화 내내 보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철부지 어른이다. 영화가 이 '두 인물' 각각의 관점을 제시한다고 이해한다면 일련의 사건들은 이 두 인물들의 욕망과 갈등의 결과들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영화 안에 두 인물이 있는 게 아니라, 한 남자의 불안들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한 남자가 가지고 있는 불안들의 실현 혹은 시각화이고 그렇게 가시화된 불안들 사이의 연관성이 하나의 플롯을 자아낼 뿐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니까 거대 기업의 수장인 어머니가 은연 중에 보의 일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고 이해하기보다는, 일상적인 불안의 배후에는 유년기의 근원적인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보다 일반적인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어머니 모나가 아들 보에게 행사하는 지배력이 아니라, 어머니 모나와 관련된 유년기의 불안이 다른 피상적인 불안들에 대해 갖는 근원성이 영화의 주제인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일련의 피상적인 불안들이 화살표가 되어 관객들을 보다 근원적인 불안으로 안내하는 흐름을 갖는다. 가령,
집 열쇠를 잃어버릴 거란 불안
집에 무서운 벌레가 있을 거란 불안
문신을 한 사람에 대한 불안
뉴스가 보도하는 범죄와 사고에 휩쓸릴 거란 불안
사적 영역이 침범 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
욕조 위 천장의 빈 공간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불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불안
어머니에게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을 거라는 불안
감시와 감금에 대한 불안
죄를 짓는 것에 대한 불안
억울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
어머니와 마주치는 것에 대한 불안
총기난사에 대한 불안
성관계에서 파트너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
성관계를 어머니에게 들키는 것에 대한 불안
어머니가 아버지를 학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
아버지가 사실은 끔찍한 사람이진 않을까 하는 불안
자신의 추악함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추궁 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
(죽기 직전 드디어 불안에서 해방되는 표정)
영화 속 인물들은 보가 이러한 불안은 느끼게끔 하는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불안들을 가시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존재들로 느껴졌다. 불안이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이기에, 보의 불안을 표현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영화 속 사건들과 인물들의 실재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모나의 말과 행동이 실재하는 인물로서의 모나의 것이 아니라, 그저 모나의 모습을 한 보의 불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아 모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구나"라는 생각보단, "아 어머니에 대한 보의 불안은 이런 형태를 띠고 있구나"라고 느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모나의 대사와 행동이 보가 어머니의 관점을 빌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자책이라고 이해했다. 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갖는 생각이나 감정은 이상할 정도로 묘사가 되지 않아서 더 그런 식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2.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영화의 첫 장면은 보의 탄생을 보여주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보의 죽음을 보여준다. 보의 탄생은 불안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신경질적인 상황으로 묘사되고, 그가 죽는 장면에서는 시종일관 불안해하던 보가 묘하게 진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불안은 삶과 함께 시작하고 끝난다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3. 어머니에 대한 보의 의존성
보는, 한편으로는 그것을 폭력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어머니를 필요로 한다.
보는 경제적으로도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분명하게 언급되진 않았지만 가게에서 카드 결제가 되지 않자 곧장 어머니에게 연락하는 모습이나, 가능하다면 돈으로 상황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부유한 어머니의 돈으로 고민없이 살아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보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삶과 죽음마저 어머니에게 의존한다. 즉 어머니에게 심판을 받는 상황을 빌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평가하지 못하고, 자신이 더 살아도 되는지 아닌지조차도 끝내 어머니 손으로 결정하게 만든다.
4. 제목에 대한 짜치는 생각
왜 이름이 '보'(Beau)일까 생각하다가 'Beau is afraid'를 발음하다 보면 'Boys are frayed'로도 들리지 않나 생각해보았다 ('frayed nerves'라는 말도 있다). 반쯤 농담이기는 한데, 이 영화에서 다루는 불안이 특히 남성들이 갖는 불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식으로 제목의 뜻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단순히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아버지가 되어서 아들들을 갖는 환상에서 충족되는 남성성이 다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성관계에서의 불안도 특히 남성들이 갖는 종류의 것이기도 했고.
5. 아리 애스터와 호아킨 피닉스
이 사람들은 그냥 영화를 잘 만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