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sers\Administrator\Downloads\소다잔_속에는_조용한_포탄이_떨어지고_있다_1.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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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기포가 유리컵 안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서는 떠오르지 않으려 애쓴다. 하늘로 올라가면 그대로 터져서 사라져 버릴 연약한 탄산 방울들. 하지만 목안에서 그 정도로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기는 쉽진 않아. 그러니까 마냥 연약하지는 않다는 말이지. 오히려 입안 가득 머금고 있으면 속이 톡톡 튀어서 부담스럽기까지 한다고. 그냥 에이드나 주스같은 거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지. 여하튼 그 기포들은 혼자 솟아올라 사라지는 것이 허무하고 억울한지, 담아 놓은 분홍색 빨대도 함께 이끌고 떠나가려 한다. 자꾸만 그 기다란 플라스틱을 부여 잡고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나랑 같이 올라가자.”
“나랑 같이 하늘로 가자.”
“나랑 같이 없어지자.”
“나랑 같이..”
-
잊고 살았다. 그 애의 목소리, 그 애의 얼굴, 그 애의 존재 자체를. 가끔 내 앞에 등장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서 들뜬 강아지 마냥 밝게 인사하고는 붉은 뺨으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애를 완전히 잊고 살았다. 관심도 없었다. 가끔 등장할 때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황하다가 짧은 인사로 답하면 그 애는 그제야 웃으며 어색한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학교도, 학원도 달라 만날 일이 전혀 없었다. 가끔 친구 녀석들을 통해 전해 들은 바로는 그 애는 다른 시의 사립학교에 재학중이라고 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관심도 없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고 내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애였으니까. 누가봐도 이상한 애였으니까. 나도 그렇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그게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간다. 더워서 거실 바닥에 물먹은 솜 마냥 납작 엎어져서 고개만 까딱거리고 있다. 곧 9월이 될 텐데 어째서 이렇게도 습한지. 누워서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니 하늘색과 하얀 적운이 천천히 움직이는 풍경만 네모나게 잘려있다. 마치 하늘정원에 혼자 누워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나 혼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떠올린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든다.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연예인들의 시시덕거림과 커다란 웃음 소리 그리고 묘하게 듣기 좋은 흔한 팝송이 배경음으로 흘러나오지만, 노곤함에 빠져드는 나에게는 차분한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눈을 감고 얼마나 있었을까, 카톡이 요란하게 울려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단체 카톡 방에서는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남은 노란 숫자 1이 지워졌다.
“왔다.”
“왔네
괜찮아?”
“헐 본인 등판..”
“너 괜찮냐?”
무슨 소리인지 당최 알수가 없어 탄산음료 밖으로 빠져 나가려는 공기방울처럼 스크롤을 말아 올려보지만, 그들이 나눈 대화는 “헐, 미친, 진짜?, 어떡하냐, 가야되냐?” 등등의 단문으로만 도배되어 있었다. 괜찮냐는 말에 답하기는 커녕 뭐가 괜찮은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나는 자판을 톡톡 건드려 질문했다.
“무슨 일인대?”
“걔 %uC8FD%uC5C8%uB300
너 맨날 ㅈㅗㅊ아다니던 걔”
“누구?”
“걔가 걔지 누구야
니 ㅈㅗㅊ아다니는 여자애가 걔 하나 밖에 더 있었음?”
“ㅇㅈ 걔 취향 존특”
“어쩔거임? %uC0C1%uAC13%uC9D1 가실?”
뭐? 걔? 완전 잊고 살았는데? 왜? 뭐하다 %uC8FD%uC5C8%uB370? 왜 %uC8FD%uC5C8%uB294%uB370? 나는 걔 완전 잊고 살았지. 근데 걔 왜 %uC8FD%uC5C8%uB370? 뭔데? 걔랑 안 마주친지 몇 주? 아니 한 달은 더 넘은 거 같은데 뭐하다가 %uC8FD%uC5C8%uB370? 언제 %uC8FD%uC5C8%uB370? 나는 걔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걔는 갑자기 왜 %uC8FD%uC5C8%uB370? 나 걔 이름만 겨우 아는데 무슨 %uC0C1%uAC13%uC9D1이야. 근데 언제 왜 %uC8FD%uC5C8%uB370? 어쩌다가 %uC8FD%uC5C8%uB370? 우리가 %uC8FD%uC744 나이는 아니잖아.
머릿속에 여러개의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결국 의문은 한곳으로 모였다.
“어쩌다가?”
내가 남긴 말풍선 아래의 노란 숫자가 순식간에 소거됐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뭘까. 사고라도 난 걸까? 횡단보도를 건너다 붉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린 자동차에 겨우겨우 쌓아올린 모래성이 파도에 사라지듯 무참하게 치이기라도 했을까? 아니면 보도를 넘어 침범한 차량이 피지도 못 한 봉오리를 터트리고 말았을지도 몰라. 그것도 아니라면 이 좋은 여름날 반짝이는 피서지로 갔다가 물귀신에게 발목이라도 잡혔나? 그것도 아니라면 들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산에 올라갔다가 사근대는 요정의 목소리에 속아 숲속에서 조난이라도 당했나? 그 애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야.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그것도 아니라면 오래 전 따돌림 당했던 한 중학생처럼 그렇게 그렇게 물속으로 %uAC00%uB77C%uC549%uC544 버렸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그 찰나에 내 머릿속은 만약이라는 가장으로 이어진 %uC8FD%uC74C이 가득차 흘러 넘치고 만다. 아직 그 애가 떠난 이유도 모르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갑작스럽다. 항상 그 애가 나에게 다가왔던 방식처럼. 멍하니 서있는 내 얼굴 앞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더니 수줍은 표정을 짓고는 어색한 발걸음으로 저 멀리 사라져버리는 평상시처럼. 골목을 돌자, 저 멀리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다 겨우겨우 내 앞으로 다가와 힘겹게 인사를 남기던 모습처럼. 부담스럽다. 이 기분이. 이 감정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가슴이 벅찰 정도로 미어지는 이 이상한 감정이 부담스럽다. 그 애의 얼굴처럼. 그 애의 수줍음 섞인 뒷꿈치처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목구멍위로 흘러넘치려고 한다.
“전화 되냐?”
나랑 항상 붙어다니는 녀석이 단체 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ㅇㅇ”
잠시 후 전화가 울린다. 나는 울음소리를 삼키고 전화를 집어든다. 부담스러워서 터져나오고 만 내 울음소리가 친구녀석에게 들릴까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받았다. 감정을 들키기에 나는 너무 겁쟁이였다.
“뭐하고 있음?”
“….”
“괜찮은 거?”
“응..”
“얘기해줘도 괜찮겠어?”
“응..”
“자기 집.. 13층인가? 되는 높이에서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렸대. 아파트 정원에서 파란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발견됐다나봐. 복장을 보고 처음에는 %uC0AC%uACE0%uC0AC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부검하고 %uC790%uC0B4..로 판정됐다더라고.”
파란 원피스. 그 애가 사복을 입은 모습을 본 건 중학교 수학여행 때가 마지막이다. 그때도 파란 옷을 입었던가? 정확한 건 그 애가 다니는 사립 고등학교의 교복이 짙은 남색이라는 거다. 치마에는 주름이 져서 뒤돌아 뛰어갈 때마다 하늘하늘 거렸다. 다들 운동화나 슬리퍼에 귀여운 무늬가 그려진 양말을 신고 있지만 교칙 때문인지 우리 마을에서 혼자만 구두에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은 그 애의 다리가 치마 아래로 일렁거리며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던 게 기억난다. 멀어지는 걸음이 수줍음에 떨리고 어색한 것이 남이 봐도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애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딱히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라면 나에게 다가와 인사도 하지 않았을테니까. 어쨌든 나는 그런 그 애를 잊고 살았다. 그 하늘거리는 남색 치마를 본 것도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그래?”
“괜찮음?”
“어.. 응.. 괜찮지.”
“%uC7A5%uB840%uC2DD 어디서 하는지 알아봐줘?”
“…”
내가 그걸 알아서 어디에 써.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같은 반을 한 것 외에는 접점도 없는 그 애의 %uC7A5%uB840%uC2DD%uC7A5을 알아내서 뭐에 쓰겠어. 이름만 겨우 아는 그 애의 %uC7A5%uB840%uC2DD%uC7A5을 알아내면 뭐할 건데. 돌이켜보니까 내가 먼저 인사를 한 적도 없는 거 같다. 항상 다가오는 그 애를 가만히 바라만 봤을 뿐. 그 마저도 나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애는 이상한 애였으니까. 저 애랑은 엮일 수 없다. 부담스러우니까. 그러니까 갑작스레 %uC7A5%uB840%uC2DD 같은 곳에 참석할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이 나는구나.
“말아?”
“응.”
“어? 알아봐줘?”
“아니. 됐어. 내가 거길 왜 가.”
녀석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거기를 왜 가. 부담스럽게. 부담감에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해서 넘쳐나온다.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감정이다. 그 애는 나에게 있어서 항상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이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건데.. 나 보고 뭐 어쩌라고.”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반질반질한 뺨을 타고 내려와 나의 축축한 다리에 떨어진다. 얄궂게도 옆에 있던 가습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엉엉엉엉엉엉. 씨끄러. 짜증난다.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움에 귀가 다 울린다.
-
편지를 받았다. 아니, 쪽지를 받았다. 쪽지라고 하기에는 글의 양이 조금 많았지만, 봉투도, 제대로 된 편지지도 아닌 모의고사 시험지 뒷면의 공란의 일부를 잘라낸듯한 회색 조각 위에 파란 마킹펜으로 적힌 글이었다. 글은 회색 종이틈에 스며들어 종이와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접어놓은 방식은 대부분의 쪽지들이 그렇듯, 여러번 꽁꽁 꼬듯 접어낸 네모난 딱지같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편지보다는 쪽지였다.
그곳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결론부터 말할게. 너를 좋아했어.
고작 한 번 같은 반 한 게 전부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5년이 넘게 너를 좋아하고 있었어.
고등학교에 간 뒤로 마주치기가 힘들어 여기저기 불쑥 찾아갔는데 그 점은 그때도,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
스토커 같이 느껴졌다면 진심을 다해 사과할게.
말 없고 수줍은 네가 퉁명스러운 대답을 하는 게 좋았어.
인사를 기다리면 억지로 인사를 해주는 네가 좋았어.
앞으로는 말할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이걸 남기고 싶었어.
그럼 안녕.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발신자는 분명했다. 그 애와 같은 교복을 입고 그 애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그마한 아이가 그걸 전해주러 왔으니까. 햇빛에 동그란 짧은 머리가 닿으면 분홍빛이 섞인 갈색으로 변하고 마는, 작고 마스코트 같이 귀여운 아이가. 잔머리가 통통 튀는 그 모습이 눈에 각인 되어 하루종일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쪽지를 받은 후로 계속.
%uC720%uC11C에 그 쪽지를 나에게 전해달라고 적혀 있었다는 말을 들은 후로 계속.
-
쪽지를 받았을 때, 주변에 친구들이 몇 서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오~~~~~!”와 같은 야유같은 탄성을 받았다. 나는 당황스러워 검지로 나 자신을 가르키고, 그 분홍색 아이는 얼른 받으라며 쪽지를 흔들며 재촉했다.
“..%uC720%uC11C에 너한테 전해달라고 적혀있었음….”
분홍색의 아이는 떠듬 떠듬 말했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말수가 많은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저 말만 전했다. 나를 둘러싸던 뜨거운 친구들의 반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마지못해 집게 손가락으로 그 쪽지를 집어 들었다. 꺼림칙하게 행동하는 나를 보고 분홍색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기분이 나쁜지 눈썹을 조금 치켜 세우고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듯 눈동자를 몇번이나 굴리고, 옆을 보고 입을 옴짝달싹 뭐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찝찝해 한 게 그 아이에게도 보였던 모양이다.
“..나도 내용은 몰라. 평소에 너 이야기 엄청했어. 그러니까 그거.. 벌레 만지듯 대하지는 마.”
그리곤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그 아이와 같은 남색 주름 치마를 일렁이며, 그 아이와는 다르게 파스텔 톤의 짧은 양말과 하얗고 두터운 운동화를 슬쩍슬쩍 드러내며 가버렸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저만치에서는 달음박질로 바뀌어 금새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보통같았으면 주변에 있는 녀석들 중 누군가가 냉큼 뺏어서 읽어 봤을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모두들 못 본 척했다. 모두들 뛰어가 버린 분홍색 아이에 대해서는 본 적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쪽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찝찝한 마음으로 그것을 주머니에 욱여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머니를 잘라내고 싶다.’
-
날 좋아한댄다. 날 좋아했댄다.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 몇 번을 주머니 근처에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손이 닿지 않는 거리는 아니지만 그 속에 손을 차마 넣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찝찝했으니까. 당장이라도 주머니만 고스란히 잘라내어 어디 불에 태워버리고 싶었으니까. 몇 번이나 손을 뻗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시도했던 나는 결국 집게 손가락만 간신히 주머니에 넣는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쪽지의 끝을 잡아 꺼내어 손에 닿는 면적을 최소한으로 해 그것을 펼쳤다. 그랬더니 이 상황이 벌어졌다.
날 좋아했대. 그 애가 나를 좋아했대. 그것도 5년이나 나를 좋아해왔대.
너무 부담스럽다. 어떤 반응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누군가 날 좋아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아니, 상상만 해본 일이다. 꿈에서나 일어났던 일이다. 여자애가 나를 좋아했다고? 말도 안된다. 더군다나 그 부담스러운 이상한 애? 나한테만 인사하고 가버리는 그 이상한 애? 나의 뭘 보고 좋아한 거야? 나의 어떤 부분을 보고 저가 나를 좋아한다고 인지한거야? 여기 이 쪽지에 적혀있는 이유가 날 좋아하는 이유가 될 수 있어? 걘 이상했잖아. 아니 이상하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그럼 나도 그 만큼, 그 애 만큼 이상하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런 애가 나를 좋아하게 된거야? 끼리끼리니까? 그럼 나도 이상한 거네. 나도 부담스러운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지금 이 애는 어디로 가버렸는데? 왜 가버렸지? 아무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영영 가버렸잖아. 앞으로 이 애 말고 또 다른 이상한 사람을 마주칠 일이 있을까? 앞으로 다른 누군가 이상한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까? 나같이 이상한 애를 좋아해 줄까? 앞으로 나는 이만큼의 사랑을 또 받을 수 있을까? 부담스러워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가슴 뛰는 설레임을 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이상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그 애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uC54A%uB294%uB2E4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 애가 영영.. %uC8FD%uC5B4%uBC84%uB838%uB2E4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이 쪽지는 분명 장난일 거야. 머리카락이 분홍색으로 빛나는 여자애가 세상에 어디에 있어. 고등학생이 무슨 그런 화려한 머리를 하고 다녀? 무슨 만화야? 내가 헛것을 본거지. 아까 다들 반응도 그랬잖아. 아무도 이 쪽지를 본 척도 하지 않았어. 심지어는 그 분홍색 머리 여자애가 다녀간 것에 대해서도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이건 가짜인 거지. 꿈인 거야. %uC8FD%uAE30 전에 이딴 종이에 이런 걸 써서 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것도 시험치다 말고 쓴 거 같은 이거. 이 종이. 그러니까 헛것이지. 재수없게 하필이면 헛것을 봐도 이런 걸 보고 있냐? 부정탄다 부정타. 얼른 현실로 돌아와. 하지만 쪽지가 담겨있던 왼쪽 바지 주머니가 찝찝하다. 가위로 딱 잘라내면 속이 시원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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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서걱서걱’
뒤집어진 교복바지의 한쪽 주머니가 시원하게 떨어져 나갔다. 아아 시원해. 찝찝하면 잘라내면 되지. 나는 잘라낸 주머니를 집게손가락 끝으로 잡아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찝찝해 그것을 잘라낸 가위를 씻어내고, 휴지를 잔뜩 뽑아 버린 주머니 위를 휴지로 덮어 버렸다. 그래도 찝찝함은 계속 남는다. 아마 엄마가 쓰레기 봉투를 가져다 버리는 날까지 이 기분은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그럼 얼른 쓰레기를 모아와야지.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 쓸모없는 것들을 당장 모아다가 저 위에 얹어버려야지. 저 기분 나쁜 주머니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게 꽁꽁 덮어버려야지. 아, 그 쪽지. 그 쪽지가 제일 쓸모없다. 아니, 찝찝하다. 잘라낸 주머니 보다도 더 기분 나쁘다. 당장 버려야한다. 나는 잠시 읽고 책상에 올려뒀던 그것을 다시금 집어든다. 근데 그게 만져진다. 그게 내 손끝에 보드라우면서도 까칠한 감각을 선사한다.
분명 상상 속 하굣길에서 마주친 분홍색 단발 머리를 한 여자애가 다가와 내 얼굴을 쏘아보며 준 쪽지는 재수없는 백일몽일 뿐이었을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