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일의 추억을 함께한 도마뱀이 세상을 떠났다.
때는 2021년 여름, 중학교 3학년 때 전부터 키우고 싶었던 레오파드 게코를 한 마리 데려왔다.
매번 유튜브로만 보던 생명체를 내가 돌보며 매일매일 본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신비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모프는 슈퍼 하이포 텐져린 발디로, 아주 진한 주황색이 특징이었고 난 이름을 감귤이로 지었다.
예상처럼 도마뱀은 너무나 귀여웠고 매력적이었다. 주는대로 밥도 잘 받아먹고 잠도 잘 자며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렇게 순하고 귀여운 개체가 또 있을까 생각하며 나날이 행복해했었다.
그렇게 감귤이는 성체가 되며 80그램을 넘겼고, 조금은 먹이를 줄여야 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약 1년 뒤 감귤이와 짝짓기를 시켜 베이비들을 받아볼 생각으로 수컷 성체를 한 마리 더 데려오며 감귤이의 집도 기존의 전기장판과 아크릴 사육장에서 자동으로 온도조절이 되는 렉사로 바뀌었다.
새로 데려온 친구는 모프가 트렘퍼였고 흰색과 노란색, 초록색이 뒤섞인 무늬가 매력적인 친구였다. 난 이름을 레몬이로 지었다.
그렇게 충분히 적응기간을 거치고 난 뒤 둘을 짝짓기 시켰고 곧 감귤이는 알을 뱄다.
감귤이는 두개씩 총 4번 알을 낳았다. 초산이라 그런지 모두 무정란이었다. 초산의 경우 6 7차까지 산란을 하는 레오파드 게코인지라 더 낳겠거니 했지만 더이상 낳지 않았고 감귤이는 식음을 전폐하며 점점 야위어갔다.
결국 90그램 가까이 나가던 아이가 체중이 40그램까지 떨어졌다.
난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감귤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진료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기생충 감염과 구내염, 그리고 홍채에도 염증이 있었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도 살기 힘들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사실 동물병원이, 그리고 특히 개 고양이가 아닌 도마뱀은 병원비 보험 적용이 안 되기에 만만치 않은 비용으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구충제와 입을 소독할 소독약과 솜, 동종요법 치료제를 2주치를 받아왔다. 병원비는 40만원 조금 넘게 나왔다.
난 만약 감귤이가 죽더라도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보내야겠단 생각으로 하루에 4번씩 그 조그만한 알약과 가루약을 물에 개어 주사기로 먹이고, 사료도 묽게 만들어서 조금씩 입에 묻혀주었다.
실은 먹고싶어서 먹는 것이라기보단 입 주변에 뭐가 묻어서 닦아내는 느낌이었지만 한 번 핥기 시작할 때 꽤 넣어주면 제법 잘 먹었다.
그렇게 받아온 모든 약을 먹이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았고
여전히 밥을 먹지 않자 나는 마지막으로 귀뚜라미를 사서 먹여보기로 한다.
처음으로 산 생물 귀뚜라미는 정말 징그러웠지만
밀웜보다 영양도 뛰어나도 소화도 잘 되며 먹이반응도 굉장한 귀뚜라미이니 참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감귤이가 스스로 귀뚜라미를 먹었다.
거의 4개월만에 자기 스스로 밥을 먹은 것이다.
나는 감격했고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거대한 귀뚜라미들을 안 먹을 때까지 매일매일 먹이니
감귤이는 2개월만에 정상체중으로 돌아왔고
그 많던 병들이 해결됐는 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건강해보였다.
내가 돈을 내는 것도 아닌 상황에 그 비싼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병원에 갈 엄두도 안 났지만 일단 건강하니 매달 병원에서 오는 기생충 검사 예정일 문자는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잘 지내면서도 언제부턴가 그렇게 환장하고 달려들던 밀웜과 귀뚜라미, 사료는 거들떠도 보지 않아 전처럼 사료를 묽게 타서 입에 묻혀주며 밥을 줬다. 그런대로 잘 지냈고 많이 건강해졌다고 느꼈다.
나는 전에 잘 먹던 슈퍼밀웜이 생각나 사서 먹여보았고 굉장히 잘 먹기에 걱정이 한 층 줄었다. 전에 사경을 헤매던 아이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건강하고 활기찼다.
그렇게 또 몇 달 뒤, 오늘.
감귤이는 세상을 떠났다.
학원에 다녀와서 여느 때처럼 사육장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냥 평소처럼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런데 난 감귤이가 아픈 후로, 자는 게 아니라 죽은 걸까봐 항상 살짝 깨워보는 습관이 있었다.
평소에는 졸려하며 일어나는 모습을 매번 봐왔지만,
오늘은 달랐다.
평소같으면 진작 깨서 밖을 쳐다봤을 텐데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다가 조금 고개를 들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같으면 계속 손 위에서 움직일 감귤이를 손에 올려보니 힘 없이 축 쳐져서 눈도 뜨지 않는 것이었다.
큰 자극에는 조금씩 반응을 하며 숨도 약간씩 쉬었는데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어제 싼 변을 보니 소화되지 않은 슈퍼밀웜이 몇 마리 그대로 변에 나왔고
설사도 심하게 한 흔적이 있었다.
장 막힘, 임팩션이었던 거다.
매번 슈퍼밀웜을 주면서도 너무 급하게 삼켜서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슈퍼밀웜 말곤 스스로 먹질 않으니 계속 주었다.
그러다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감귤이가
대체 뭐가 급해서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는 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눈물만 흘렀다.
그렇게 먹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슈퍼밀웜을 줬던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청소를 미루고 밥을 미뤘던 것이,
놀아준단 명목으로 귀엽다고 자꾸 꺼내서 만졌던 것이.
그 수많은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만이 내면을 가득 채우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생명은, 그 중에서도 반려동물은 언젠가는 곁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데려온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잔혹하게 떠날 줄은 상상하지 못 했고
나는 그 실로 육중한 충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결코 괜찮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침울함과 안타까움, 미안함이 한 데 뒤섞인 이 괴기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나는 가슴에 묻기로 했다.
감귤이는 아직도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없지만
지난 날의 감귤이와의 추억과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 그리고 슬픔과 불쌍함과 가련함. 난 그 감정들을 모두 간직한 채로 영원히 가슴에 묻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이 글에 꾹꾹 눌러 담는다.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지금의 순간을 더욱 소중하고 의미있는 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차갑게 식은 감귤이의 육체를 보며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동안의 순간들을 떠올렸고, 이제는 인사를 해야하는구나. 생각했다.
감귤아.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너가 좋아하는 벌레들 많이 잡아먹고, 등 따숩고 배부르게 보내길 바라. 오래오래 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 해줘서, 더 좋은 주인이 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1115일간의 우리 추억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게.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