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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일의 추억을 함께한 도마뱀이 세상을 떠났다.

인생이무료free
24.08.27
·
조회 974

때는 2021년 여름, 중학교 3학년 때 전부터 키우고 싶었던 레오파드 게코를 한 마리 데려왔다.

 

매번 유튜브로만 보던 생명체를 내가 돌보며 매일매일 본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신비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모프는 슈퍼 하이포 텐져린 발디로, 아주 진한 주황색이 특징이었고 난 이름을 감귤이로 지었다.

 

예상처럼 도마뱀은 너무나 귀여웠고 매력적이었다. 주는대로 밥도 잘 받아먹고 잠도 잘 자며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렇게 순하고 귀여운 개체가 또 있을까 생각하며 나날이 행복해했었다.

 

그렇게 감귤이는 성체가 되며 80그램을 넘겼고, 조금은 먹이를 줄여야 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약 1년 뒤 감귤이와 짝짓기를 시켜 베이비들을 받아볼 생각으로 수컷 성체를 한 마리 더 데려오며 감귤이의 집도 기존의 전기장판과 아크릴 사육장에서 자동으로 온도조절이 되는 렉사로 바뀌었다.

 

새로 데려온 친구는 모프가 트렘퍼였고 흰색과 노란색, 초록색이 뒤섞인 무늬가 매력적인 친구였다. 난 이름을 레몬이로 지었다.

 

그렇게 충분히 적응기간을 거치고 난 뒤 둘을 짝짓기 시켰고 곧 감귤이는 알을 뱄다.

감귤이는 두개씩 총 4번 알을 낳았다. 초산이라 그런지 모두 무정란이었다. 초산의 경우 6 7차까지 산란을 하는 레오파드 게코인지라 더 낳겠거니 했지만 더이상 낳지 않았고 감귤이는 식음을 전폐하며 점점 야위어갔다.

결국 90그램 가까이 나가던 아이가 체중이 40그램까지 떨어졌다.

 

난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감귤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진료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기생충 감염과 구내염, 그리고 홍채에도 염증이 있었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도 살기 힘들 것이라고 나는 들었다.

 

사실 동물병원이, 그리고 특히 개 고양이가 아닌 도마뱀은 병원비 보험 적용이 안 되기에 만만치 않은 비용으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구충제와 입을 소독할 소독약과 솜, 동종요법 치료제를 2주치를 받아왔다. 병원비는 40만원 조금 넘게 나왔다.

 

난 만약 감귤이가 죽더라도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보내야겠단 생각으로 하루에 4번씩 그 조그만한 알약과 가루약을 물에 개어 주사기로 먹이고, 사료도 묽게 만들어서 조금씩 입에 묻혀주었다.

 

실은 먹고싶어서 먹는 것이라기보단 입 주변에 뭐가 묻어서 닦아내는 느낌이었지만 한 번 핥기 시작할 때 꽤 넣어주면 제법 잘 먹었다.

 

그렇게 받아온 모든 약을 먹이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았고

여전히 밥을 먹지 않자 나는 마지막으로 귀뚜라미를 사서 먹여보기로 한다.

 

처음으로 산 생물 귀뚜라미는 정말 징그러웠지만

밀웜보다 영양도 뛰어나도 소화도 잘 되며 먹이반응도 굉장한 귀뚜라미이니 참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감귤이가 스스로 귀뚜라미를 먹었다.

 

거의 4개월만에 자기 스스로 밥을 먹은 것이다.

나는 감격했고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거대한 귀뚜라미들을 안 먹을 때까지 매일매일 먹이니

감귤이는 2개월만에 정상체중으로 돌아왔고

그 많던 병들이 해결됐는 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건강해보였다.

내가 돈을 내는 것도 아닌 상황에 그 비싼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병원에 갈 엄두도 안 났지만 일단 건강하니 매달 병원에서 오는 기생충 검사 예정일 문자는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잘 지내면서도 언제부턴가 그렇게 환장하고 달려들던 밀웜과 귀뚜라미, 사료는 거들떠도 보지 않아 전처럼 사료를 묽게 타서 입에 묻혀주며 밥을 줬다. 그런대로 잘 지냈고 많이 건강해졌다고 느꼈다.

 

나는 전에 잘 먹던 슈퍼밀웜이 생각나 사서 먹여보았고 굉장히 잘 먹기에 걱정이 한 층 줄었다. 전에 사경을 헤매던 아이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건강하고 활기찼다.

 

그렇게 또 몇 달 뒤, 오늘.

 

감귤이는 세상을 떠났다.

 

학원에 다녀와서 여느 때처럼 사육장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냥 평소처럼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런데 난 감귤이가 아픈 후로, 자는 게 아니라 죽은 걸까봐 항상 살짝 깨워보는 습관이 있었다.

평소에는 졸려하며 일어나는 모습을 매번 봐왔지만,

 

오늘은 달랐다.

 

평소같으면 진작 깨서 밖을 쳐다봤을 텐데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다가 조금 고개를 들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같으면 계속 손 위에서 움직일 감귤이를 손에 올려보니 힘 없이 축 쳐져서 눈도 뜨지 않는 것이었다.

 

큰 자극에는 조금씩 반응을 하며 숨도 약간씩 쉬었는데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어제 싼 변을 보니 소화되지 않은 슈퍼밀웜이 몇 마리 그대로 변에 나왔고

설사도 심하게 한 흔적이 있었다.

 

장 막힘, 임팩션이었던 거다.

 

매번 슈퍼밀웜을 주면서도 너무 급하게 삼켜서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슈퍼밀웜 말곤 스스로 먹질 않으니 계속 주었다.

 

그러다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감귤이가

대체 뭐가 급해서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는 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눈물만 흘렀다.

 

 

그렇게 먹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슈퍼밀웜을 줬던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청소를 미루고 밥을 미뤘던 것이,

놀아준단 명목으로 귀엽다고 자꾸 꺼내서 만졌던 것이.

 

 

그 수많은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만이 내면을 가득 채우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생명은, 그 중에서도 반려동물은 언젠가는 곁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데려온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잔혹하게 떠날 줄은 상상하지 못 했고

나는 그 실로 육중한 충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결코 괜찮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침울함과 안타까움, 미안함이 한 데 뒤섞인 이 괴기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나는 가슴에 묻기로 했다.

 

감귤이는 아직도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없지만

지난 날의 감귤이와의 추억과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 그리고 슬픔과 불쌍함과 가련함. 난 그 감정들을 모두 간직한 채로 영원히 가슴에 묻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이 글에 꾹꾹 눌러 담는다.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지금의 순간을 더욱 소중하고 의미있는 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차갑게 식은 감귤이의 육체를 보며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동안의 순간들을 떠올렸고, 이제는 인사를 해야하는구나. 생각했다.

 

 

감귤아.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너가 좋아하는 벌레들 많이 잡아먹고, 등 따숩고 배부르게 보내길 바라. 오래오래 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 해줘서, 더 좋은 주인이 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1115일간의 우리 추억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게. 안녕.

 

댓글
카오스구찌의언니올시다
24.08.27
감귤이는 그래도 자기에게 최선을 다해주는 주인을 만나서 행복했을 것 같아요 맛있는 귀뚜라미도 주고 밀웜도 주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줘서 감귤이는 사랑받고있다고 느꼈을거에요 그러니 너무 죄책감 갖지 말고 하늘에서 지켜볼 감귤이가 슬프지 않게 힘내서 행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세요!!
독깨팔여친
24.08.27
레게 같이 쪼꼬만 애들이 아프면 참 어렵고 힘들죠
그래도 감귤이의 생은 나쁘지 않았고 좋은 기억들이 가득했을 겁니다
남은 레몬이와 추억 더 만들고 나중에 다시 만나요
DS아빠
24.08.27
이별은 언제나 후회와 함께하는거 같아요
감귤이는 그래도 이제 아프지 않을꺼에요
이제는 횐님의 아픈 마음을 돌보시면 되요
부자애옹이
24.08.27
감귤이 부디 평안하길 바랄게요 횐님 기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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