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주의] 주펄의 코미디는 폭력적이다
폭력이라는 말을 들을 때 주로 물리적 폭력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만 일어날 수 있으므로 작은 폭력이다.
진짜 큰 폭력은 세계에 대한 고정 관념 자체를 비트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사람들의 세계관과 사고 방식을 비틀어 버리기만 할 수 있으면, 물리적 폭력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된다.
종교, 이념에 따른 대전쟁부터 치약 짜는 방법에 대한 집안싸움까지, 모두 결국엔 관념적 대립에서 오는 폭력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미디는 진짜 폭력에 가깝다.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은 항상 예상할 수 없는 순간이고, 그것은 고정관념을 비틀어버렸다는 뜻이다.
폭력의 대명사인 빌런 중에 가장 사골 우리듯이 우려지는 인기 캐릭터가 조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폭력+코미디니까.
최근 영화에서는 아예 조커의 코미디성을 빼버리고 폭력성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괜찮다. 코미디와 폭력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조커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썩어빠진 고담 사회에 대한 사이다로 받아들여진다.
현실에선 어떠한가? 코미디의 꽃인 정치 풍자는 권력자를 비꼼으로써 사회 구조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부분을 발가벗긴다.
현실에선 정치 풍자 수준이 한계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할 수 있다. 조커는 하남자처럼 비꼬는 거 안하고 상남자처럼 폭력을 행사할 뿐이다.
그걸 보고 현실의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조커는 대표적 예일뿐 각종 폭력물의 재미 요소는 다 이런 식이다.
주펄은 코리안 조커이다. 다크 나이트 이후 조커가 어둠의 조커가 됐다면 주펄은 태초부터 빛났기 때문에 빛의 조커이다.
주펄의 싯다운 코미디는 항상 예측 불가이다. 침착맨, 기안 등 주변에 괴인은 많지만 예측 불가라는 측면에서 주펄은 원탑이다.
침착맨이나 기안은 은근히 패턴이 있다. 한쪽은 언어파, 한쪽은 행동파이지만, 자기 딴에는 일관적이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방향성을 볼 수 있다.
(기안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미친 예술가의 약간 코믹한 버전같고, 침착맨은 뭐를 넣어도 이상한 침소리만 나오는 고장난 자판기 같다)
하지만 주펄은 양말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정상인이었다가 이상한 사람이었다가를 반복한다.
양말 썼을 때도 그저 매너를 지키고 있을 뿐 드립 자체는 다 꼬여있다.
침착맨 엉덩이를 보고 식 된다고 얘기하고, 국밥 먹다가 갑자기 재즈 흉내를 낸다.
양말을 벗어서 리미트를 해제했을 때, 예를 들어 노수자 게임 같은 것을 할 때는 사회 풍자급의 파괴력이 있다. 진짜 ‘폭력적’이다.
사람 자체의 패턴이 예상 범위를 벗어나 있고, 뭔가 뒤틀리게 꼬여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아마 양말 벗은 주펄 쪽이 진짜일 거다)
이 글이 너무 길어서 폭력적이니 폭력적으로 세 줄 요약을 해 보겠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비틀고 더 나아가 부숴버리는 것이 진짜 폭력이며, 다른 말로 코미디다.
조커처럼 폭력만으로도 코미디의 느낌을 낼 수 있고, 정치 풍자처럼 코미디만으로도 폭력적인 느낌을 낼 수 있다.
주펄은 양말맨이기 때문에 조커처럼 굴진 않지만, 대신 코미디를 폭력적으로 구사한다. 빛의 조커, 양말 쓴 조커, 코리안 조커이다.
(대신 조커는 양말 벗겨진 채로 다니기 때문에 그 밑바닥이 드러났지만, 주펄은 양말 벗었을 때의 밑바닥이 안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