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플랜 9화까지 궤도님 중심으로 쓴 후기
우선 서두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저는 궤도님의 ‘최대한 많이 살리자’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데스매치가 없는 데블스플랜의 특성상 가능한 방식일 것 같지만
제작진이 준비한 메인매치의 흐름이 탈락을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야 이제 메인매치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소리이기도 하지요.
제가 동의를 하든 말든 궤도님은 결국 다섯 번째 메인매치까지 8명을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심지어 첫 번째 메인매치에서 테러리스트가 승리함으로써 다수의 생존이 더욱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말이에요.
다만, 그 탓에 수많은 1피스 플레이어들은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고, 메인매치가 거듭될수록 ‘궤도책임론’이 대두되는 것 역시 여기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규칙레이스, 특히 시크릿 넘버 때 대거 탈락했어야 할 1피스 플레이어들이 어찌저찌 살아남아 버렸거든요. 일찍 떨어졌다면 책임 질 일도 없었을 텐데, 부양가족이 늘어나니 책임만 커진 셈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궤도가 진작 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궤도님의 철학에 반대합니다. 아마 이건 저뿐만 아니라 데블스플랜에 참가한 다른 플레이어들도 생각하고 있었을 테고, 실제로 인터뷰에서 드러낸 분들도 많죠.
하지만 궤도님은 대놓고 모순적인 철학을 들이민 것치고는 지나치게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약자’들의 합류 아래 부분적으로 엔젤스플랜이 실현된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분명 다른 플레이어들은 굉장히 일찍 반감을 자각합니다. 첫 번째 상금매치 때부터 마찰이 일어나잖아요? 왜 피스를 몰아줘야 되느냐고.
근데 아무도 궤도를 떨어뜨리지 못해요. 오히려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그와 함께 연합해 가장 강한 반감을 느끼던 참가자를 몰아내 버립니다.
이걸 단순히 ‘참가자들의 무능’으로 처리해 버리면 참 쉽습니다. 그냥 궤도님의 개인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감히 탈락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저도 기분이 좋으니까요.
하지만 궤도님의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 철학이 원래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데스매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진작 떨어졌어야 할 궤도가 계속 살아남게 되고요.
지니어스 시리즈에서 데스매치의 역할이 뭘까요? “이번에 떨어지는 게 나일 수도 있다.”라는 불안감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약자에게 막 대하지 못하고, 선 넘는 배신을 피합니다.
이와 정반대로 ‘모두 살리자’라는 터무니없는 철학을 다같이 배척하고 없애버리지 못하는 건 혹시 그 '살리자’의 대상이 이번엔 자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궤도에게 막 대하지 못하고, 구태여 눈밖에까지 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놓고 궤도의 엔젤스플랜을 반박하는 사람들은 전부 절대 탈락할 일이 없는 참가자들이었습니다. 본인은 항상 절박하게 임했다고 말하겠지만, 사실 두 번째 메인매치에서 기욤이 순교한 뒤로 다량의 피스를 보유한 사람이 탈락할 만한 메인매치는 없었습니다. 도박수만 두지 않는다면 말이죠.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랄지, 땅따먹기에서 난데없는 배신으로 인해 탈락자가 생겼음에도 사람들의 반감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은 “이제 떨어질 사람은 떨어져야 하지 않나.”라는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어쨌든 궤도님의 철학은 어느 정도 지켜진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골고루 가난하게 피스를 나눠 가졌고, 탈락자가 나오지 않는 메인매치였던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하루에 한 명 꼴로 탈락하는 정도로 틀어막았습니다(우연히도 탈락자의 수가 데스매치를 진행할 때와 똑같군요).
이제 남은 건 다른 플레이어들은 물론, 궤도님 본인이 자신의 전략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날 변화입니다. 저는 금고의 보물보다도 이쪽이 더 기대가 됩니다.
사족입니다먼, 쉴 틈 없이 새어 나오는 참가자들의 룰 이해도 부족은 너무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본래는 모두가 필승법을 파악한 채로 심리전을 겨뤄야 하는데, 필승법을 일부만 알고 있으니 메인매치에 아무리 좋은 게임이 나와도 빛이 바래는 것 같아 속상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