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학회 이야기
필자는 현재 ICERM에 LMFDB 수학 학화 LuCaNT에 왔습니다.
1. ICERM은 무엇이죠?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브라운 대학에 위치한 수학 연구소입니다. 수학과 건물과는 다른 건물로,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독자적 기관입니다. Institute for Computational and Experimental Research in Mathematics의 약자인데, 번역하자면 수학 계산 및 실험 연구 기관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로그는 건물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더군요. 처음 들어갔을 때 이 건물 전체가 수학연구소야? 하고 놀랐는데 알고보니 10, 11층만 수학연구소였습니다. 나머지는 브라운 대학교 공중보건학과라고 합니다. 그래도 가장 전망 좋은 10, 11층이 수학연구소여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2. LMFDB가 무엇이죠?
LMFDB는 L-functions, Modular Forms Data Base의 약자입니다. L-함수와 모듈러 형식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대상들을 다룹니다. 타원곡선이나 아벨 다양체는 물론, 수체, 표현, 군 등 수학 전반에 쓰이는 다양한 대상들을 다루고 있지요.

수학자들의 든든한 친구 LMFDB
3. 왜 LMFDB를 만드나요?
수학에서 연구하는 질문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순서를 따릅니다.
1. 어떠한 성질을 만족하는 것은 존재하는가?
2. 존재한다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3. 그 대상들을 전부 찾을 수 있는가?
4. 그 대상들을 체계화시킬 수 있는가?
5. 그것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가?
LMFDB는 3번과 4번 질문을 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들어 원소를 이해하려했듯, 수학자들도 이 대상들을 체계화해 완전한 이해를 꿈꾸고 있지요.
4. 이번 학회의 취지는 어떻게 되나요?
이번에 제가 참석한 학회 LuCaNT는 LMFDB 운영진이 개최한 첫번째 학회입니다. LMFDB는 지난 10년간 정부기관의 투자와 수많은 수학자들의 협력으로 체계화되었습니다. 이번 학회는 LMFDB를 꾸리는데 도움을 준 언성 히어로들의 노고를 기념하고, 앞으로 더 많은 수학자들이 이 커뮤니티에 일조하기를 염원하고자 개최한 듯 합니다.

이번 LuCaNT 학회로 받은 ICERM 이름표. 깔끔하고 예뻐서 평생 보관하려구요.
5. 학회 스케쥴은 어떻게 되나요?
강연의 연속입니다. 둘째날은 Lightning talk이라고 5분 발표 세션이 있습니다. 이른바 연구 결과 방문 판매 같은 것이죠. (저도 발표합니다.)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자유시간인데, 아마 관심 주제가 겹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새로운 협력연구를 논의하는 장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관광을 다니시거나 쉬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6. 수학 얘기 좀 해주세요.
수학에는 랭글랜즈 프로그램(Langlands Progra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학의 조화해석학(Harmonic Analysis)이라는 분야와 정수론(Number Theory)이라는 분야 사이에 다리를 놓는 프로그램이죠. 수학판 통일장 이론과 비슷합니다. 아래 그림은 그 원대한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일부를 묘사한 것입니다.

원래는 조화해석학과 정수론은 관련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분야였습니다. 20세기의 수학자 로버트 랭글랜즈는 어쩌면 이 둘 사이에 아직 수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던지지요. 그 추측이 바로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랭글랜즈 프로그램은 수학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원대한 계획입니다. 동시에 어쩌면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수학 문제 중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제 1 관문에 해당하는 문제가 바로 300년간 수많은 수학자들의 골머리를 썩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였기 때문이지요. (와 랭글랜즈 프로그램 아시는구나! 진짜 겁나 어렵습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n이 3 이상의 자연수라면 X^n + Y^n = Z^n을 만족하는 0이 아닌 정수해 (X,Y,Z)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리입니다. 17세기에 페르마가 제안했고, 20세기말에 와일즈에 의해 해결되었죠. 와일즈는 '타원곡선과 모듈러 형식 사이에는 1대 1 대응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를 모듈러성 정리라고 하지요. 왜 이 정리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증명이 되냐면…
1. 만약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거짓이라면 X^n + Y^n = Z^n을 만족하는 정수해가 존재할 겁니다.
2. 이 정수해를 갖고 타원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 타원곡선에 대응하는 모듈러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3. 하지만 모든 타원곡선은 어떤 모듈러 형식과 대응되어야 한다. (모듈러성 정리)
4. 그러므로 그런 타원곡선은 존재할 수 없고, 그런 정수해는 존재할 수 없다. 고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참이다.
즉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하는 단추는 조화해석학의 대상인 ‘모듈러 형식’과 정수론의 대상인 ‘타원곡선’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랭글랜즈가 꿈꿨던 그 원대한 계획의 첫 번째 단추가 된 이유지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해결되면서 더 많은 수학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몸을 던졌습니다. 새로운 개념과 정리들이 엄청나게 생산되었죠. 하지만 그만큼 이 대상들을 잘 체계화하는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정수론계의 거물들이 그러한 목표로 데이터베이스를 짜기 시작했고, 그것이 LMFDB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500명의 수학자들이 참여했고, 그렇게 아카이브된 정보량만 5TB가 된다고 하네요. (적게 느껴지지만, 수식과 텍스트만으로 5TB는 엄청난 양입니다.)
저는 종종 수학은 과학보다 박물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학은 ‘현상을 설명’하기보단, ‘대상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그렇게 발견한 대상들은 새로운 의문을 떠올리게 하고, 새로운 의문은 새로운 이론을, 새로운 이론은 새로운 대상을 발견케 합니다. 이 즐거운 선순환에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