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 엔트로피를 느끼는 방법
세상에 엔트로피라는게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뭔가 실존적이고 물리적인 개념만 다뤄야 할 것 같은데
무질서? 같은 오묘한걸 수치화 해서 나타내다니,
게다가 중요하게 사용한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열역학을 공부하다보면 엔트로피에 대한 다양한 수학적 정의와 성질들이 나오지만
(이 글에 수식은 일체 적지 않을테니 도망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당장, 최소한 오늘 안에 엔트로피의 신비한 기운을 직접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고무줄 하나만 있으면요
어제 배민 시켜 먹은 봉지에 들어 있는거 꺼내서 한번 당겨 보십시오
그것이 대자연의 힘, 엔트로피의 오묘한 힘입니다.
고무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건 당연한 건데 뭔 소리인가 싶으시다면
잘 따라오시는 겁니다.
우리는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은 중학교 과학 시간 정도에 배웁니다
‘스프링’의 탄성 에너지가 변위의 제곱에 비례하고 탄성력은 변위에 비례하고 뭐 이런거요
기억이 안 나셔도 상관 없습니다.
스프링은 길이가 변하면 ‘에너지’가 변해서 원래대로 돌아오려는 힘이 생깁니다.
에너지와 힘, 뭔가 그럴 듯 해 보입니다.
그럼 고무도 똑같지 않을까요?
고무의 구조를 한번 봅시다.

고무는 자세히 보면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끈이나 사슬처럼 생긴 긴 분자 (흔히 고분자라고 하는) 들이 여기 저기에 서로 붙어서 막 꼬여 있는 상태죠
고무를 늘리면 일어나는 일은 아래처럼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있는 분자 사슬 하나만 본다고 합시다.
고무가 전체적으로 늘어나려면 사슬들이 연결된 지점 사이의 거리가 전체적으로 늘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림처럼 대충 마구 뭉쳐있던 사슬이 약간 펴진채로 뭉쳐있게 되겠죠.
그런데 여기서 두 사슬의 모양이 달라지긴 했지만
두 사슬의 에너지가 달라졌을까요?
예를 들어보자면,
옛날 시대에 고대인들은 유선 이어폰이라는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요 (MZ말로 줄 이어폰)
꺼내보면 이런 상태가 되어 있곤 합니다.
꼬인 이어폰과 잘 펴진 이어폰은 에너지가 다르진 않습니다.
에너지는 줄을 구성하는 원자들 사이의 거리나 각도가 달라져야 변하는데
꼬여있으나 펴져있으나 분자들의 배열은 거의 그대로거든요
(스프링에서는 금속들의 배열이 조금씩 바뀝니다. 이어폰도 막 심각하게 꾸기거나 늘리면 바뀌겠죠)
다시 고무로 돌아와서.
꼬인 분자와 덜 꼬인 분자는 에너지가 똑같습니다. 최소한 거의 같죠
그럼 왜 늘어난 고무줄을 줄어드는 방향으로 힘을 가질까요?
다시 말해 왜 펴진 분자는 꼬인 분자가 되려고 할까요?
그것은 꼬인 분자가 더 무질서하기 때문입니다.
쭉 펴진 분자는 하나의 구조만 가질 수 있지만
꼬이는 방법은 수십만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꼬일수록 꼬이는 방법이 늘어나고요
그 더 많은 경우의 수, 더 높은 확률 또는 더 큰 무질서함이
실제로 열역학적인 힘으로 작동하는게 바로 고무의 탄성력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고무줄을 당기면
반대쪽에서는 엔트로피가 당신을 당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