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에 관한 짧은 이야기 (수학과 입장)
어렸을 때만해도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다들 골치아파 했는데
이제는 인터스텔라와 같은 과학 대중화 덕분인지 사람들도 4차원 시공간이라는 개념도 익숙해진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조금 오해하신 포인트가 있는 것 같아서 수학과 입장에서 글을 써볼까 해.
‘시공간은 4차원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하지만
‘4차원은 시공간이다’ 혹은 ‘4번째 축은 시간이다’ 라는 표현은 나는 조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봐.
먼저 수학에서 정의하는 ‘가장 일반적인' 개념의 차원은, 공간 안에 한 점의 위치, 즉 좌표를 표현하는데 몇 개의 정보가 필요하냐야.
(일반적인 차원의 개념이라고 한 이유는, 그 외에도 크룰 차원, 프랙탈 차원, 하우스도르프 차원 등 다양한 개념들이 있기 때문)
예컨대 직선 상에 점의 위치를 표현하는데 몇 개의 숫자가 필요할까? 단 1개면 족하지. (수직선을 떠올려봐.)
평면에서는 2개의 숫자가 필요해. 공간에서는 3개가 필요하고. 그리고 시공간에서는 4개가 필요해. 단순히 공간상의 위치 뿐만 아니라, 어느 시점인지도 설명해야 하니까.
그래서 정확한 표현은 ‘4차원은 시공간이다!’ 가 아니라, ‘시공간의 한 점을 표현하는데에는 4개의 정보(3개의 공간정보 + 1개의 시간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4차원을 사용한다'인 거야.
이것이 시공간은 4차원이다 라는 말이 맞는 이유지. 하지만 4차원이 꼭 시공간일 필요는 없어.
예컨대 우리가 y = f(x)같은 함수를 그리면 2차원 평면에 그리지? x축도 1차원, y축도 1차원이니까.
하지만 이 함수의 정의역을 복소수로, 치역도 복소수로 그린다 생각하면 2차원 평면에 그릴 수 없어. 복소수는 실수와 달리 직선으로 표현할 수 없거든. 복소수는 평면, 즉 2차원이야.
그래서 정의역 2차원 치역 2차원해서, 복소수 함수를 ‘제대로 그려낼려면’ 4차원 공간이 필요해. 그리고 이건 시공간과는 무관하지.
이런 방식으로 차원을 이해하면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하는데 부담이 덜해.
‘아니 4차원이 시공간인데 그럼 5차원은 뭐야?! 5번째 축은 뭐인거지?!’ 하고 멘붕할 수 있지만
‘아, 5차원은 한 점을 표현하는데 숫자가 5개가 필요한 공간이구나. 이걸로 뭘 하려나?’가 되는거야.
이것이 수학자들이 더 높은 차원을 숨쉬듯 자연스럽게 쓰는 비법인 셈이지.
예를 들어 최근 필즈상 수상자인 마리나 비아조프스카는 8차원에서 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쌓아 올리는 법을 증명했고
필즈/아벨/울프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존 밀너는 7차원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위상적 대상을 발견했지. (6차원까지는 이런 게 없었다.)
조금 더 차원을 올려보면 수학에서 가~~~~장 ‘특이한 구조’인 몬스터 군은 196,883차원의 대상을 설명하는 구조고.
어쨌든, 종종 궤령부에 ‘4차원이 이런건가요’ 혹은 ‘5차원은 뭔가요’ 같은 차원에 관한 글을 보고
수학과 입장으로서, 사람들이 더 쉽게 차원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