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준공식에서 정조가 눈물을 흘린 까닭은?

때는 조선 정조 20년 (1796년)
34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수원화성이 완공되었다.

드디어 완성이군...! 아버지... 제가 해냈습니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넋을 기릴 뿐만 아니라,
제가 그토록 꿈꿔왔던 조선의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전하 커팅식까지 모든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전하께서 시그널을 주시면
카운트다운을 시작해 보이겠사옵니다.

그래 약용이… 자네도 고생 많았네
기대가 되는구만
어서 시작해 보게나

자자… 이들 보시오 백성 여러분
경사스런 날이니
테이프를 커팅하기 직전에
다같이 셋을 세는 겁니다.

삼..!! 이..!! 일…!!!


4도 세자…
조선의 정조(정조대왕, 1752-1800)는 수원화성을 건설한 여러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정치적 갈등과 궁중 내 음모로 인해 결국 영조(정조의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고, 이를 ‘현륭원’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현륭원을 보호하고 주변을 개발하기 위해 수원화성을 건설했습니다.
2. 정치적 기반 강화:
당시 조선 사회는 붕당 간의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정조는 중앙 권력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수원화성을 새로운 정치적 중심지로 삼고자 했습니다. 이곳에서 신진 세력을 육성하고, 새로운 통치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3. 경제적 중심지로의 발전:
수원은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상업과 경제 활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통해 상업과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재정 확충을 위한 중요한 계획의 일환이었습니다.
4. 군사적 목적:
수원화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에 군사적 방어시설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수원화성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튼튼한 성곽이었습니다.
정조는 이러한 다각적인 목적을 가지고 수원화성을 설계하고 건설했으며, 이는 조선 후기에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교양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