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이미지는 19세기, 이란 남부에 있던 고대 수메르 도시 유적에서 발견된 Ni 12501 이라는 점토판이다.
점토판은 표면 손상이 너무 심해서 지난 100년 넘게 문자가 해독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해독이 됐다.
수메르 문명에서 봄비와 폭풍의 신으로 숭배받던 이슈쿠르를 여우가 구하러 가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어느날, 이슈크루가 가축과 함께 저승 세계로 끌려가고 만다.
이슈크루가 사라진 지상에는 큰 이변이 일어난다.
가뭄이 계속되고, 아이가 태어나도 곧바로 사망하는 등 생명의 순환 자체가 멈춰버린 것이다.
그러자 바람과 대기를 주관하는 신이자 수메르 신들의 왕 엔릴이, 모든 신들을 모아 이슈쿠르를 구하러 갈 자를 찾는다.
하지만, 신들은 저승 세계가 무서워서, 누구 하나 이슈쿠르를 구하러 가겠다고 자청하지 않았다.
저승 세계에 한번 들이면 신조차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보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한마리 여우가 이슈쿠르를 구하러 가겠다고 자처하며 나섰다.
여우는 저승 세계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방법이란, 저승 세계에서 죽은 자에게 제공하는 물과 빵을 절대 먹지 않는 것이었다.
저승에서 죽은 자에게 저승의 빵과 물을 먹이는 건, 죽은 자가 됐다는 걸 확증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저승 세계에서 이슈크루를 구출해 다시 돌아오기 위해선 죽은 자가 되면 안 된다.
저승 세계에 도착한 여우는 제공 받은 빵과 물을 먹는 척 하며, 그걸 가죽 봉투에 담아서 몸에 매달았다.
먹지는 않았지만, 저승의 빵과 물을 몸에 지니는 것으로 저승에 출입할 수 있는 조건을 채운 것이다.
그리고 여우는 저승 세계에 들어갔는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점토판의 내용은 여기서 끝난다.
손상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의 내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래서 여우가 이후 어떻게 이슈쿠르를 구해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이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건, 저승 세계를 체계적인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관공서처럼 묘사했다는 점이지.
고대 수메르 인들의 저승에 대한 관념과 당시 생활 양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