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여름 묘사는
왠지 모르게 청춘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10대 소년 소녀가 열정 열정 열정을 외치며
무언가에 불타오르는 이미지가 절로 따라와요.
특히 아다치의 만화가 그렇습니다.
아다치 미츠루로 말하자면
여름과 청춘의 스페셜리스트로
터치, h2, 러프와 같은 대표작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선 h2,
일본에선 터치를 최고작으로 뽑는 경향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러프가 최고라고 느낍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장점들은 그대로 보여주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 있거든요.
러프는 수영 선수가 주인공입니다.
스포츠물이라고 볼 수 있죠.
흔히 스포츠물은 주인공의 성장이 메인입니다.
거듭된 승부를 통해
성장해가는 주인공을 보여줍니다.
근데 아다치의 만화는 조금 달라요.
스포츠보다는 인물간의 관계에 더 집중합니다.
그래서 때론 승부의 결과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러프의 엔딩이 정확한 예시겠죠.
러프는 경기 전 날 히로인 아미가 녹음한
카세프 테이프가 울려퍼지며 끝납니다.
승부가 나기 전 아미는 결정을 했고
만화는 그 결정만 보여주며
승부의 결과는 굳이 보여주지 않습니다.
스포츠물의 정석에서 벗어난 모습입니다.
자고로 스포츠물이라 하면
결국 라이벌과의 승부에서 주인공이 승리하며
그 전리품으로 히로인을 차지해야 하거든요.
재밌는 건 러프 또한
이 공식을 따라가는 척을 했다는 겁니다.
여는 스포츠물과 다를 것 없이
러프는 승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케이스케 또한 아미를 차지하기 위해
승부에서 이길 것을 다짐합니다.
주변 인물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중간 중간 엔딩에 대한 복선이 있어요.
대표적인 복선이
카오리와 유우지 에피소드입니다.
케이스케와 유우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카오리였지만
선택은 승부의 결과와 상관이 없었습니다.
카오리의 선택은
승자 케이스케가 아닌 유우지였죠.
정석을 살짝 꼬는 데서 오는 짜릿함과
복선을 회수할 때의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게 러프의 엔딩입니다.
러프가 훌륭한 이유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연출은 말해 입 아프죠.
이렇게 세련된 연출을 할 수 있는 만화가가
몇이나 될까싶어요.
미세한 표정 변화와 사물 묘사만으로
인물들의 감정선을 묘사합니다.
그 외에도 대구법을 참 잘 활용하는데요,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그러면서도 만화적 표현들을
틈틈히 삽입하여 분위기를 풀어줍니다.
가끔 영화를 그림으로만 옮겨놓은 듯한
만화들이 있는데요,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만화면
만화다움이 있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어요.
러프는 제목마저 완벽한 것 같아요.
정제되지 않은,
그래서 서툴고 풋풋한 청춘이 바로 연상됩니다.
덕분에 저도
있었는지 기억도 가물 가물 가물치한
러프했던 그때의 아련함에 간질간질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