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부터 ‘○○○ 배우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조용필 가수님’, ‘김연아 선수님’이라는 호칭을 예시로 들어
이름 뒤에 직업이 들어가는 건 원래 어색한 표현이며
‘배우님’ 역시 말이 안 되는 억지 존칭이라고 지적하며 꾸준히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어느새 많은 사람들은 ‘배우님’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듯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특정 인물을 지칭할 때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높여 부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겠죠.
감독님, 사장님, 변호사님, 작가님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인정받는 직업에는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문제는 이게 또 마냥 틀린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호칭 문제는 군대를 보면 정답을 찾기가 쉬운데요.
계급이 낮은 사람이 자신을 지칭할 땐 직급을 먼저 말합니다.
“이병 이병건!”
계급이 높은 사람이 자신을 지칭할 땐 직급을 뒤에 붙입니다.
“나 김종수 대령인데, 거기 김의중 소위 있나?”
계급에 상관 없이 타인을 지칭할 땐 직급을 뒤에 붙입니다.
“불만 있나, 이세화 중사?”
“이병건 병장님, 점심 생구지 말입니다.”
불특정 상대에게 본인의 직급을 말할 때는 앞에 붙입니다.
“전화받았습니다. 병장 이병건입니다.”
특정 상대에게 타인을 지칭할 때는 직급을 뒤에 붙입니다. 존칭 ‘님’의 사용은 압존법에 따릅니다.
“김풍 상병님, 어제 이병건 병장님이 말입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자신을 지칭할 때는 직잭+이름이,
타인을 지칭할 때는 이름+직책의 형태가 사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직책(직급)+님이 뒤에 붙는 건,
- 나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을 호칭하는 경우
- 대화 상대보다 높은 직책의 사람을 언급하는 경우
두 가지에 한해 문법적으로 옳은 표현인 듯합니다(저도 전공자는 아니기에 확실하진 않습니다).
다만 전술했듯이 사장님, 대표님처럼
으레 많은 이들이 ‘○○님’ 형태를 쓰게 되는 직업일 경우 자연스럽게 느껴지나
그렇지 않을 경우 너무 어색하니 “이거 맞춤법에 어긋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건 해당 직책을 높여 부르는 빈도가 얼마나 잦냐에 따라 많이 좌우됩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면 ‘선생님’ 정도를 제외하고는(이건 이제 하나의 단어가 되었고요)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 ‘○○님’의 형태가 자연스러운 직업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 ○○○ 대통령님이…”
“정일영 교수님 있잖아…”
여기까지는 언뜻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인물을 좋아하지 않을 경우 ‘님’을 붙이는 게 어색해집니다.
한번 정일영 선생님 자리에 각자 좋아하지 않는 교수 이름을 넣어보세요.
이상할걸요.
“내년에 봉준호 감독이 말이야…”
“지난 시즌 손흥민 선수가…”
이건 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애기하는데 감독님, 선수님이라고 부르면 어색하죠.
하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모두가 감독님이라는 표현을 당연하게 쓸 테고요.
“너 침착맨 유튜버 알아?”
“나 주우재 모델 좋아해.”
슬슬 이상합니다.
왜일까요? 외국어라 그런 걸까요?
처음엔 저도 이게 문법에 어긋나서 그렇다고 생각했고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직업에만 ‘○○님’이 붙는 게 한국어에 내재된 계급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겼으나
막상 ‘선생님’ 정도를 제외하면 ‘○○님’의 형태가 항상 자연스럽지는 않은 걸 봐선
그냥 익숙함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배우님’이라는 표현이 처음엔 진짜 듣기도 싫고 왜 저러나 싶었는데
몇 년 동안 하도 들으니 이젠 이곳저곳 자리 잡은 걸 보면 내가 너무 호들갑 떨었나 싶기도 하고
물론 여전히 안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처음엔 배우 박정민, 배우 장원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준 침하하 공지를 칭찬하려고 글을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 끝맺게 되네요.
혹시 국어에 전문지식을 지닌 분이 계시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쓰잘데기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