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져.”
그녀가 결국 그 말을 꺼냈다.
“결국 그 선배랑 사귀기로 한 거야?”
“응, 미안해…”
비밀 연애를 한 탓인지.
복학생 선배에게 고백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탓인지.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질 필요는 없었다.
“아냐, 괜찮아. 그냥 친구로 잘 지내자.”
*
그녀와는 수업이 몇 개 겹쳤지만,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다.
가끔 서로 작게 의식할 뿐.
그 복학생 선배와는 다행히 겹치는 수업이 없어 마주치지도 않았고.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다.
이별 얼마 후 시작된 학교 축제.
과 활동을 하는 내내 숨 막히는 삼자대면이 계속됐다.
“아…..”
“음…..”
“어…..”
상대방이 어색해하니까 나까지 신경 쓰였다.
이런 상황은 싫은데.
다른 사람들한테 자초지종을 말하고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 과 주점이 끝나갈 때쯤, 복학생 선배가 나를 불러냈다.
“조용한 곳에 가서 잠깐 얘기 좀 할래…?”
“어… 그럴까요?”
우리 둘은 인적이 드문 으슥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축제 시기의 캠퍼스 여기저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ㅈㅅㅇ, 그만 좀 마셔라.”
“아~~ 더 마실 수 있잖슴~”
“빵애예요!”
한동안 돌아다녔으나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그때, 복학생 선배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우리 과방 가서 얘기할까? 지금 시간엔 사람 없을 텐데.”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
과연 건물 안에는 사람이 적었다.
불도 대부분 꺼져있어 나름 분위기도 잡힌 상황.
우린 조용한 과방에서 얼마간 대화를 나눴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지만.
“나는 너희 둘이 사귀는 줄 몰랐었어. 그래서 고백한 건데…”
“우리 서로 어색해하지 말자.”
대충 이런 얘기. 어쨌든 대화는 잘 마무리됐다.
그런데.
“어? 저 기숙사 통금시간 지났는데요.”
“…그래?”
“어쩌죠?”
“할 수 없이 여기서 같이 자야겠는걸.”
선배도 기숙사에 살았던가?
복학생은 기숙사 TO가 적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그때의 난 그런 판단을 할 여유가 없었다.
술도 꽤 마신 탓에 정신도 몽롱했고, 잠도 쏟아졌다.
“그럼 여기서 같이 잘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방 안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장판 구역이 있었다.
원래는 꽤 넓은 편인데.
축제에 쓸 각종 짐들이 널려있어 그날따라 공간이 빡빡했다.
마침 딱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정도.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그러다, 잠결에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
“으음?”
힘겹게 눈을 떴는데…
내가 그 선배를 껴안고 있더라.
그것도 옆으로.
한쪽 다리까지 그 남자 배 위에 야무지게 올려놓은 채.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혹시 잠결에 내가 실수로 껴안은 건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수습할 수 있어.
그 선배도 자고 있을 테니까 그냥 슬며시 내리면 되는 거야!
나는 조심스레 그 선배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게다가 무언가 깊게 고민하는 눈빛…?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쳤다.
선배는 애초에 잠도 안 잔 거 같은데, 어째서 나를 안 밀어냈지?
팔베개는 왜 해준 거지..
무슨 생각을 저리 심각하게 하는 거지…
내가 말을 걸어야 하나?
그럼 더 어색해지려나..
잠결에 은근슬쩍 다시 내릴까?
그러다 다리가 어딘가에 걸리면 더 이상해지지 않을까…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는 선배를 껴안은 채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눈을 떴을 때 선배는 곁에 없었다.
다행히 내겐 아무 일도 없었다. 아마도.
바람대로 우린 어색한 사이가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 선배를 마주친 적조차 없었으니까.
*
그날의 일.
내 인생의 흑역사 3순위쯤 하지 않을까.
요즘도 가끔 그 선배가 떠오른다.
그 눈빛은 대체 뭐였을까.
그 선배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랬을까.
+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
양성 전혀 아닙니다!
어쩌다 잠결에 복학생 선배를 껴안았는데, 그 선배가 깨어있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