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로 군복무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군사경찰(구 헌병) 특기를 받은 저는 경비병으로서 출입문을 지키고, 업무시간이 끝날 때에는 애국가에 맞춰 국기하강식을 합니다.
헌병파카를 입어도 추운 겨울,
너무 추워서였을까요? 화장실을 다녀와 근무에 들어갔음에도 소변 신호가 느껴지더군요. 교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5분대기를 하고 있는 전우를 부르기 미안했습니다.
‘다음 교대 인원이 얼른 와줘야 하는데… 그래야 국기하강식 전에 화장실에 다녀올 시간이 생기는데…’
오지 않는 다음 근무 전우를 기다리며 발만 동동굴렀습니다. (헌병의 품위 유지를 위해 실제로는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았습니다.)
어찌저찌 교대 후 하번 보고를 마치고 국기함을 들었습니다.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올 틈은 없었습니다. 곧 애국가가 흘러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기게양대 아래에 서서 국기하강을 준비했습니다. 서둘러 생활관으로 뛰어가는 전우들… 마음 같아서는 저도 화장실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헌병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표정부터 몸짓까지 진중함으로 무장했습니다.
국기강하는 2인 1조로 합니다. 애국가에 맞춰 전우와 일심동체가 되어 국기를 하강하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애국심에 제 마음도 뜨거워졌던 걸까요, 뜨거운 무언가가 저에게도 흘러나오더군요…
일순간 뜨거웠다가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그것.
국기가 다 내려오고, 저도 마음이 다 내려앉았습니다.
국기를 고이 접고, 국기함을 들고 무거워진 바지와 마음으로 생활관으로 복귀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전투복과 전투화, 옷가지를 세척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녹였습니다. 샤워를 하며 전우가 눈치 챘을까 고민했습니다. 다행이 축축해진 전투복임에도 지림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더군요. 안도하는 제 자신이 안쓰러웠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생활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어엿한 성인이 오줌을 지렸다는 것.
올곧은 헌병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
옷가지들을 손세탁하고 있던 나의 모습.
일순간의 해방감, 곧이은 거대한 좌절감, 무너지는 가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흘릴 수 없었지요. 아니, 소변도 흘리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살살 어지러운 착잡한 마음으로 그렇게 저는 일찍 눈을 붙였습니다. 남들 다 하번하고서 여유롭고 즐겁게 개인시간을 갖고 있었을 때 말이지요…
이상, 저의 병사 시절 올곧고 단정한 헌병으로서 근무 했을 때의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