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회사에는 팀마다 소모품비를 관리하고 소모품 구비를 해두는 소모품 담당자가 있는데
제가 담당자를 하던 시절 실수들을 모아봅니다.
케이블락 사건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저도 쌩 초짜 신입이던 시절 신입사원 두 분이 입사하여 새 노트북을 받으셨더랬지요.
보안정책 상 노트북 별로 케이블락을 하나 씩 매어두고 퇴근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두 분을 위해 케이블락 2개와 키보드, 마우스 등을 주문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송이 되었고 두 분은 자리 세팅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한 분이 오시더니 “사원님… 죄송한데 이 케이블락 자전거용 이거든요… 이걸로 고정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돼서…”
그랬던 것입니다. 소모품 구매 사이트에서 “케이블락” 검색 후 첫 번째로 뜨는 것을 2개 구매해버린 저는
노트북 용이 아닌 자전거 용 케이블락을 구매해버린 것이지요.
저의 실수도 당황스러웠지만 한 시간 동안 그 자전거용 케이블락으로 노트북 시건을 해보고자 노력했던 신입사원분에게 너무 죄송했습니다.
믹스커피 사건
때는 2021년, 이제는 짬이 찬 어느 날 외부 출장지에서 근무 중이던 저에게 팀장님의 문자가 왔습니다.
“OOO 책임님이 믹스커피를 좋아하는데, 하나 시켜주세요”
팀장님의 문자여서 철렁했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고 가벼운 마음으로 OOO 책임님께 연락드렸습니다.
센스있게 제일 좋아하시는 커피를 주문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임님은 모카골드를 제일 좋아하신다고 하셨고, 소모품비 사이트에서 모카골드 믹스커피를 검색 후 본사로 주문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OOO 책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선임님, 이거 … 엄청 크고 프리마 없이 가루만 있는… 그 뭔지 알죠?”
순간 어?!?!? 하더니 머릿 속으로 케이블락 사건의 추억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아 내가 또 상세설명을 보지 않았구나.
제가 구매한 것은 커다란 병에 담긴 1kg 짜리 커피믹스 가루였습니다.
“책임님, 죄송합니다… 프리마를 따로 구매해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안먹을게요…”
그리고 그 가루는 1년 간 팀 사물함에 고이 봉인되어 있다가 제가 본사로 복귀하던 날 몰래 처리되었습니다.
HDMI 사건
때는 2022년, 이제 소모품비 담당자도 익숙해질 만도 했지요.
연말이 되자 돈이 많이 남아서 팀 공용물품을 더 구비해놓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족한 랜선, HDMI 선 등을 구매해야겠다 생각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구매를 했습니다.
HDMI 선은 꽤 가격이 비쌌으나, 뭐 돈이 많이 남았으니 누군가는 좋은 걸 쓰겠지 싶어 쿨결제 했지요.
그리고 일주일 후 배송이 와서 택배를 찾으러 갔는데 생각보다 큰 택배가 왔습니다.
상자만 크겠거니 들어보자 꽤 무거웠습니다. 순간 등이 서늘했습니다.
또 잘못시켰나? 얼른 자리로 가서 조용히 소모품비 주문 내역을 보자 제가 주문한 것은
HDMI 30m 였습니다.
누가 볼세라 택배를 몰래 열어보니, 그 안에 든 것은 뱀마냥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HDMI 선이었습니다.
얼른 반품 신청을 하고 그 길로 팀장님 자리로 가 말씀드렸습니다.
“팀장님, 제가 주문을 잘못한게 있어서 반품 신청을 했습니다.”
“아 네, 문자 받았어요”
“팀장님… 저 이제 소모품비 담당자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하고 싶습니다”
그 날 이후 저희 팀은 저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부록) 멀티탭 사건
소모품 담당자를 그만 두고 마음 편히 개인 구매자의 신분으로 돌아온 저는 멀티탭을 하나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배송이 너무 늦어, 배송을 오기 전에 휴가를 1달이나 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께 수령을 부탁한 후 돌아오자 택배 상자를 전달 받았습니다.
열어보니 안에는 멀티탭이 고이 잘 있었습니다.
다만 그 멀티탭은 단 1구 였습니다.
저는 5구를 주문했는데 배송이 잘못되어서요.
또다시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한 건 아닐지, 소모품비 주문 내역을 보고 또 보았지만 확실히 제가 주문한 것은 5구였습니다.
그러나 배송받은지 너무 오래돼서 반품을 할 수가 없었네요.
1구 짜리 멀티탭은 팀 사물함에 몰래 숨겨두었습니다. 누군가가 발견하고 쓰기를…
저와 소모품의 악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