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저는 월세집에서 전세집으로 이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그리고 고양이까지, 제게 중요한 짐들은 렌트카에 싣고 새 집으로 향하고 있었죠.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요? 이때 코로나에 걸렸는지, 몸에 열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새 집 도착을 목전에 두고 신호에 걸려 차를 멈췄는데, 문득 옆을 보니 '핑구'에 나오는 바다사자와 똑 닮은 아저씨가 제게 손짓하며 차에서 내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시하고 지나쳤겠지만, 심신 미약 상태라 그런지 홀린 듯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렸습니다.
대뜸 그 바다사자 아저씨는 제 손에 홍삼 박스를 올려주셨습니다.
'아! 내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 선의를 베푸는 분이구나!' 짧은 순간 깊은 감동에 젖어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제게 얼른 트렁크에 담으라며 재촉하셨고, 저는 주신 홍삼 몇 개를 차에 실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불쑥 손을 내미는 게 아니겠어요? 멍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는 간결하게 "돈!" 하고 외쳤습니다.
몸이 멀쩡했더라면 즉각 홍삼을 다시 꺼내드렸겠지만, 당시 고열이 올라오고 있었고 날씨마저 30도가 넘는 땡볕이라 정신이 온전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얼마를 드려야 할지 여쭤보니, 아저씨는 "에이~ 술값만 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역시 좋은 분이구나!' 안도하며 지갑에서 4천 원(식당 소주 한 병 값)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정색하며
"아이~c.. 진짜 술값을 주나…" 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당황하여 그럼 얼마를 드려야 하는지 다시 여쭤보니, 아저씨는 계산기라도 두드리듯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음~ 내가 직원이 몇 명이고 다들 삼겹에 쏘주에 먹으면… 27만 원은 줘야겠네!"
안 그래도 이사 비용 때문에 통장이 앵꼬나고 있었는데 27만 원?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저씨의 인상이 더 또렷하게 무섭더군요 눈에 광기가 보였습니다. 덩치도 저보다 훨씬 크셨고요.
어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입금을 하던 중, 아저씨가 대뜸 몇 살이냐고 물으셨습니다. 26살이라고 답하자, 아저씨는 "진짜? 46이 아니고?" 라고 되물었습니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 처음 들어보네요..ㅎ.." 하고 대답했지만, 아저씨는 완고했습니다. "아니야~ 거울 봐봐. 난 사장님인 줄 알았네!"
부당하게 강매당하고 모욕까지 당했지만, '앞으로 좋은 일 생기려는 액땜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마저 입금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참 고구마 같은 이야기죠?
네 결론도 고구마입니다 이대로 끝이에요.
하지만 이런 삶의 작은 불행을 글로 써서 누군가 웃을수 있다면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지인분들께 말해드리니 의자에서 엎어지면서 웃더군요
어쩌면 이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홍삼은 몇 년간 가족들의 추석 선물로 요긴하게 쓰였으니까요…
참고로 엑땜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한달뒤에 맹장이 터졌거든요, 터가 안좋은가…

아저씨의 모습에 대한 정교한 복원도입니다.
다들 운전중 누가 내리라 하거든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