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인생에 있어 가히 평생 잊을 수 없는,
손꼽힐만한 실수를 용기내어 고백해 보고자 합니다.
때는 약 10 여년 전,
저는 같은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불알 친구들 여럿이 있는 단톡방에서
여느 때처럼 중구난방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술을 전공한 친구 한 명이
큰 돈을 들여 작업용 PC와 타블렛까지 세팅을 했다며,
방 사진과 작업물들을 올렸습니다.
그 친구는 인물, 그중에서도 여성의 누드 정밀화에 특기가 있었는데,
모두들 작업물이 정말 사실적이라 칭찬하며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저는 그 날 따라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그 친구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바로 PC를 켜서 구글로 해외 사이트까지 뒤져가며
큼지막한 모니터에서도 자세하게 보일만한 작품성이 있는 누드 화보들을 찾았고,
그 중 가장 크고, 가장 자세하고, 가장 유려한 사진을 골라 다운로드 후
PC카톡 채팅 목록 최상단에 있는 친구들 단톡방으로 마우스로 드래그 전송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보았습니다.
마우스 버튼을 놓는 그 찰나,
가족 단톡방에 새 글이 뜨며 마우스 포인터 아래로 살포시 자리 잡는 것을.
심지어 그것은 저희 외가 식구들 수 십 명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방이었고,
더불어 저희 외가 식구들은 한 빌라에 다 같이 모여 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저의 사진이 올라오기 직전까지
그곳에서는 사회문제 뉴스에 관한 굉장히 심도 깊은 대화가 오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메시지 삭제 기능은 존재하지도 않던 그 시절,
저는 '아…' 하는 짧은 탄식 만을 내뱉은 채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순발력 있게 기똥찬 유우머로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제 이름으로 공유된 그것은,
너무도 노골적이고, 너무도 적나라하고, 너무도 상세하게 찍힌
여성의 벌거벗은 초고화질 흑백 사진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뿐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어떻게든 위로하려는 마음이었을까요?
평소 연애도 안하고 운동만 하는 저를 항상 걱정하던 형수님의 말이
결국 저를 와장창 무너뜨렸습니다.
‘도련님도 건장한 사내셨군요’
이 채팅 이후 한동안 가족 단톡방은 고요했고,
외가 식구들 그 누구도 오늘날까지 이 일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해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도건남’이 되어,
아직까지도 주기적으로 놀림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여러분,
카카오톡 채팅방의 잠금 기능을 적극 활용하십시오.
파일 전송 경고 문구를 절대 끄지 마십시오.
애초에, PC카톡에서 드래그로 사진을 공유하지 마십시오.
아무튼! 카카오톡을 조심해서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은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시길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타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