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3년 1월
제가 한창 침착맨 개방장 이병건에 미쳐있던 시절
구쭈를 입고 다니면 지나가던 한국인이 아는 척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1년 내내 개방장의
구쭈를 입고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유기동물 봉사에 재미를 붙이던 저는 보호센터에도
혹시나 한국인이 있지 않을까하며 극내향형인 저같은
사람이 입기 상당히 힘든 침패밀리 니트를 입고
봉사에 나섰고 놀랍게도 그 날 센터에 침순이 한 분이
오셔서 ‘혹시 침착맨 좋아하세요?’ 하며 먼저 침밍아웃을 하시는겁니다.

이 시절의 저는 침착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호감이 있었기에 독깨팔 박치기하듯 즉시 번호를
여쭤봤지만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셔서 침하하
닉네임만 교환했습니다.
번호 교환엔 실패했지만 한국인을 실제로 봤다는
사실에 상당히 들떠있던 저는 이 들뜬 마음이 어떤
실수를 불러올 지 모른 채 약속이 있던 서울행 기차로
향했습니다.
실수 1
이 날 서울에서 군대 선임과 선임의 친구들을 만나
잔뜩 신나버린 저는 평소 주량보다 많은 3병 반을
누려버렸고 관우맨보다 더 인사불성이 됐습니다
실수 2
이 상태에서 '저는 님을 돕기위해 온 사람입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십쇼.' 라는 친구의 도움을 거절
가성비 좋은 찜질방에서 잔다는 악수를 둡니다.
실수 3
고주망태가 된 저는 찜질방 계산을 마치자마자
수면실도 아닌 목욕탕 락커룸에서 쓰러져버렸고
그 길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습니다(죽은 거 아님)

5시간 가량의 숙면을 누리고 일어난 저는 짐을
정리하고자 가방을 열어봤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가방이 19년도 침숭이 모발 라인마냥 휑한겁니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서울이라더니 치사하게
눈 감은 사람 코까지 베어가는 거지 뭡니까.
이 때가 23년 설날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당시 제 가방에는 설 용돈으로 받은 현금 40만원,
헤드셋, 스킨로션, 향수, 충전기 등 이것저것
들어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싹 다 자취를 감췄습니다

당시 친구들과 했던 카톡입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밍밍한 이야기가 됐겠지만
제 가방에는 좀도둑으로부터 살아남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생존자는 혹시나 서울 가서 심심할까봐 들고간
이말년씨리즈 1권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는 세상에 무슨 종이만화책을
심심풀이로 들고다니냐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 뻑킹 좀도둑놈이 충전기까지 훔쳐가서 서울
한복판에서 폰이 꺼지는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이 때 이말년씨리즈를 유용하게 썼습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더군요.
이후에 저는 음주는 적당히 누리자는 교훈을 얻었고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침착맨 팬싸인회에 당첨돼서

유일한 생존자인 이말년씨리즈에 친필 싸인도 받고
침투부 인트로에도 출연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술을 적당히 누렸더라면, 친구 집에서 잤더라면,
적어도 락커룸에 가방만 넣어놓고 잤다면
‘이말년씨리즈 외 전원 도난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겠지만 덕분에 팬싸인회도 당첨되고
이야깃거리 하나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앗! 나의 실수!로 발생했던
‘이말년씨리즈 외 전원 도난사건'의 전말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타오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