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년 전에 친구 결혼식 축가를 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 학기 동안 심리학과와 취업지원부서가 공동 주관한
‘발표 불안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정도로 긴장보이, 염소보이입니다.
노래 실력도 별로인데
친한 동기 7명 중 제가 가장 거절을 못 해서 차출되었습니다.
아니 근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축가를 필수로 했나요?
사라져야 할 부조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진인사대천명! 할 수 있는 건 연습뿐이었고
두 달 동안 코노에서 총 5만 원 이상을 썼습니다.
결혼식 날
계속 가사를 되뇌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축가 순서가 됐습니다.
근데 솔직히 연예인 결혼식 따라 하면서 생긴 문화 아님?
아무튼 긴장해서 청심환 마시는 것도 까먹었고
인트로 멘트도 당연히 까먹었습니다.
하지만 노래 부른 그 순간은 또렷이 기억나네요.
신부가 신랑에게 “오빠! xx오빠 엄청 떤다 ㅋㅋ”
라고, 말하는 입 모양을 정확히 봤습니다.
그래도 큰 실수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고
안심한 상태에서 마무리 멘트를 했습니다.
“두 분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합니다. 감사하세요!”
행복합니다? (누구 물어본 사람???)
감사하세요? (니까짓게 뭔데???)
결혼식장은 뒤집어졌고
또 다른 친구인 사회자가 자기도 행복하다며 수습을 했습니다.
다행히 유쾌한 분위기로 잘 마무리가 됐습니다.
그 이후로
친구들은 저를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박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비방용으로는 줜나행복한toRl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를 만날 때마다 단 한번의 예외 없이
제 행복 여부를 궁금해하고 저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참고로 4년 전쯤 '감사 초밥' 영상이 나왔을 때
친구 두 명에게 카톡을 받았다는 소식을 침님께 전합니다.
근데 쓰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축가는 모든 부담을 내가 잠시 떠안고
신랑 신부와 가족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좋은 문화일지도?
저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